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동안 신경정신과병원에 면회를 다녔습니다. 허전 시인과 서경숙 박사가 안내해주어 교화사업 강사로 교도소와 구치소, 소년원을 들락거린 지도 10년이 다 되어갑니다. 두 분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흰 벽, 높다란 벽, 쇠창살이 박혀 있는 창문을 보고 와서 시를 썼습니다.
오늘도 벽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이 시집을 바칩니다.
2016년 늦봄
1993년에 발간한 제4시집 『폭력과 광기의 나날』은 5쇄를 찍은 후 오래전에 절판되었습니다. 이 시집에 수록된 상당수의 시와 그 전후로 발표했던 시를 포함시켜 새로운 모습으로 시선집을 내게 되니 1970~80년대 수많은 사람을 옥죄었던 공포와 전율에 대한 기억이 되살아납니다. 21세기인 지금도 이 세상이 그때와 다를 바 없는 폭력과 광기의 나날임을 가슴 아파합니다.
■ 작가의 말_증보판
저는 등단 이후 어두운 색조의 시를 많이 썼습니다. 시집 제목이 ‘욥의 슬픔을 아시나요’ ‘뼈아픈 별을 찾아서’ ‘폭력과 광기의 나날’ ‘감시와 처벌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예수ㆍ폭력’ 등이었으니 짐작이 가지 않습니까. 저는 비극의 현장을 곧잘 시의 공간으로 삼았습니다. 이 지상에는 슬픈 일들이 많이 일어나지만 그래도 사랑을 실천한 사람들이 있을 거라는 생각에서 러브스토리를 수집해보았습니다.
좋은생각사에서 ‘깊이 빠져들다’란 제목으로 출간해준 이후 몇 쇄를 찍기도 했습니다만 10년 전쯤에 단행본 출간을 중단하겠다고 연락을 해왔습니다. 긴축재정을 펴기로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창고에 있는 제 책을 전부 보내주겠다고 하더니 대금도 받지 않고 남아 있는 전량을 부쳐주었습니다. 그 책들을 제게 시집을 보내주시는 분들에게 보답으로 부쳐드리다 보니 달랑 1권만 남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개정증보판을 낼 생각을 하고 있던 터에 달아실출판사의 요청을 받고 원고 정리를 하게 되었습니다.
예전 판에서는 편편이 일러스트가 들어갔는데 이번에 내는 개정증보판에서는 사진을 한두 장씩 넣기로 했습니다.
2022년 봄
이승하
■ 작가의 말_초판
유치환의 시 「행복」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그렇지요. 불변의 진리입니다. 인간이 타인을 사랑할 때보다 더 기쁘고 행복할 수는 없습니다. 사랑은 또한 맹목적이어야 합니다. Love is blind. 앞뒤 재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저돌적으로 하는 것이 사랑임을 저는 이 책을 준비하면서 깨달았습니다. 예술가들의 창조행위의 근저에는 이성에 대한 간절한 사랑이 있었다는 것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큐피드의 화살을 맞고 나서야 인간은 창의성을 발휘하고 천재성을 발휘하고 위대한 작품을 생산해냈던 것입니다.
제가 『좋은생각』의 의뢰를 받고 이 이야기를 연재하기 시작한 것은 1999년 11월이었습니다. 2002년 12월까지 38회 연재를 했었지요. 문학인의 생애는 우리가 대강 알고 있지만 러브스토리는 대개 숨은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저는 3년여 동안 세 군데 도서관을 샅샅이 뒤져 전기와 자서전, 저서와 번역서 등을 찾아 읽으며 그들이 어떻게 사랑했는지, 사랑의 기쁨과 슬픔을 어떤 방식으로 표출했는지 추적했습니다. 그 사람에 관련된 책을 읽고 난 뒤, 그다지 색다른 사랑이 아니어서 글쓰기를 포기한 적이 얼마나 많았는지 모릅니다.
단행본으로 읽고 싶다는 독자들의 요청이 있다고 하기에 원고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연재시에 다루었던 여러 사람이 빠졌고, 새로 많은 사람이 추가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국내 문인이 다수 들어가게 되었음을 다행으로 생각합니다. 연재물이 아닐 경우 원고 매수에 제한이 없어 보다 수월하게 썼습니다. 해외에 학술답사를 가서도 밤늦게까지 교정을 보고 새벽에 일어나 원고를 고쳤습니다.
제 첫 시집의 제목이 ‘사랑의 탐구’입니다. 그 시집에는 같은 제목의 시가 실려 있지요. 이렇게 끝납니다.
사랑은 그 집 앞까지 따라가는 것일까
세월처럼 머무르지 않는 것일까 낯선 누나가
흘러 들어오는 것이지 젓가락 장단에 잠 설치지만
사랑이란 다름아닌 침묵하는 것 부드럽게
어루만져주는 것 쓰다듬으면서
네가 하는 말을 다 이해한다고
고개 끄덕여주는 것
사랑하는 사람 사이에는 ‘사랑한다’는 말이 필요없습니다. 이심전심으로 통하는 사랑이 시인의 시심을 일깨웠을 테고 작곡가에게는 영감을 불어넣었을 것입니다. 이 자리에서 다룬 사랑의 사례는 그들의 작품과 업적, 명성과 더불어 1천 년의 세월이 흐른다고 한들 변하지 않으리라고 저는 믿습니다. 사랑은,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실천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 이렇게 살아 있으니, 혼신의 열정으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함으로써 우리의 생, 고귀해질 수 있는 것을.
2003년 겨울
이승하
제가 2000년에 낸 평론집의 제목이 '한국 현대시 비판'입니다. 제 앞 세대의 시인들뿐만 아니라 동시대의 시인들도 마음에 안 드는 구석이 있으면 혹독하게 비판을 가한 평론집이었지요. 제 자신 인구에 회자되는 시 한 편 쓴 적이 없으면서 가혹하게 남을 비난하여 자책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우리 현대시에 대한 열렬한 사랑을 감추지 않았습니다. 이 책은 서점에 나와 있는 '명시 해설'과 같은 책이 아닌, 한 명 시 애독자의 독후감상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서문에서)
시와시학사에서 낸 시집은 출판사가 문을 닫는 바람에 일찍 절판이 되고 말았습니다. 근 20년 세월이 흐른 지금, 달아실의 배려로 재판을 내게 되었습니다. 이 시집으로 제2회 지훈상을 받아 개인적으로 애정이 많은데 박제영 시인이 소생시켜 주셨습니다.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2020년 새봄을 맞으면서
이승하
시의 신 뮤즈에게 들리고 만 그대에게
1971년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칠레의 시인 파블로 네루다는 처음에 어떻게 해서 시를 쓰게 되었는가에 대해 <시>라는 작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니까 그 나이였어······.
시가 나를 찾아왔어.
몰라, 그게 어디서 왔는지.
모르겠어, 겨울에서인지 강에서인지.
언제 어떻게 왔는지 모르겠어.
아냐, 그건 목소리가 아니었고,
말도 아니었으며, 침묵도 아니었어.
하여간 어떤 길거리에서 나를 부르더군.
시를 쓰겠노라 억지로 마음먹고 쓴 것이 아니라 시의 여신 뮤즈가 찾아와서 자연스럽게 시를 쓰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시를 쓰고 싶어 하는 마음이 있었기에 시가 나를 찾아왔지, 시심이 없는 사람에게 시가 오지는 않습니다.
여러분은 시를 쓰고 싶은 생각이 든 적이 분명히 있었지요? 시가 어렵기만 하던가요?
제가 몸담고 있는 곳이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여서 그런지 저는 해마다 신문사 신춘문예와 문예지 신인상 공모, 각 지역 문화재단의 창작지원금 선정, 청소년 백일장 등에 나가 심사를 하게 됩니다. 서울 시내 대다수 대학에서 백일장을 실시하고 있고, 또 대다수 대학에서 백일장 우수 수상자를 수능시험 이전에 뽑습니다. 이를 특기자 수시 입학이라고 하지요. 기업체나 관공서의 글쓰기 공모전 심사에도 간간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고등학생들이 글재주를 겨루는 백일장의 열기는 뜨겁습니다만 좋은 작품을 만나기란 그다지 쉽지 않습니다. 독서 경험이 부족하여 어설픈 작품을 써내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기성시인의 작품을 흉내 내기도 합니다. 또래가 쓴 우수작들을 짜깁기한 작품도 간간이 눈에 뜨입니다. 수상작이 표절 시비에 휘말려 당사자가 인생의 큰 굴곡을 겪는 경우도 있지요.
백일장에 나가 몇 번 상장을 받으면 대학 입학의 특전이 주어지니 ‘좋은 글쓰기’를 목표로 하지 않고 ‘백일장에 나가 입상하기’를 목표로 두는 학생이 뜻밖에 꽤 많습니다. 이것은 잘못된 것이기에 고쳐주어야겠다는 생각을 여러 해 전부터 하게 되었습니다. 청소년들이 책을 통해 꿈을 키우고 글을 쓰면서 마음의 수양을 하면 정말 좋겠습니다.
또한 나이가 마흔 정도에 접어든 직장인이나 주부라면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새로운 꿈의 씨앗을 뿌릴 생각을 해보게 되지 않을까요? 지금까지는 가족을 위해 불철주야 일만 해왔는데 시간을 좀 내서 지나온 생을 돌아보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명상에 잠겨볼 때가 있지 않을까요? 주부인 당신이 저녁에 찬거리를 사오면서, 직장인인 당신이 퇴근길에 술 한 잔 하고 집으로 가면서 문득 묘한 상실감이 엄습하지 않던가요? 그 친구가 그렇게 일찍 죽다니. 이렇게 금방 밀려나게 되다니. 자식은 이미 제 길로 가버렸는데 아내남편도 나를 이해해주지 않는구나. 상실감 정도가 아니라 뼈가 시린 고독감과 소외감 같은 것을 느껴보지는 않았습니까? 그때 시를 쓰고 싶은 마음이 생겨났다면 그것은 아주 자연스런 현상입니다.
시인인 저도 시를 쓰면 위안을 얻고 불안한 마음이 안정됩니다. 좋은 시집을 읽고 싶은 마음이 일어날 때도 있지요. 이 세상에는 자기 계발서나 처세술을 다룬 책은 차고 넘치지만 사랑, 외로움, 그리움, 죽음 같은 인생의 근원적인 문제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고 시로 써보게 하는 책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게다가 시를 써보고자 했을 때, 시중에 나와 있는 시 작법 관련 책은 많지만 대체로 어렵거나 딱딱합니다. 중고등학생은 물론 직장인, 주부들도 읽을 수 있는 시 창작 입문서를 써보고 싶었습니다. 그 책을 읽고 나서 ‘나도 시를 쓸 수 있겠구나’ 하는 자신감을 갖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런 책이 있다면 시에 관심이 있는 개인은 물론 우리 시가 자라나게 할 좋은 거름이 되겠지요.
좋은 시를 쓰기 위한 친절한 안내서를 쓰고 싶다는 생각을 여러 해 동안 해왔습니다. 저는 2004년 9월에 문학사상사를 통해 <이승하 교수의 시 쓰기 교실> 이란 책을, 2007년 3월에 <청소년을 위한 시 쓰기 교실>을 간행한 바 있습니다. 앞의 책은 대학생을 위한 시 입문서였고 뒤의 책은 고등학생을 위한 시 입문서였습니다. 그런데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문예창작전문가과정, 안성캠퍼스 평생교육원 시창작반, 한국문인협회 시창작반에서 시를 가르쳐보니 직장인과 주부를 위한 시 창작 안내서는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책의 제1, 3부는 <청소년을 위한 시 쓰기 교실>의 상당 부분을 다시 실은 것이긴 하나 그 원고를 다시 손보았고, 제2부는 새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제1부는 시의 초심자들인 여러분에게 도움이 될 만한 글을 15개의 장에 나눠서 썼습니다. 전문적인 시 창작 방법론이라기보다 시 쓰기에 관심이 있는 여러분을 위한 길 안내자 노릇을 하고 싶었기에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내용으로 엮어보았습니다. 시가 무엇인지, 왜 시가 좋은지, 어떻게 하면 시를 잘 쓸 수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제2부는 모두 편지글입니다. 평소에 안부를 전하고 싶었던 시인 분들에게 드리는 편지인데, 시에 대한 제 생각을 적은 글이라 여러분들에게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제2부의 글들도 모두 쉬운 내용이라, 시 쓰기의 초심자인 여러분들이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입니다.
제3부는 좋은 시를 직접 소개하고자 시와 함께 해설을 실었습니다. 평소에 이런 시들이 교과서에 실렸으면 하고 바랐던 18명 시인의 시를 선정하여 제 나름대로 해설의 글을 덧붙였습니다. 시인의 생애를 중심으로 쓴 것이기에 흥미롭게 읽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를 해봅니다.
‘시성詩聖’으로 일컬어지는 중국 당나라 때의 시인 두보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붓 놓자 풍우가 놀라고 시편이 완성되자 귀신이 우는구나.” “내가 쓴 시가 사람을 놀라게 하지 않으면 죽어도 그만두지 않으리라.” 이런 정신으로 시를 썼기에 두보는 1200년이 지나도 우리 곁에서 살아 숨쉬고 있는 시인입니다. 좋은 시는 타인의 마음을 움직입니다. 움찔하게 하거나 뭉클하게 하지요. 따갑게도 하고 따뜻하게도 합니다. 때로는 타인의 마음에 그림을 그립니다. 좋은 시를 쓰자면 많은 노력을 해야 하는데, 이 책이 작은 길잡이가 된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시 쓰기에 도움이 될 만한 책을 내고 싶은 의욕만 강할 뿐 이 책이 얼마나 널리 읽힐지는 자신할 수 없었는데 책 발간을 허락해주신 외우 윤승천 시인에게 마음 깊이 감사드립니다.
시를 참 좋아하는 아들 주형이 이 책을 읽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을 전하면서······.
2017년 늦여름에
바라보고만 있다가 다가가고자 했다.
살아 있는 것들을 내가 다가가 만졌을 때
반응을 한다는 것은 놀라운 일!
많은 우회로를 걸어 시로 돌아와
내 체온을 전했던 생명체들이여.
살아보겠다고 발버둥이치는 너희들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누추하기 짝이 없는
노래 몇 곡조 목 쉬도록 부르는 일,
이 고약한 일뿐이로구나.
안성 땅 내리에서
저는 이번에 『폭력과 광기의 나날』에서 못다 한, 예수에 관련된 폭력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고자 했습니다. 원수를 사랑하라고 말했다가, 왼쪽 뺨을 맞으면 오른쪽 뺨을 내밀라고 했다가, 십자가 처형을 당한 예수의 생애는 제게 불가사의였습니다. 이와 유사한 억울한 죽음은 역사상 또 얼마나 많았습니까.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이 교리인 기독교와 이슬람교가 수십 년째 극한의 대립 상태에서 살육을 일삼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을 가운데에 두고서 말입니다. 저는 중동의 폭력사태를 외신으로 수시로 접하면서 이 땅의 사계절이 아름답다고 예찬하고 인정 미담들이 훈훈하다고 미소 지을 수 없었습니다. 내면의 깊은 우물에 두레박을 내릴 수도, 난수표의 미로 속을 헤매 다닐 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시를 썼습니다. 사실상 거칠기 이를 데 없습니다. 정제된 언어를 구사하기엔 제 마음이 황무지였습니다. 사막이었습니다. 황무지와 사막에 언어의 씨를 뿌리다 보니 꽃들이 이렇게 피다 만 꼴이 되었습니다. 이번 시집을 끝으로 더 이상 ‘폭력’과 ‘광기’의 시편을 쓰지 말리라, 다짐을 해 보지만 잘 될지 모르겠습니다. 세상은 2000여 년 전이나 지금이나 폭력과 광기의 나날이며 공포와 전율의 나날이며 감시와 처벌의 나날입니다. 그래서 저는 시를 쓰고 있습니다. - 에필로그
바라보고만 있다가 다가가고자 했다.
살아 있는 것들을 내가 다가가 만졌을 때
반응을 한다는 것은 놀라운 일!
많은 우회로를 걸어 시로 돌아와
내 체온을 전했던 생명체들이여
살아보겠다고 발버둥이치는 너희들에게
내가 해줄 수 잇는 것은
누추하기 짝이 없는
노래 몇 곡조 목 쉬도록 부르는 일
이 고약한 일뿐이로구나
한국 시조문학의 미래가 더욱더 밝아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지난해 경주에서 열린 제5회 세계한글작가대회에서 “만약에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우리나라 사람으로 결정이 된다면 저는 시조시인이 받기를 바랍니다. 우리 시조의 역사로 봐서도 그렇고 시조의 가치로 봐서도 그렇고요.”라고 말했더니 한쪽에서 큰 박수가 나오고 환호성이 일어났다. 당연히, 시조시인들이었다. 그런데 시조가 국내에서 대접을 제대로 받고 있을까? 여기에 대해서는 누구도 선뜻 긍정적인 답을 할 수 없을 것이다.
이제 양적 팽창에 발맞추어 질적 심화가 이루어져야 할 때가 아닌가 한다. 대학 국문학과에서 시조 강좌가 다 폐강되었고 시조를 학문적으로 연구하는 학자가 지금은 별로 없다. 시조 평론가에게 주는 유일한 상이 7회 수상자를 내고는 폐지되었다. 중 · 고교 교과서에 고시조가 잘 안 실리고 현대시조는 아예 안 실린다. 시조를 아끼고 기리고 있는 나로서는 5년 전인 2015년에 <향일성의 시조 시학>이라는 시조전문 문학평론집을 낸 바 있는데 이번에 또 한 권을 묶게 되었다.
병실에 계신 그대에게
불이 꺼졌는데도 잠이 잘 오지 않지요? 오른쪽 침대에 있는 다른
환자의 가볍게 코고는 소리가 들려오고 왼쪽 침대 환자의 뒤척이는
소리가 들려올 테지요. 보안등 희미한 불빛 아래 잠 못 이루고 계신
여러분의 손에 가벼운 책 한 권을 들려드리고자 합니다.
건강신문사라는 언론사와 케이엠Km이라는 출판사를 같이 운영하
는 친구 윤승천 시인이 제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 이 형이 우리 출판사에서 낸『 시가 있는 편지』를 보니까 제일 앞
머리의 두 편이 투병중인 환자분들에게 드리는 편지던데요, 아예 환
자분들에게 보여드릴 책을 한 권 쓰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윤 시인의 제안은 지나가는 말로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진지하게
부탁을 계속하자 저는 투병 중인 환자분들에게 위로와 격려가 되는
책을 내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고 생각하여 그 책의 제일 앞머리 두
편 글을 포함, 총 10편의 글을 정리했습니다. 자기고백적인 내용도
있고 봉사활동하는 내용도 있고 생명에 대한 제 생각을 펼친 글도
있습니다. 제3부는 제가 쓴 10편의 시입니다.
저는 장모님이 입원해 계신 10년 넘는 세월 동안 종합병원과 요
양병원에 수시로 가 문병을 했습니다. 얼마나 많은 환자들을 봤겠습
니까. 어머니와 아버지가 모두 4개월 동안 입원해 계셨는데 마침 방
학이 끼어 있어서 침대 옆에 간이침대를 갖다놓고 새우잠을 잔 날도
많았습니다.
환자분들이 장기 입원해 계시는 경우, 무료한 나머지 많이 지겨워
하시더군요. 그분들이 침상에 두고 읽을 만한 책을 한 권 선물하고 싶
습니다. 그런데 이 책에 실려 있는 산문과 시가 여러분들에게 위로가
될지 어떨지는 솔직히 자신이 없습니다. 성경이나 불경에서 좋은 구
절을 발췌한 책이 오히려 큰 용기를 주지 않을까, 생각도 해보았습니
다. 하지만 이 땅의 하고많은 시인 중 한 명인 제가 정성을 다해 위문
편지를 쓴 것이라고 생각해주십시오. 초등학교 시절 이후 써보지 않
았던 위문편지를 쓴다는 생각에서 글을 다듬고 새로 쓰고 했습니다.
우리는 모두 생로병사의 쳇바퀴를 벗어날 수 없는 유한자입니다.
궁극적인 종착역이야 다들 같지만 우리는 주변에서 병을 이기고 퇴
원하여 아주 알차게 생을 꾸려가는 사람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퇴
원 이후의 삶은 한층 유쾌해지고 발랄해지지요. 새로 얻은 생명과
건강에 대한 고마움으로 일단 자신의 몸을 잘 챙기고, 가족에게 정
성을 많이 기울이고, 대인관계에서도 예전의 까칠함을 찾을 수 없습
니다. 제2의 생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더욱 멋지게, 더욱 보람차게.
자, 그러기 위해서는 병원 치료를 잘 받아야 합니다. 약도 수술도
중요하지만 여러분의 의지가 그에 못지않게 중요합니다. 어떠한 고
통이 와도, 절망적인 상황이 찾아와도, 용기를 잃지 마십시오. 퇴원
이후의 새 삶에 대한 희망만은 잃지 마십시오. 창 밖에는 눈부신 햇
살과 맑은 공기가 있습니다. 새와 풀벌레들이 짝을 찾으며 울고 있
습니다.
저는 꽤 긴 세월, 불면증으로 고생을 한 바 있습니다. 새벽이슬의
아름다움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합니다. 아침에 해가 떠오
르는 것도 기적이며 저녁에 노을이 깔리는 것도 기적입니다. 여러분
이 지금 살아서 치료를 받고 있다는 것도 기적입니다. 여러분이 완
전히 회복하여 퇴원하면 따스한 햇살이 반길 것입니다. 달과 별이
반길 것입니다. 가족과 친구가, 친지와 동료가 축하해줄 것입니다.
퇴원하는 그날까지 병한테 지지 말고 멋지게 이겨내기를 바랍니다.
2018년 봄바람을 기다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