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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이름:송충규

국적:아시아 > 대한민국

최근작
2016년 10월 <인공지능 크릭스-66>

금재철 최후의 수수께끼

미국의 미래학자 레이 커즈와일(Ray Kurzweil)은 닥쳐올 미래를 예견하면서 기술이 인간의 모든 고유영역을 초월하는 순간을 특이점(Singularity)이라 하였고 그 시점을 2040년 즈음으로 보고 있다. 정보통신공학(IT), 생명공학(BT), 나노공학(NT), 우주공학(ST), 로봇공학(RT)등 과학기술이 발전하는 속도를 보면 아마도 2040년 이후에는 인간의 삶을 혁신적으로 바꾸어 놓을, ‘과학의 세기’에 접어들 것이 분명해 보인다. 본 작품의 시간적인 배경도 21세기 중반에서 시작되는데, 현재 개발되고 있거나 미래에 실현될지도 모를 인공지능, 안드로이드, 입체영상 휴대전화, 클론, 기억조작과 이식, 화성식민지와 우주개발, 3D프린터, 택배전송기, 자율주행 자동차, 양자컴퓨터, 투명망토 등 다양한 과학기술문명의 결정체들이 필자의 상상력을 추가해서 소설 속에 등장한다. 과거와 달리 과학기술의 발전 속도는 대단히 빨라지는 추세에 있다. 전쟁이나 천재지변 같은 돌발 변수들을 배제한다면, 3,40년 후의 미래는 첨단과학기술문명으로 축복 받는 황금시대가 열릴 것 같다. 하지만 한편으론 상상을 초월하는 기술문명으로 오히려 행복하지 않다고 할 사람도 있을 수 있다. 미래에 대한 장밋빛 기대와 디스토피아적인 우려가 교차하는 가운데에 과학기술이 가져다줄 미래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뇌에 관한 문제가 그것이다. BT분야에서 뇌는 아직 인간이 풀어내지 못한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있어서 과학자들이 주목하고 있는데, 뇌의 10년(Decade of the Brain) 또는 뇌의 세기(Century of the Brain)라며 뇌 연구에 엄청나게 투자를 하는 국가들도 있다. 뇌에 직접 전극을 꽂거나 뇌파를 이용해 컴퓨터로 로봇이나 기계를 움직이는 BCI(Brain Computer Interface)나 CBI(Computer Brain Interface)등 뇌와 컴퓨터를 상호 연결하는 인터페이스는 뇌 연구의 일부분이며 계속 발전해가고 있다. 언젠가는 뇌를 컴퓨터 하드디스크처럼 편집이 가능케 하는 과학기술이 SF영화에서처럼 실현될지도 모른다. 또한 뇌의 비밀이 완전히 풀려서 뇌를 재현할 수 있게 된다면 인간은 불사(不死)의 경지에 이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인간이란 결국 물질에 지나지 않는 것이기에 철학적, 종교적인 고민이 시작될 수밖에 없다. 인간의 언어를 이해하고 인간과 상호작용하는 로봇의 인공지능도 뇌 연구에 기초하여 개발될 수 있을 것이다. 인공지능이 무한한 학습과정을 거쳐서 인간과 대등해지고 마침내 인간을 뛰어넘는다면 인류에게 축복일지 재앙일지 가늠키 어렵다. 이미 게놈 프로젝트를 통해서 인간 유전체의 염기서열을 해독하였다. 개인의 유전자 특성에 맞는 맞춤의약품으로 난치병을 정복하거나 노화와 질병을 예방하고 인체의 각종 장기마저 바이오 3D프린터로 뽑아내서 이식하는 시대가 오면 인간은 기어코 불로장생하고 말 것이다. 어쩌면 커즈와일이 언급한 것처럼 사람의 뇌를 전부 스캐닝 하여 컴퓨터에 저장하면 인간의 의식이 컴퓨터 안에서 영생하는 상상을 초월하는 일도 일어날 수 있다. 상상이 지나치다고 할지 몰라도 분명히 큰 고민거리임에는 틀림없다. 지금은 불가능할 것만 같은 과학기술이지만 실현이 안 된다고 단언키는 어렵다. 과거를 돌이켜볼 때, 1960년대 중반에 얼굴을 보면서 전화통화를 하거나 손바닥크기의 TV를 휴대하는 시대가 21세기에 올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들이 있었고 실현이 되었다. 하지만 당시 예언했던 달나라로 수학여행을 가거나 가정에서 일하는 인간형 로봇은 아직 실현되지 못했다. 그럼에도 언젠가는 이루어질 것이다. 필자는 과학기술이 마냥 좋다고 예찬하지 않는다. 핵에너지가 원자력 발전이 되거나 핵폭탄이 되는 것처럼 과학기술을 인간이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명약이 될 수도 극약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양날의 검과 같은 과학기술이 가져올 빛과 그림자를 소설을 통해서 살펴보았으면 한다. 본 작품은 의식주 전반에서 인간의 삶이 혁신적으로 달라질 서기 2056년경의 한국을 배경으로 한다. 입체영상 휴대전화를 개발해 대박을 터뜨리고 갑부의 반열에 오른 젊은 벤처 사업가인 CEO 금재철에게는 비밀스럽고 경악할만한 사연이 숨겨져 있다. 그를 둘러싼 음모, 그의 미스터리를 집요하게 파헤치려 애쓰는 두 사람, 자신마저 자기를 믿지 못하는 과학기술이 낳은 폐해 등이 미래 사회의 밝고 어두운 면과 함께 얼기설기 얽혀서 전개된다. 인간이란 존재, 자아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에 도전하는 과학소설로 첨단과학을 소개하면서도 소설의 본질에 충실하기 위해 노력했다. 과학적인 근거가 있는 내용이 대부분이지만 순전히 필자의 상상인 부분도 있으니 분별을 요한다. 전문용어에 설명을 덧붙였으나 읽다가 지루하면 넘겨봐도 무방하며 혹시 자세하게 알고 싶은 분은 관련 서적을 찾아보시길 바란다. 소설을 통해서 다가올 미래가 어떤 모습일지 미리 그려보고 느껴보았으면 좋겠다. 과학기술이 이뤄낼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많은 사람들이 알고 관심을 가지기를 희망한다. 과학기술분야는 특히, 우수한 두뇌를 가진 젊은 사람들이 도전해볼 가치가 있는 신천지이다. 국가발전과 인류번영에도 이바지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직업이기에 사명감과 소명의식을 갖고 도전했으면 한다. 과학기술을 통하지 않고서 대한민국이 꿈꾸는 미래는 실현되기 힘들 것이다. 이 소설은 오래전에 기획되었고 시간이 나는 대로 과학 자료를 뒤져가며 보완을 해왔지만 부족하다고 느껴서 세상에 빛을 보지 못했다. 근래 늦은 나이에 카이스트 대학원에 진학하면서 소설과 관련된 과학적인 내용을 넓고 깊게 공부할 수 있었고, 그 결과들을 반영하여 대대적인 수정과 보완이 이루어졌다. 나름대로 읽는 재미와 감동을 얻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집필했다. 독자의 흥미를 위한 자극적인 부분도 더러 있고 과학기술의 전달에 치중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으나 결국은 인간의 이야기이며 인간이란 존재에 대한 철학적인 탐구가 담겨있으니 사유할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과학기술과 관련하여 전문적인 내용은 이광형 박사님(KAIST), 이종원 박사님(KIST), 김은기 박사님(인하대 생명화학공학부)께 검토를 받았으며 무리가 없다는 평을 들었다. 대단히 바쁘신 가운데 짬을 내서 도움을 주신 박사님들과 추천사를 보내주신 여러 선생님들께 지면을 빌어 감사의 말씀을 전하며 책이 출판되기까지 고생하신 전파과학사의 손동민 팀장님께도 고마움을 전한다. 2014년 3월 3일 - 서문

까미에게 일어난 이상한 일

늑대는 함정에 빠진 토끼를 구해준다고 약속한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약속은 “다른 사람과 앞으로의 일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미리 정하여 둠”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즉,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 상대와 미리 정해둠으로써 불확실한 미래의 불안을 제거하려는 의지의 표현이다. 하지만 토끼는 늑대를 믿지 못한다. 구해준다며 잡아먹을지도 모르기에 토끼의 의심은 어쩌면 당연하다. 약자인 자신과 강자인 늑대 사이의 약속은 지켜질 수 없고 늑대가 언제든 말을 번복하여 약속에 대해 책임지지 않아도 자신이 대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적대관계 또는 낯선 사람의 호의나 제안을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그가 진짜 도움을 주려는 것인지 또는 도움으로 위장해서 피해를 주려는 것인지 모르기에 의도를 의심한다. 특히나 약자나 을의 입장에서는 더욱 경계하게 된다. 낯선 자에 대한 의심을 풀기 위한 방편으로 그에 관한 소문이나 평판 등을 알아본다. 또한 외모, 태도, 어투 등 겉으로 드러난 것들에 주목한다. 그러나 이런 것들을 종합해서 얻어낸 결론은 편견이나 선입견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상대의 본심을 알기도 전에, 겪어보기도 전에 그 사람은 어떠한 사람일 것이라고 규정짓고 의도를 예단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이런 분석은 자신이 품은 의심을 해소할 수는 있어도 합리적이지 못할 뿐 아니라 판단오류의 가능성이 있다. 동화에 나오는 늑대는 자신을 믿어주지 않는 토끼 때문에 실망한다. 차라리 토끼가 믿는 대로 토끼를 잡아먹는 늑대가 되는 것이 자연스럽겠다고 말한다. “아무리 좋은 마음으로 다가가도 네가 믿지 않는다면, 나는 네가 생각하는 그런 늑대가 될 수밖에 없지 않겠니?” 처음 늑대는 토끼를 구해주겠다는 선한 의도로 접근했으나 늑대의 호의는 토끼에게 낯설기만 하다. 늑대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토끼는 호의(好意)를 적의(敵意)로 생각하고 대하니 결국 늑대도 포식자의 입장으로 변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타인의 마음을 알 수가 없고 행동을 예측할 수가 없기에 약속을 해도 배신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다. 그러나 배신할까 노심초사하면서 아무 약속도 하지 않고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미래에 이룰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게 된다. 늑대는 토끼에게 구해주겠다는 약속을 했다. 그렇다면 늑대도 자신의 선한 의도가 빛이 바래지 않도록 신뢰를 보였어야했다. 토끼가 의심하지 않도록 안심시킬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늑대는 토끼가 두 번째 탈출할 때에 근처의 나무에 숨어있었다. 늑대는 토끼가 무사히 탈출하는 것을 보고 싶어서였다고 할 수 있겠지만 그것은 늑대의 생각일 뿐이다. 토끼는 늑대의 행동을 불순하게 여겼고 마침내 둘 다 함정에 빠지는 결과를 초래했다. 약속은 상호신뢰를 바탕으로 한다. 또한 상대가 믿을 수 있도록 행동해야 약속은 지켜진다. 약속은 질병, 사고, 천재지변 같은 불가항력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어겨서도 저버려서도 안 되는 것이다. 자신의 이익과 편의에 따라 약속을 쉽게 깨트리는 일이 잦으면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하게 된다. 불신은 사회를 병들게 하고 혼란의 구덩이 속에 빠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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