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정신은 강물이 되어 나의 혈관을 분류한다. 때로는 약점잡이(索誤症)로 핀잔을 받으면서 그 강물은 나를 끊임없이 완전주의자로 조각한다. 이는 아마도 유교의 다기한 교리가 사방에서 메아리치는 어린 시절을 보낸 탓인지도 모른다.
10여 년 간의 공직 생활에서 이 나라의 사회경제적 발전 계획을 지켜보는 동안에도 나의 사시적 안목에 비친 서구화는 억지로 주조되며 삐걱거리고 있었다. 그 때 프린스턴대에서 1년간 수학할 기회가 주어졌다. 프린스턴대 윌슨스쿨의 장학생이 된 것이다. 나는 정치 사회 발전의 배경과 외국 자본 기술의 역할 그리고 토착산업의 향방에 대하여 연구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프린스턴에 머물면서 나는 제1분과 국제정치의 길핀 교수와 제2분과 근대화 발전론의 레비 교수의 지도 아래 나의 생각과 사색의 조각들을 정리해 나갔다. 유교학당의 교수이셨던 할아버님과 민족의학자이셨던 아버님의 주옥같은 교훈들이 늘 귓가를 맴돌며 나로 하여금 동양사회의 변화 과정과 그 발전 방향에 관심을 기울이도록 신칙하고 계셨다. 프린스턴이 마련해준 민박과 한 달 여에 걸친 버스 여행은 낯선 미국을 쉽게 받아들이도록 했고, 아늑하고 고풍스런 캠퍼스와 방대한 동양사료관(THE GEST LLBRARY)은 특히 그 방대한 한문漢文 사료와 이를 열독하는 학생들은 나로 하여금 경제 개발보다는 사회 변화에 보다 큰 관심을 기울이도록 격려해 주었다. 또한 북경대학의 광활한 자전거 주차장과 레닌의 초상이 모 주석과 함께 북경공원에 전시된 것을 스크린을 통해 접하고는 잠시나마 공자의 초상이 레닌과 짙게 겹쳐지는 환상에 사로잡혀 중국 사회의 변화 과정을 심도 있게 파고들고 싶은 충동을 느끼기도 했다.
생각을 이어갈수록 유교에 대한 나의 오랜 집념이 꺼지지 않고 점점 타오르고 있어 시간만 나면 조금이라도 대화를 나눌 수 있는 학생들을 찾아 나섰다. 자연 한국 학생들이 동무가 돼 주었다. 한 사회가 한 가족 질서의 연장 같은 질서-균형을 유지하고 고도의 지성적 지도하에 진보적 발전을 추동하는 사회제도의 확립 가능성이었다. 특히 생물학의 장진 박사, 물리학의 최승정, 우주공학의 김병성, 생화학의 장춘국, 경제학의 김병주·정운찬, 동양사의 변재현, 고고학의 안휘준 씨 등 제 학형들과의 짬짬한 의견 교환은 나의 설익은 생각들을 키워주는 밑그림이 되었다.
처음 들어본 엔트로피 이론을 내 생각의 과학적 기초로 삼게 된 것은 전적으로 이 분들 덕택이었다. 그 도움을 잊을 수 없으며, 평생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려 하고 있다. 물론 이 분들을 만날 계기를 마련해 주신 이한빈 박사님, 김정렴 실장님, 남덕우 장관님, 유훈 박사님의 보살핌은 내내 큰 빚으로 남아 있을 터이다.
더하여 연구 계획 작성 등 입학에 필요한 절차를 꼼꼼히 챙겨준 평생 외우 황인정 박사의 조언은 길이 잊을 수 없다.
批孔批林 드높은 가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