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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유권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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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6월 <한국 유교 도상의 역사>

윤리적 노하우

지금으로부터 거의 10년 전에 프란시스코 바렐라를 알게 된 것은 참으로 늦은 일이었지만 동양철학을 연구하는 필자에게는 무척이나 의미 깊은 사건이었다. 왜냐하면 그 이후로 학문 연구의 방향에 커다란 변화가 생겼고, 또한 그로 인해서 연구에 많은 희열이 찾아왔기 때문이다. 바렐라를 알게 된 것은 인공지능을 전공하는 박충식 교수와의 만남에서 비롯된 것이고, 인지과학의 급진적 구성주의 계열을 소개받으면서 거센 학문적 호기심이 일어나게 되었다. 맨 처음에 읽었던 것은 바렐라와 에반 톰슨이 공동으로 저술한 ‘체화된 마음’(Embodied Mind). [옮긴이] 한국에서는 ??인지과학의 철학적 이해?? (석봉래 옮김, 옥토, 1997)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었다. 이었고, 이후 바렐라가 그의 스승인 움베르또 마뚜라나와 함께 저술한 ‘앎의 나무’(The Tree of Knowledge)를 공부하게 되면서 바렐라의 관심사에 대해서 많은 공감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한 공감은 그들의 관점과 이론이 유교의 윤리와 유학자들의 수양론의 현대적 해석에 매우 유용하리라는 믿음을 넘어서서 그들이 접근하고 있는 미지의 영역에 대한 탐구의 열정에 대한 존경과 동경으로까지 발전되었다. 당시에 박교수와 필자는 의기투합해서 <한국학술진흥재단>에 연구비를 지원받아서 공동연구를 해보자고 했었고, 실제로 그렇게 지원한 결과 연구비를 지원받게 되었다. 연구비를 받아서 수행한 연구는 “성리학적(性理學的) 심성(心性)모델 시뮬레이션을 이용한 유교 예(禮)교육 방법의 효용성 분석”이라는 주제의 연구였다. 이는 한국의 전통적 유교사상인 성리학에서 강조한 예교육이 과연 현대사회에서도 효용이 있는 것인가, 있다면 그것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에 답하기 위한 연구였다. 이 연구는 필자의 전공인 한국유학과 교육학, 인공지능의 세 분야가 연결된 학제간 연구였다. 이 번역에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교육학 분야에서 이 구성주의 이론을 소화하면서 교육학과의 연관성을 밝혀주고 그 이론적 연관의 체계를 만들어준 강혜원 교수와 박교수 및 필자는 매주 또는 격주로 만나서 진정한 학제간 연구를 실천하고자 노력했다. 우리가 그렇게 만나면서 했던 일은 상호 소통이 잘 되지 않는 개념이나 이론을 서로 묻고 확인하면서 학문 분야 간 소통의 폭과 깊이를 넓히려는 노력이었다. 그 노력의 효과를 높이고자 우리가 선택한 방법 중 하나가 공동의 교과서를 정해서 함께 강론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가 선택하여 함께 읽었던 서적 가운데 하나가 바로 지금 우리가 번역한 바렐라의 저서이다. 특히 이 서적은 우리가 필요로 하는 이론과 관점들을 담고 있어서 우리는 이것의 해독에 매우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이것을 읽으면서 필자는 매우 새로운 시각에 흥분했으며, 그리고 이를 계기로 바렐라의 관점과 방법론에 더욱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 시기에 필자는 인지과학 혹은 인공지능의 이론들을 접하면서 유교의 전통적 사유 구조를 현대 학문의 관점에 의해 재해석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점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그러나 수많은 조류의 현대학문이 존재하고 또 외부로부터 수용되고 있었지만, 모두가 적절한 것은 아니었다. 우리가 적절하다고 판단해서 고른 것이 급진적 구성주의 계열의 인지과학 이론, 그 중에서도 특히 바렐라와 마뚜라나의 이론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어느 학자들보다도 그들의 연구가 도달한 지적 탐구의 깊이와 폭 그리고 일관성이 우리를 매료시켰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유교의 수양론 뿐 아니라 유교를 비롯한 사상 문화 전반의 생멸과 진화에 관해서 더 신축성이 큰 설명력이 있다고 판단되었던 것도 중요한 이유이다. 유교라는 전통 사상의 현대적 유용성을 주장할 수 있으려면, 나아가서 유교라는 전통사상의 존재의 가치를 확인하고자 하기 위해서는 현대적 학문 방법 특히 철학 외적인 학문 방법의 동원과 응용이 필요하다는 점을 깨달은 것이다. 그러나 학제간 연구가 쉬운 것은 아니었다. 특히 공동 연구에 들어온 타 전공분야의 생소한 개념을 이해해야 하는 과정은 매우 긴 시간이 요구되었고, 한국 유학의 원전을 읽어야 하면서도 많은 시간을 인지과학 서적을 탐독하는 데 들이는 것도 어느 한쪽이든 더 심화된 연구로 나아가기 어렵지 않겠는가 하는 의구심을 내내 떨치기 어려웠다. 그러나 우리의 첫 번째 연구가 소기의 성과를 거두고 다시 “인지과학적 시뮬레이션을 통한 조선(朝鮮) 성리학(性理學)의 예(禮) 교육 심성(心性)모델 개발”이라는 주제로 <한국학술진흥재단>의 연구비를 지원받으면서 우리는 본 연구 자체의 지속과 확장을 꾀하면서 동시에 더 많은 연구 동참자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해서 여러 가지 시도를 하고 있지만, 그 중에 이 서적을 번역해서 널리 읽힐 수 있도록 하는 작업도 포함되었다. 사실 이 번역은 함께 강독과 토론을 하면서 이미 기획되었던 것이다. 필자가 박교수와 함께 이영의 교수를 찾아간 것은 1999년 추석 연휴 기간이었다. 박사학위를 받기 위하여 뉴욕주립대학 빙햄턴에서 연구를 하고 있던 이영의 교수는 한국에서 갑자기 찾아온 우리들을 매우 융숭하게 그리고 친절하게 맞아주면서 우리 연구와 관련하여 많은 정보를 주었는데, 우리는 이교수 댁을 떠나 뉴욕 맨하탄으로 향하는 열차 안에서 이 번역을 함께 검토하면서 갑론을박하기도 했었다. 그리고 뉴욕시내에 머무는 기간 동안에도 이 번역 원고를 붙잡고 토론하기도 했었다. 번역은 무사히 마쳤지만, 사실 두 사람 모두 이런 번역은 처음이라 자신도 없었다. 또 원래 이 서적이 이태리어로 된 바렐라의 강연 원고를 영어로 번역한 것이어서 영어 문맥에 소통이 잘 안 되는 부분도 많았으며, 아울러 필자에게는 생소한 인지과학 개념들이 넘쳐나서 사실 번역서로 출판하기에는 많은 두려움이 있었다. 그 때문에 이 원고를 묵혀 둔 것이 거의 5, 6년은 되는 셈이다. 약 4년 전에 베를린 대학에서 심리학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한 최호영 박사를 만나게 되면서 많은 변화와 진전이 있게 되었다. 최호영 박사는 처음에 필자와 같은 학교에 근무하시던 심리학과의 최상진 교수님의 소개로 알게 되었으며, 이후 최박사가 ‘앎의 나무’ 번역자임을 알게 되면서 더욱 친밀감을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최박사 덕분에 지금 이 번역서의 출판을 맡은 갈무리 출판사를 알게 된 것이다. 이렇게 보면 최박사와의 인연은 이 책을 놓고 본다면 매우 진기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한 가지 덧붙이자면 이 번역 원고의 교정까지도 최박사의 신세를 졌다는 점이다. 물론 오역이나 미흡한 점은 순수하게 우리 역자들의 책임이지만, 아마도 최박사의 협조가 없었다면 이 책은 세상에 나오기 어려웠을 지도 모른다. 이 책은 양으로 보면 단 세 편의 강연원고를 엮은 것이어서 매우 분량이 적은 얄팍한 두께의 책이다. 사실 정신을 똑바로 차려서 읽으면 한 시간도 안 되어서 독파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의 미덕에 주목한다면 그 시간의 길고 짧음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오히려 사유의 양이 얼마나 확대되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관심사가 되는 것이 마땅하기 때문이다. 이 책의 미덕은 바렐라의 사상과 그의 연구의 역정이 단 세 편의 강연원고에 배어 있을 뿐 아니라, 인간이 진정한 윤리적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앎이 아니라 실천이라는 방법을 통하여 마음의 체화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점을 조리 있게 설파하는 데 있다. 그리고 동양의 전통사상이 주는 지혜의 빛을 어떠한 방식으로 읽고 받아들여야 하는 것인가에 대해서 적절한 답을 주고 있다는 데에 있다. 번역을 완성하고 또 출판하기까지의 전 과정에서 우리에게 도움을 준분들은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많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앞서 언급한 최호영 박사, 필자의 다정한 이웃으로서 번역 초기부터 번역원고를 읽어주시면서 번역 문장을 다듬어 주셨던 박교수의 현처이신 이옥희 선생님, 우리의 연구를 독려하면서 용기를 주셨던 이영의 교수님, 우리와 함께 공동연구를 하였던 강혜원 교수님, 또 매달 한 두 번씩 만나면서 마음 연구의 틀과 방법을 논하고 또 마음연구라는 이 외로운 분야의 개척에 동감을 표해주고 함께 노력하고 있는 <마음연구회> 회원들이 기억되어야 할 중요한 분들이다. 한 가지 뒤늦게 고마움을 표해야 할 사람은 아리랑방송국의 문건영 기자이다. 바쁜 와중에도 시간을 내서 마지막 교정을 세심하고 정확하게 진행해 준 까닭에 이 번역이 오류를 잡고 더 원문의 맥락을 살릴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공동 연구를 기획하면서 항상 젊고도 용기 있는 도전자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독려해 준 박충식 교수, 거의 매일 밤에 늦게 귀가하는 남편에게 애정의 표시를 꾸준히 보내준 사랑하는 아내 이영미에게 무슨 감사의 변이 필요하리오. 아울러 잘 팔리지도 않을 이 책을 출판해주시겠다고 해주시는 갈무리 출판사 사장님, 이 책의 편집을 담당하는 출판사의 직원 여러분께도 머리 숙여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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