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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국내저자 > 소설
국내저자 >

이름:박종화

국적:아시아 > 대한민국

출생:1901년, 대한민국 서울

사망:1981년

최근작
2022년 11월 <백조·폐허·폐허이후>

월탄 박종화 삼국지 1

삼국지의 진수를 읽는다! 세상에서 흔히 삼국지三國志와 연의演義 삼국지三國志를 혼동한다. 삼국지는 정사正史요, 연의 삼국지는 역사소설이다. 삼국지는 진晋시대의 진수陳壽의 찬撰을 송宋의 배송지裵松之가 주註한 것으로 <위지魏志> 30권, <촉지蜀志> 15권, <오지吳志> 20권 도합 65권으로 되어 있다. 위魏를 정통으로 인정하여『위지魏志』에만 본기本記가 있고 촉蜀과 오吳는 열전列傳이 있을 뿐이다. <사기史記>, <한서漢書>, <후한서後漢書>와 함께 전사사前四史의 하나로서 양서의 평판이 높았다. <위지魏志>에 나타나는「부여전夫餘傳」,「고구려전高句麗傳」,「옥저沃沮」,「읍루??婁」,「예穢」,「삼한전三韓傳」등은 우리나라 상대사上代史와 국문학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되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는 것이다. 이 정사 삼국지를 더욱 빛나게 한 것은 남조송南朝宋 시대, 배송지裵松之가 문제文帝의 명을 받들어 모든 문헌을 수집하여 진수가 빠뜨린 것을 보궐補闕 고증함으로써 삼국지의 권위는 더욱 높아졌다 볼 수 있는 것이다. 삼국지 연의는 원·명元明간에 나관중羅貫中이 진수陳壽의 삼국지를 골자로 하여 소설화한 중국 4대 기서奇書의 제1위를 꼽는 본격적인 동양 최고의 역사소설이다. 이 책의 현존본現存本으로는 명明시대 홍치갑인(弘治甲寅:1494)에 간행된 것이 가장 오래된 것으로 24권, 240회로 되어 있고 비면扉面에는 ‘진晋, 평양후平陽侯, 진수사전陳壽史傳, 후학後學 나관중羅貫中 편차編次’라 씌어 있다. 동한東漢의 영제靈帝 중평中平 원년元年부터 붓을 들기 시작해서 진晋무제武帝 태강太康 원년元年까지 되어 마친, 전후 97년간의 사실을 소설로 구성시켰다. 홍치弘治 이후에도 삼국지 연의는 여러 문인의 손으로 되어 다수한 속본俗本이 많았으나 청淸의 순치갑신順治甲申(1644) 때, 모종강毛宗崗이란 사람은, 당시의 천하 문장이요, 문예 평론가였던 김인서金人瑞 성탄聖歎의 비평과 서문을 쓴 원본元本 성탄외서聖歎外書 120회, 삼국지 연의 제일재자본第一才子本을 간행하니 이로써 삼국지 연의는 정본定本이 되었고 모든 속본은 자취를 감추어 버리게 되었다. 지금 필자가 붓을 드는 것은 김성탄 원본 제일재자서第一才子書에 의거하는 것이다. 진수 <삼국지>는 조조의 위魏한테 정통을 주었으나, 나관중의 <삼국지>에는 주자朱子의 대의명분大義名分을 밝히는 춘추필법春秋筆法에 의해서 유비의 촉한蜀漢에게 정통을 주었다. 진수는 진晋의 신臣이므로 진晋에 칭제稱帝를 하자니 진晋의 사마의가 임금으로 섬겼던 조조에게 정통을 아니 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진수陳壽는 삼국지를 편찬할 때 유비와 유선한테는 선주先主 후주後主라 쓰고, 오吳의 손권한테는 그대로 열전列傳에 손권이라 썼다. 역시 마음속으로는 크나큰 가책苛責을 느꼈던 것이다. 본문本文의 붓을 들기 전에 잠깐 삼국지와 삼국지 연의를 말해서 혼동이 없도록 밝혀 둔다.

월탄 박종화 삼국지 10

삼국지의 진수를 읽는다! 세상에서 흔히 삼국지三國志와 연의演義 삼국지三國志를 혼동한다. 삼국지는 정사正史요, 연의 삼국지는 역사소설이다. 삼국지는 진晋시대의 진수陳壽의 찬撰을 송宋의 배송지裵松之가 주註한 것으로 <위지魏志> 30권, <촉지蜀志> 15권, <오지吳志> 20권 도합 65권으로 되어 있다. 위魏를 정통으로 인정하여『위지魏志』에만 본기本記가 있고 촉蜀과 오吳는 열전列傳이 있을 뿐이다. <사기史記>, <한서漢書>, <후한서後漢書>와 함께 전사사前四史의 하나로서 양서의 평판이 높았다. <위지魏志>에 나타나는「부여전夫餘傳」,「고구려전高句麗傳」,「옥저沃沮」,「읍루??婁」,「예穢」,「삼한전三韓傳」등은 우리나라 상대사上代史와 국문학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되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는 것이다. 이 정사 삼국지를 더욱 빛나게 한 것은 남조송南朝宋 시대, 배송지裵松之가 문제文帝의 명을 받들어 모든 문헌을 수집하여 진수가 빠뜨린 것을 보궐補闕 고증함으로써 삼국지의 권위는 더욱 높아졌다 볼 수 있는 것이다. 삼국지 연의는 원·명元明간에 나관중羅貫中이 진수陳壽의 삼국지를 골자로 하여 소설화한 중국 4대 기서奇書의 제1위를 꼽는 본격적인 동양 최고의 역사소설이다. 이 책의 현존본現存本으로는 명明시대 홍치갑인(弘治甲寅:1494)에 간행된 것이 가장 오래된 것으로 24권, 240회로 되어 있고 비면扉面에는 ‘진晋, 평양후平陽侯, 진수사전陳壽史傳, 후학後學 나관중羅貫中 편차編次’라 씌어 있다. 동한東漢의 영제靈帝 중평中平 원년元年부터 붓을 들기 시작해서 진晋무제武帝 태강太康 원년元年까지 되어 마친, 전후 97년간의 사실을 소설로 구성시켰다. 홍치弘治 이후에도 삼국지 연의는 여러 문인의 손으로 되어 다수한 속본俗本이 많았으나 청淸의 순치갑신順治甲申(1644) 때, 모종강毛宗崗이란 사람은, 당시의 천하 문장이요, 문예 평론가였던 김인서金人瑞 성탄聖歎의 비평과 서문을 쓴 원본元本 성탄외서聖歎外書 120회, 삼국지 연의 제일재자본第一才子本을 간행하니 이로써 삼국지 연의는 정본定本이 되었고 모든 속본은 자취를 감추어 버리게 되었다. 지금 필자가 붓을 드는 것은 김성탄 원본 제일재자서第一才子書에 의거하는 것이다. 진수 <삼국지>는 조조의 위魏한테 정통을 주었으나, 나관중의 <삼국지>에는 주자朱子의 대의명분大義名分을 밝히는 춘추필법春秋筆法에 의해서 유비의 촉한蜀漢에게 정통을 주었다. 진수는 진晋의 신臣이므로 진晋에 칭제稱帝를 하자니 진晋의 사마의가 임금으로 섬겼던 조조에게 정통을 아니 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진수陳壽는 삼국지를 편찬할 때 유비와 유선한테는 선주先主 후주後主라 쓰고, 오吳의 손권한테는 그대로 열전列傳에 손권이라 썼다. 역시 마음속으로는 크나큰 가책苛責을 느꼈던 것이다. 본문本文의 붓을 들기 전에 잠깐 삼국지와 삼국지 연의를 말해서 혼동이 없도록 밝혀 둔다.

월탄 박종화 삼국지 2

삼국지의 진수를 읽는다! 세상에서 흔히 삼국지三國志와 연의演義 삼국지三國志를 혼동한다. 삼국지는 정사正史요, 연의 삼국지는 역사소설이다. 삼국지는 진晋시대의 진수陳壽의 찬撰을 송宋의 배송지裵松之가 주註한 것으로 <위지魏志> 30권, <촉지蜀志> 15권, <오지吳志> 20권 도합 65권으로 되어 있다. 위魏를 정통으로 인정하여『위지魏志』에만 본기本記가 있고 촉蜀과 오吳는 열전列傳이 있을 뿐이다. <사기史記>, <한서漢書>, <후한서後漢書>와 함께 전사사前四史의 하나로서 양서의 평판이 높았다. <위지魏志>에 나타나는「부여전夫餘傳」,「고구려전高句麗傳」,「옥저沃沮」,「읍루??婁」,「예穢」,「삼한전三韓傳」등은 우리나라 상대사上代史와 국문학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되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는 것이다. 이 정사 삼국지를 더욱 빛나게 한 것은 남조송南朝宋 시대, 배송지裵松之가 문제文帝의 명을 받들어 모든 문헌을 수집하여 진수가 빠뜨린 것을 보궐補闕 고증함으로써 삼국지의 권위는 더욱 높아졌다 볼 수 있는 것이다. 삼국지 연의는 원·명元明간에 나관중羅貫中이 진수陳壽의 삼국지를 골자로 하여 소설화한 중국 4대 기서奇書의 제1위를 꼽는 본격적인 동양 최고의 역사소설이다. 이 책의 현존본現存本으로는 명明시대 홍치갑인(弘治甲寅:1494)에 간행된 것이 가장 오래된 것으로 24권, 240회로 되어 있고 비면扉面에는 ‘진晋, 평양후平陽侯, 진수사전陳壽史傳, 후학後學 나관중羅貫中 편차編次’라 씌어 있다. 동한東漢의 영제靈帝 중평中平 원년元年부터 붓을 들기 시작해서 진晋무제武帝 태강太康 원년元年까지 되어 마친, 전후 97년간의 사실을 소설로 구성시켰다. 홍치弘治 이후에도 삼국지 연의는 여러 문인의 손으로 되어 다수한 속본俗本이 많았으나 청淸의 순치갑신順治甲申(1644) 때, 모종강毛宗崗이란 사람은, 당시의 천하 문장이요, 문예 평론가였던 김인서金人瑞 성탄聖歎의 비평과 서문을 쓴 원본元本 성탄외서聖歎外書 120회, 삼국지 연의 제일재자본第一才子本을 간행하니 이로써 삼국지 연의는 정본定本이 되었고 모든 속본은 자취를 감추어 버리게 되었다. 지금 필자가 붓을 드는 것은 김성탄 원본 제일재자서第一才子書에 의거하는 것이다. 진수 <삼국지>는 조조의 위魏한테 정통을 주었으나, 나관중의 <삼국지>에는 주자朱子의 대의명분大義名分을 밝히는 춘추필법春秋筆法에 의해서 유비의 촉한蜀漢에게 정통을 주었다. 진수는 진晋의 신臣이므로 진晋에 칭제稱帝를 하자니 진晋의 사마의가 임금으로 섬겼던 조조에게 정통을 아니 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진수陳壽는 삼국지를 편찬할 때 유비와 유선한테는 선주先主 후주後主라 쓰고, 오吳의 손권한테는 그대로 열전列傳에 손권이라 썼다. 역시 마음속으로는 크나큰 가책苛責을 느꼈던 것이다. 본문本文의 붓을 들기 전에 잠깐 삼국지와 삼국지 연의를 말해서 혼동이 없도록 밝혀 둔다.

월탄 박종화 삼국지 3

삼국지의 진수를 읽는다! 세상에서 흔히 삼국지三國志와 연의演義 삼국지三國志를 혼동한다. 삼국지는 정사正史요, 연의 삼국지는 역사소설이다. 삼국지는 진晋시대의 진수陳壽의 찬撰을 송宋의 배송지裵松之가 주註한 것으로 <위지魏志> 30권, <촉지蜀志> 15권, <오지吳志> 20권 도합 65권으로 되어 있다. 위魏를 정통으로 인정하여『위지魏志』에만 본기本記가 있고 촉蜀과 오吳는 열전列傳이 있을 뿐이다. <사기史記>, <한서漢書>, <후한서後漢書>와 함께 전사사前四史의 하나로서 양서의 평판이 높았다. <위지魏志>에 나타나는「부여전夫餘傳」,「고구려전高句麗傳」,「옥저沃沮」,「읍루??婁」,「예穢」,「삼한전三韓傳」등은 우리나라 상대사上代史와 국문학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되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는 것이다. 이 정사 삼국지를 더욱 빛나게 한 것은 남조송南朝宋 시대, 배송지裵松之가 문제文帝의 명을 받들어 모든 문헌을 수집하여 진수가 빠뜨린 것을 보궐補闕 고증함으로써 삼국지의 권위는 더욱 높아졌다 볼 수 있는 것이다. 삼국지 연의는 원·명元明간에 나관중羅貫中이 진수陳壽의 삼국지를 골자로 하여 소설화한 중국 4대 기서奇書의 제1위를 꼽는 본격적인 동양 최고의 역사소설이다. 이 책의 현존본現存本으로는 명明시대 홍치갑인(弘治甲寅:1494)에 간행된 것이 가장 오래된 것으로 24권, 240회로 되어 있고 비면扉面에는 ‘진晋, 평양후平陽侯, 진수사전陳壽史傳, 후학後學 나관중羅貫中 편차編次’라 씌어 있다. 동한東漢의 영제靈帝 중평中平 원년元年부터 붓을 들기 시작해서 진晋무제武帝 태강太康 원년元年까지 되어 마친, 전후 97년간의 사실을 소설로 구성시켰다. 홍치弘治 이후에도 삼국지 연의는 여러 문인의 손으로 되어 다수한 속본俗本이 많았으나 청淸의 순치갑신順治甲申(1644) 때, 모종강毛宗崗이란 사람은, 당시의 천하 문장이요, 문예 평론가였던 김인서金人瑞 성탄聖歎의 비평과 서문을 쓴 원본元本 성탄외서聖歎外書 120회, 삼국지 연의 제일재자본第一才子本을 간행하니 이로써 삼국지 연의는 정본定本이 되었고 모든 속본은 자취를 감추어 버리게 되었다. 지금 필자가 붓을 드는 것은 김성탄 원본 제일재자서第一才子書에 의거하는 것이다. 진수 <삼국지>는 조조의 위魏한테 정통을 주었으나, 나관중의 <삼국지>에는 주자朱子의 대의명분大義名分을 밝히는 춘추필법春秋筆法에 의해서 유비의 촉한蜀漢에게 정통을 주었다. 진수는 진晋의 신臣이므로 진晋에 칭제稱帝를 하자니 진晋의 사마의가 임금으로 섬겼던 조조에게 정통을 아니 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진수陳壽는 삼국지를 편찬할 때 유비와 유선한테는 선주先主 후주後主라 쓰고, 오吳의 손권한테는 그대로 열전列傳에 손권이라 썼다. 역시 마음속으로는 크나큰 가책苛責을 느꼈던 것이다. 본문本文의 붓을 들기 전에 잠깐 삼국지와 삼국지 연의를 말해서 혼동이 없도록 밝혀 둔다.

월탄 박종화 삼국지 4

삼국지의 진수를 읽는다! 세상에서 흔히 삼국지三國志와 연의演義 삼국지三國志를 혼동한다. 삼국지는 정사正史요, 연의 삼국지는 역사소설이다. 삼국지는 진晋시대의 진수陳壽의 찬撰을 송宋의 배송지裵松之가 주註한 것으로 <위지魏志> 30권, <촉지蜀志> 15권, <오지吳志> 20권 도합 65권으로 되어 있다. 위魏를 정통으로 인정하여『위지魏志』에만 본기本記가 있고 촉蜀과 오吳는 열전列傳이 있을 뿐이다. <사기史記>, <한서漢書>, <후한서後漢書>와 함께 전사사前四史의 하나로서 양서의 평판이 높았다. <위지魏志>에 나타나는「부여전夫餘傳」,「고구려전高句麗傳」,「옥저沃沮」,「읍루??婁」,「예穢」,「삼한전三韓傳」등은 우리나라 상대사上代史와 국문학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되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는 것이다. 이 정사 삼국지를 더욱 빛나게 한 것은 남조송南朝宋 시대, 배송지裵松之가 문제文帝의 명을 받들어 모든 문헌을 수집하여 진수가 빠뜨린 것을 보궐補闕 고증함으로써 삼국지의 권위는 더욱 높아졌다 볼 수 있는 것이다. 삼국지 연의는 원·명元明간에 나관중羅貫中이 진수陳壽의 삼국지를 골자로 하여 소설화한 중국 4대 기서奇書의 제1위를 꼽는 본격적인 동양 최고의 역사소설이다. 이 책의 현존본現存本으로는 명明시대 홍치갑인(弘治甲寅:1494)에 간행된 것이 가장 오래된 것으로 24권, 240회로 되어 있고 비면扉面에는 ‘진晋, 평양후平陽侯, 진수사전陳壽史傳, 후학後學 나관중羅貫中 편차編次’라 씌어 있다. 동한東漢의 영제靈帝 중평中平 원년元年부터 붓을 들기 시작해서 진晋무제武帝 태강太康 원년元年까지 되어 마친, 전후 97년간의 사실을 소설로 구성시켰다. 홍치弘治 이후에도 삼국지 연의는 여러 문인의 손으로 되어 다수한 속본俗本이 많았으나 청淸의 순치갑신順治甲申(1644) 때, 모종강毛宗崗이란 사람은, 당시의 천하 문장이요, 문예 평론가였던 김인서金人瑞 성탄聖歎의 비평과 서문을 쓴 원본元本 성탄외서聖歎外書 120회, 삼국지 연의 제일재자본第一才子本을 간행하니 이로써 삼국지 연의는 정본定本이 되었고 모든 속본은 자취를 감추어 버리게 되었다. 지금 필자가 붓을 드는 것은 김성탄 원본 제일재자서第一才子書에 의거하는 것이다. 진수 <삼국지>는 조조의 위魏한테 정통을 주었으나, 나관중의 <삼국지>에는 주자朱子의 대의명분大義名分을 밝히는 춘추필법春秋筆法에 의해서 유비의 촉한蜀漢에게 정통을 주었다. 진수는 진晋의 신臣이므로 진晋에 칭제稱帝를 하자니 진晋의 사마의가 임금으로 섬겼던 조조에게 정통을 아니 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진수陳壽는 삼국지를 편찬할 때 유비와 유선한테는 선주先主 후주後主라 쓰고, 오吳의 손권한테는 그대로 열전列傳에 손권이라 썼다. 역시 마음속으로는 크나큰 가책苛責을 느꼈던 것이다. 본문本文의 붓을 들기 전에 잠깐 삼국지와 삼국지 연의를 말해서 혼동이 없도록 밝혀 둔다.

월탄 박종화 삼국지 5

삼국지의 진수를 읽는다! 세상에서 흔히 삼국지三國志와 연의演義 삼국지三國志를 혼동한다. 삼국지는 정사正史요, 연의 삼국지는 역사소설이다. 삼국지는 진晋시대의 진수陳壽의 찬撰을 송宋의 배송지裵松之가 주註한 것으로 <위지魏志> 30권, <촉지蜀志> 15권, <오지吳志> 20권 도합 65권으로 되어 있다. 위魏를 정통으로 인정하여『위지魏志』에만 본기本記가 있고 촉蜀과 오吳는 열전列傳이 있을 뿐이다. <사기史記>, <한서漢書>, <후한서後漢書>와 함께 전사사前四史의 하나로서 양서의 평판이 높았다. <위지魏志>에 나타나는「부여전夫餘傳」,「고구려전高句麗傳」,「옥저沃沮」,「읍루??婁」,「예穢」,「삼한전三韓傳」등은 우리나라 상대사上代史와 국문학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되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는 것이다. 이 정사 삼국지를 더욱 빛나게 한 것은 남조송南朝宋 시대, 배송지裵松之가 문제文帝의 명을 받들어 모든 문헌을 수집하여 진수가 빠뜨린 것을 보궐補闕 고증함으로써 삼국지의 권위는 더욱 높아졌다 볼 수 있는 것이다. 삼국지 연의는 원·명元明간에 나관중羅貫中이 진수陳壽의 삼국지를 골자로 하여 소설화한 중국 4대 기서奇書의 제1위를 꼽는 본격적인 동양 최고의 역사소설이다. 이 책의 현존본現存本으로는 명明시대 홍치갑인(弘治甲寅:1494)에 간행된 것이 가장 오래된 것으로 24권, 240회로 되어 있고 비면扉面에는 ‘진晋, 평양후平陽侯, 진수사전陳壽史傳, 후학後學 나관중羅貫中 편차編次’라 씌어 있다. 동한東漢의 영제靈帝 중평中平 원년元年부터 붓을 들기 시작해서 진晋무제武帝 태강太康 원년元年까지 되어 마친, 전후 97년간의 사실을 소설로 구성시켰다. 홍치弘治 이후에도 삼국지 연의는 여러 문인의 손으로 되어 다수한 속본俗本이 많았으나 청淸의 순치갑신順治甲申(1644) 때, 모종강毛宗崗이란 사람은, 당시의 천하 문장이요, 문예 평론가였던 김인서金人瑞 성탄聖歎의 비평과 서문을 쓴 원본元本 성탄외서聖歎外書 120회, 삼국지 연의 제일재자본第一才子本을 간행하니 이로써 삼국지 연의는 정본定本이 되었고 모든 속본은 자취를 감추어 버리게 되었다. 지금 필자가 붓을 드는 것은 김성탄 원본 제일재자서第一才子書에 의거하는 것이다. 진수 <삼국지>는 조조의 위魏한테 정통을 주었으나, 나관중의 <삼국지>에는 주자朱子의 대의명분大義名分을 밝히는 춘추필법春秋筆法에 의해서 유비의 촉한蜀漢에게 정통을 주었다. 진수는 진晋의 신臣이므로 진晋에 칭제稱帝를 하자니 진晋의 사마의가 임금으로 섬겼던 조조에게 정통을 아니 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진수陳壽는 삼국지를 편찬할 때 유비와 유선한테는 선주先主 후주後主라 쓰고, 오吳의 손권한테는 그대로 열전列傳에 손권이라 썼다. 역시 마음속으로는 크나큰 가책苛責을 느꼈던 것이다. 본문本文의 붓을 들기 전에 잠깐 삼국지와 삼국지 연의를 말해서 혼동이 없도록 밝혀 둔다.

월탄 박종화 삼국지 6

삼국지의 진수를 읽는다! 세상에서 흔히 삼국지三國志와 연의演義 삼국지三國志를 혼동한다. 삼국지는 정사正史요, 연의 삼국지는 역사소설이다. 삼국지는 진晋시대의 진수陳壽의 찬撰을 송宋의 배송지裵松之가 주註한 것으로 <위지魏志> 30권, <촉지蜀志> 15권, <오지吳志> 20권 도합 65권으로 되어 있다. 위魏를 정통으로 인정하여『위지魏志』에만 본기本記가 있고 촉蜀과 오吳는 열전列傳이 있을 뿐이다. <사기史記>, <한서漢書>, <후한서後漢書>와 함께 전사사前四史의 하나로서 양서의 평판이 높았다. <위지魏志>에 나타나는「부여전夫餘傳」,「고구려전高句麗傳」,「옥저沃沮」,「읍루??婁」,「예穢」,「삼한전三韓傳」등은 우리나라 상대사上代史와 국문학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되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는 것이다. 이 정사 삼국지를 더욱 빛나게 한 것은 남조송南朝宋 시대, 배송지裵松之가 문제文帝의 명을 받들어 모든 문헌을 수집하여 진수가 빠뜨린 것을 보궐補闕 고증함으로써 삼국지의 권위는 더욱 높아졌다 볼 수 있는 것이다. 삼국지 연의는 원·명元明간에 나관중羅貫中이 진수陳壽의 삼국지를 골자로 하여 소설화한 중국 4대 기서奇書의 제1위를 꼽는 본격적인 동양 최고의 역사소설이다. 이 책의 현존본現存本으로는 명明시대 홍치갑인(弘治甲寅:1494)에 간행된 것이 가장 오래된 것으로 24권, 240회로 되어 있고 비면扉面에는 ‘진晋, 평양후平陽侯, 진수사전陳壽史傳, 후학後學 나관중羅貫中 편차編次’라 씌어 있다. 동한東漢의 영제靈帝 중평中平 원년元年부터 붓을 들기 시작해서 진晋무제武帝 태강太康 원년元年까지 되어 마친, 전후 97년간의 사실을 소설로 구성시켰다. 홍치弘治 이후에도 삼국지 연의는 여러 문인의 손으로 되어 다수한 속본俗本이 많았으나 청淸의 순치갑신順治甲申(1644) 때, 모종강毛宗崗이란 사람은, 당시의 천하 문장이요, 문예 평론가였던 김인서金人瑞 성탄聖歎의 비평과 서문을 쓴 원본元本 성탄외서聖歎外書 120회, 삼국지 연의 제일재자본第一才子本을 간행하니 이로써 삼국지 연의는 정본定本이 되었고 모든 속본은 자취를 감추어 버리게 되었다. 지금 필자가 붓을 드는 것은 김성탄 원본 제일재자서第一才子書에 의거하는 것이다. 진수 <삼국지>는 조조의 위魏한테 정통을 주었으나, 나관중의 <삼국지>에는 주자朱子의 대의명분大義名分을 밝히는 춘추필법春秋筆法에 의해서 유비의 촉한蜀漢에게 정통을 주었다. 진수는 진晋의 신臣이므로 진晋에 칭제稱帝를 하자니 진晋의 사마의가 임금으로 섬겼던 조조에게 정통을 아니 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진수陳壽는 삼국지를 편찬할 때 유비와 유선한테는 선주先主 후주後主라 쓰고, 오吳의 손권한테는 그대로 열전列傳에 손권이라 썼다. 역시 마음속으로는 크나큰 가책苛責을 느꼈던 것이다. 본문本文의 붓을 들기 전에 잠깐 삼국지와 삼국지 연의를 말해서 혼동이 없도록 밝혀 둔다.

월탄 박종화 삼국지 7

삼국지의 진수를 읽는다! 세상에서 흔히 삼국지三國志와 연의演義 삼국지三國志를 혼동한다. 삼국지는 정사正史요, 연의 삼국지는 역사소설이다. 삼국지는 진晋시대의 진수陳壽의 찬撰을 송宋의 배송지裵松之가 주註한 것으로 <위지魏志> 30권, <촉지蜀志> 15권, <오지吳志> 20권 도합 65권으로 되어 있다. 위魏를 정통으로 인정하여『위지魏志』에만 본기本記가 있고 촉蜀과 오吳는 열전列傳이 있을 뿐이다. <사기史記>, <한서漢書>, <후한서後漢書>와 함께 전사사前四史의 하나로서 양서의 평판이 높았다. <위지魏志>에 나타나는「부여전夫餘傳」,「고구려전高句麗傳」,「옥저沃沮」,「읍루??婁」,「예穢」,「삼한전三韓傳」등은 우리나라 상대사上代史와 국문학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되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는 것이다. 이 정사 삼국지를 더욱 빛나게 한 것은 남조송南朝宋 시대, 배송지裵松之가 문제文帝의 명을 받들어 모든 문헌을 수집하여 진수가 빠뜨린 것을 보궐補闕 고증함으로써 삼국지의 권위는 더욱 높아졌다 볼 수 있는 것이다. 삼국지 연의는 원·명元明간에 나관중羅貫中이 진수陳壽의 삼국지를 골자로 하여 소설화한 중국 4대 기서奇書의 제1위를 꼽는 본격적인 동양 최고의 역사소설이다. 이 책의 현존본現存本으로는 명明시대 홍치갑인(弘治甲寅:1494)에 간행된 것이 가장 오래된 것으로 24권, 240회로 되어 있고 비면扉面에는 ‘진晋, 평양후平陽侯, 진수사전陳壽史傳, 후학後學 나관중羅貫中 편차編次’라 씌어 있다. 동한東漢의 영제靈帝 중평中平 원년元年부터 붓을 들기 시작해서 진晋무제武帝 태강太康 원년元年까지 되어 마친, 전후 97년간의 사실을 소설로 구성시켰다. 홍치弘治 이후에도 삼국지 연의는 여러 문인의 손으로 되어 다수한 속본俗本이 많았으나 청淸의 순치갑신順治甲申(1644) 때, 모종강毛宗崗이란 사람은, 당시의 천하 문장이요, 문예 평론가였던 김인서金人瑞 성탄聖歎의 비평과 서문을 쓴 원본元本 성탄외서聖歎外書 120회, 삼국지 연의 제일재자본第一才子本을 간행하니 이로써 삼국지 연의는 정본定本이 되었고 모든 속본은 자취를 감추어 버리게 되었다. 지금 필자가 붓을 드는 것은 김성탄 원본 제일재자서第一才子書에 의거하는 것이다. 진수 <삼국지>는 조조의 위魏한테 정통을 주었으나, 나관중의 <삼국지>에는 주자朱子의 대의명분大義名分을 밝히는 춘추필법春秋筆法에 의해서 유비의 촉한蜀漢에게 정통을 주었다. 진수는 진晋의 신臣이므로 진晋에 칭제稱帝를 하자니 진晋의 사마의가 임금으로 섬겼던 조조에게 정통을 아니 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진수陳壽는 삼국지를 편찬할 때 유비와 유선한테는 선주先主 후주後主라 쓰고, 오吳의 손권한테는 그대로 열전列傳에 손권이라 썼다. 역시 마음속으로는 크나큰 가책苛責을 느꼈던 것이다. 본문本文의 붓을 들기 전에 잠깐 삼국지와 삼국지 연의를 말해서 혼동이 없도록 밝혀 둔다.

월탄 박종화 삼국지 8

삼국지의 진수를 읽는다! 세상에서 흔히 삼국지三國志와 연의演義 삼국지三國志를 혼동한다. 삼국지는 정사正史요, 연의 삼국지는 역사소설이다. 삼국지는 진晋시대의 진수陳壽의 찬撰을 송宋의 배송지裵松之가 주註한 것으로 <위지魏志> 30권, <촉지蜀志> 15권, <오지吳志> 20권 도합 65권으로 되어 있다. 위魏를 정통으로 인정하여『위지魏志』에만 본기本記가 있고 촉蜀과 오吳는 열전列傳이 있을 뿐이다. <사기史記>, <한서漢書>, <후한서後漢書>와 함께 전사사前四史의 하나로서 양서의 평판이 높았다. <위지魏志>에 나타나는「부여전夫餘傳」,「고구려전高句麗傳」,「옥저沃沮」,「읍루??婁」,「예穢」,「삼한전三韓傳」등은 우리나라 상대사上代史와 국문학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되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는 것이다. 이 정사 삼국지를 더욱 빛나게 한 것은 남조송南朝宋 시대, 배송지裵松之가 문제文帝의 명을 받들어 모든 문헌을 수집하여 진수가 빠뜨린 것을 보궐補闕 고증함으로써 삼국지의 권위는 더욱 높아졌다 볼 수 있는 것이다. 삼국지 연의는 원·명元明간에 나관중羅貫中이 진수陳壽의 삼국지를 골자로 하여 소설화한 중국 4대 기서奇書의 제1위를 꼽는 본격적인 동양 최고의 역사소설이다. 이 책의 현존본現存本으로는 명明시대 홍치갑인(弘治甲寅:1494)에 간행된 것이 가장 오래된 것으로 24권, 240회로 되어 있고 비면扉面에는 ‘진晋, 평양후平陽侯, 진수사전陳壽史傳, 후학後學 나관중羅貫中 편차編次’라 씌어 있다. 동한東漢의 영제靈帝 중평中平 원년元年부터 붓을 들기 시작해서 진晋무제武帝 태강太康 원년元年까지 되어 마친, 전후 97년간의 사실을 소설로 구성시켰다. 홍치弘治 이후에도 삼국지 연의는 여러 문인의 손으로 되어 다수한 속본俗本이 많았으나 청淸의 순치갑신順治甲申(1644) 때, 모종강毛宗崗이란 사람은, 당시의 천하 문장이요, 문예 평론가였던 김인서金人瑞 성탄聖歎의 비평과 서문을 쓴 원본元本 성탄외서聖歎外書 120회, 삼국지 연의 제일재자본第一才子本을 간행하니 이로써 삼국지 연의는 정본定本이 되었고 모든 속본은 자취를 감추어 버리게 되었다. 지금 필자가 붓을 드는 것은 김성탄 원본 제일재자서第一才子書에 의거하는 것이다. 진수 <삼국지>는 조조의 위魏한테 정통을 주었으나, 나관중의 <삼국지>에는 주자朱子의 대의명분大義名分을 밝히는 춘추필법春秋筆法에 의해서 유비의 촉한蜀漢에게 정통을 주었다. 진수는 진晋의 신臣이므로 진晋에 칭제稱帝를 하자니 진晋의 사마의가 임금으로 섬겼던 조조에게 정통을 아니 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진수陳壽는 삼국지를 편찬할 때 유비와 유선한테는 선주先主 후주後主라 쓰고, 오吳의 손권한테는 그대로 열전列傳에 손권이라 썼다. 역시 마음속으로는 크나큰 가책苛責을 느꼈던 것이다. 본문本文의 붓을 들기 전에 잠깐 삼국지와 삼국지 연의를 말해서 혼동이 없도록 밝혀 둔다.

월탄 박종화 삼국지 9

삼국지의 진수를 읽는다! 세상에서 흔히 삼국지三國志와 연의演義 삼국지三國志를 혼동한다. 삼국지는 정사正史요, 연의 삼국지는 역사소설이다. 삼국지는 진晋시대의 진수陳壽의 찬撰을 송宋의 배송지裵松之가 주註한 것으로 <위지魏志> 30권, <촉지蜀志> 15권, <오지吳志> 20권 도합 65권으로 되어 있다. 위魏를 정통으로 인정하여『위지魏志』에만 본기本記가 있고 촉蜀과 오吳는 열전列傳이 있을 뿐이다. <사기史記>, <한서漢書>, <후한서後漢書>와 함께 전사사前四史의 하나로서 양서의 평판이 높았다. <위지魏志>에 나타나는「부여전夫餘傳」,「고구려전高句麗傳」,「옥저沃沮」,「읍루??婁」,「예穢」,「삼한전三韓傳」등은 우리나라 상대사上代史와 국문학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되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는 것이다. 이 정사 삼국지를 더욱 빛나게 한 것은 남조송南朝宋 시대, 배송지裵松之가 문제文帝의 명을 받들어 모든 문헌을 수집하여 진수가 빠뜨린 것을 보궐補闕 고증함으로써 삼국지의 권위는 더욱 높아졌다 볼 수 있는 것이다. 삼국지 연의는 원·명元明간에 나관중羅貫中이 진수陳壽의 삼국지를 골자로 하여 소설화한 중국 4대 기서奇書의 제1위를 꼽는 본격적인 동양 최고의 역사소설이다. 이 책의 현존본現存本으로는 명明시대 홍치갑인(弘治甲寅:1494)에 간행된 것이 가장 오래된 것으로 24권, 240회로 되어 있고 비면扉面에는 ‘진晋, 평양후平陽侯, 진수사전陳壽史傳, 후학後學 나관중羅貫中 편차編次’라 씌어 있다. 동한東漢의 영제靈帝 중평中平 원년元年부터 붓을 들기 시작해서 진晋무제武帝 태강太康 원년元年까지 되어 마친, 전후 97년간의 사실을 소설로 구성시켰다. 홍치弘治 이후에도 삼국지 연의는 여러 문인의 손으로 되어 다수한 속본俗本이 많았으나 청淸의 순치갑신順治甲申(1644) 때, 모종강毛宗崗이란 사람은, 당시의 천하 문장이요, 문예 평론가였던 김인서金人瑞 성탄聖歎의 비평과 서문을 쓴 원본元本 성탄외서聖歎外書 120회, 삼국지 연의 제일재자본第一才子本을 간행하니 이로써 삼국지 연의는 정본定本이 되었고 모든 속본은 자취를 감추어 버리게 되었다. 지금 필자가 붓을 드는 것은 김성탄 원본 제일재자서第一才子書에 의거하는 것이다. 진수 <삼국지>는 조조의 위魏한테 정통을 주었으나, 나관중의 <삼국지>에는 주자朱子의 대의명분大義名分을 밝히는 춘추필법春秋筆法에 의해서 유비의 촉한蜀漢에게 정통을 주었다. 진수는 진晋의 신臣이므로 진晋에 칭제稱帝를 하자니 진晋의 사마의가 임금으로 섬겼던 조조에게 정통을 아니 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진수陳壽는 삼국지를 편찬할 때 유비와 유선한테는 선주先主 후주後主라 쓰고, 오吳의 손권한테는 그대로 열전列傳에 손권이라 썼다. 역시 마음속으로는 크나큰 가책苛責을 느꼈던 것이다. 본문本文의 붓을 들기 전에 잠깐 삼국지와 삼국지 연의를 말해서 혼동이 없도록 밝혀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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