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행 출판사 진작에 죽고, 이 시집도 따라 죽고, 시와 시집을 어쩌겠다는 스스로의 관심도 죽고, 이렇게 다 죽으니 그래, 옳구나, 다 잘 죽었다, 만고 땡, 편했는데……
절(絶)을 편애한다. 단절, 절단, 고절, 의절, 절멸, 멸절 등등. 오죽하면 절(絶)이란 제목의 시가 다 있을라. 그렇게 절을 통하면 들어서게 됐던 어떤 희미한 세계를 사랑한 것 같다. 그 세계 이름은 모른다……
20년의 정지, 끊어짐을 잇는 날이 생길 줄 몰랐다. 죽었기에 다시 살 줄 몰랐다. 죽어도 사는 일이 생겼다. 어색해 말자. 몸 둘 곳 몰라 말자. 죽었다 다시 사는 일을 창피하게 생각지 말자. - 개정판 시인의 말
그러고 보니 내 사유는 어린 그때부터 별과 진흙 사이를 오르고 내렸던 것 같다. 오르고내리며 언제나 그 사이에서 고달팠다. 항상 고달픔이 문제였으나, 오랜 시간이 쌓이고 쌓여 그 고달픔을 우리 삶의 구조, 내 존재조건으로 당연히, 자연스레 수납하였던 것 같다. 이제금 그 문제는 아무 문제가 아니었음을 안다. 별은 뭐고 진흙은 뭐란 말인가. 하나의 낱말일 뿐이지 않는가.
나는 살고(그래왔던 것처럼), 살다 갈 것이고
나는 시를 쓰고(그래왔던 것처럼), 시집을 내다 갈 것이다.
세상에 한 스승이 있다면, 스승이 있다면
이제 돌보아 주십시오.
손길을 더 가까이 주시고, 입김을 더 가까이 흘려 주십시오.
제자는 준비되어 잇습니다.
그 앞에 꽃을 뿌리고, 아닌 밤 더할 수 없는 오체투지로......
그만 거두어 주십시오.
한 생의 반 넘어 온 길, 이 긴 머리 기다림을 부디 끊어 주십시오.
쓸쓸한 무관심 맛없음 살고 있음을 허(虛) 자아라는 비(非)사랑......
그런 이름을 가진 스승이ㅣ여.
그 한때 이후 더하 ㄹ기쁨도 덜할 슬픔도 없으리니
잔 송사리 떼 물살 오르락이며 어리게 노는 모습 지켜볼 뿐
아, 이 지켜봄마저 죽여 주십시오.
스승을 원하는 이 마음마저
서릿발 한 말씀의 바퀴로 밀어 버려 주십시오.
1992년 4월
나의 일요일에 씀
이번 시집을 엮으며 죽은 엄마와 외할머니를 많이도 불렀다. 얼굴도 생사도 모르는 이북의 이복 윤희 언니까지 불러댔다. 세상에는 이름 부를 이가 없어 몸 없는 그들을 불러댔다. 몸 없어 차가운 그들만이 따뜻하여서 그립고 그리웠던 것. 나는 어려운 시간을 지나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많이 성가셨을 텐데 다 나한테 왔다갔다. 고맙다.
그런 속에서 예기치 않은 습작시절의 추억이 찾아왔다.
그 옛날 습작노트가 바뀔 때마다 맨 앞장에 좌우명처럼 박아놓았던 문장이 왔다.
― 내 나라는 이 땅에 있지 않다.
― 회복된다는 것이 두렵다 또 질병은 오리니.
두 문장 다 어디에서 베껴온 것. 이런저런 남독 속에서 출처도 모른 채 내 것인 양 가졌던 문장이다. 그걸 다시 읊으려니 어리고 비려 고개 돌려 비웃고 싶어진다. 비웃고 싶어진다는 것은 오늘의 일이지만, 습작시절의 어리고 비린, 그 힘껏 꾼 꿈은 다시 얻을 수 없고 만들 수 없다. 순결하고 고귀하다.
나 오랫동안 먹고 싸고 입고 바르느라고 끝도 없이 전락해 귀하고 중한 처음의 마음을 많이 잃었다. 그 마음 다시 아리게, 그러면서 따뜻하게 나를 건져주려 가난한 습작시절의 노트가 찾아와준 것은 복된 일이다.
그런 한편 지금 나는 이렇다.
내 나라가 이 땅에 있지 않으면 그럼 어디 있느냐. 이 땅에서 뜯어먹지 않으면 어디 가서 뜯어먹겠다는 거냐. 그리고 회복된다는 것이 두렵다고? 또 질병이 올 것이니까? 회복된다는 것은 대환영할 일이고, 다시 질병이 온다는 것은 새롭고 재미나는 일이다. 오라, 주는 대로 받아먹겠다.
"제 곡을 불며" "무심하게" "무섭게"(황현산) 다음의 시들에게로 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