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 문학의 주류를 더듬어 올라가면 고대 그리스의 호메로스에 귀착된다. 아테네의 전성기에 이르러 극작가들은 그의 문학을 계승하여 극적(劇的)으로 승화 발전시켰다. 디오니소스제(祭)에 바치는 봉납극(捧納劇)의 형태로 시작된 그리스 비 ? 희극은, 기원전 2세기 이후로 지중해의 패권을 장악한 로마인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본래가 호전적인 민족으로 예술적 재능이 없었던 로마인은, 피지배 민족인 그리스인으로부터 문학 ? 철학 ? 종교 ? 미술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업적을 모방했다. 연극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그리스 희곡의 모방과 번안, 혹은 단순한 번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므로 학문과 예술에서 로마인의 독창적인 면모를 찾아보기 힘들며, 그리스 희곡을 언급한다는 것은 곧 로마 희곡을 언급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아리스토파네스는 고대 그리스의 최대의 희극 작가로 그의 작품은 무려 44편에 달하며, 그 중 11편과 다수의 단편들이 현재까지 남아 있다. 그의 작품은 당대의 사회 정세를 모르면 이해하기 어렵다. 당시의 도시 국가는 대단히 작은 공동체였다. 아테네와 스파르타 같은 대국도 오늘날의 국가라는 관념에서 본다면 시골의 소읍과 진배없어 서로의 혈통, 재산, 성격까지도 소상히 알고 있었다. ( … 후략 )
이 책을 읽는 분에게
이 책은 프랑스의 문호 로맹 롤랑(Romain Rolland, 1866〜1944)의 《마하트마 간디(Mahatma Gandhi)》를 우리말로 옮기고 여기에 몇 가지 부록을 첨가한 것이다. 롤랑은 주지하는 바와 같이 프랑스 근대의 지적(知的) 전통을 이어받아 행동과 사색의 통일에 의한 보다 높은 차원의 보편정신을 촉구한 작가로,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줄곧 반전·반파시즘 운동에 헌신해왔다.
이 책이 프랑스에서 일으킨 반향은 출간된 지 석 달 만에 31쇄가 나온 것을 보아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세련된 표현과 예리한 통찰, 그리고 정확한 지적——인간 간디와 그의 사상과 정신을 이만큼 리얼하게 부각시킨 책은 드물 것이다. 이 책은 출간되자 곧 영국과 독일을 비롯하여 유럽 각국어로 번역되고 인도어만으로도 세 가지 말로(인도어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번역되었으며 이제 뒤 게나마 우리나라에서도 빛을 보게 되었다.
간디 하면 우리는 먼저 왜소하고 깡마른 몸매를 흰 천으로 두르고 물레를 돌리는 모습을 머릿속에 떠올리게 된다. 하기야 이 영상만큼 그의 전모를 단적으로 상징하는 것은 없을 것이다. 그의 이름에 얹힌 마하트마(Mahatma)라는 호칭은 ‘위대한 영혼’이라는 뜻으로 인도인들이 그를 존경하여 부르는 하나의 존칭이며 원래 이름은 모한다스 카람찬드 간디(Mohandas Karamchand Gandhi)다. 흔히 세상 사람들은 간디를 가리켜 20세기의 ‘성자’라고 부른다. 그러나 간디 자신은 ‘마하트마’라는 존칭은 그런 대로 묵인했던 모양이지만 ‘성자’라는 말은 매우 어색하고 거추장스럽게 생각했던 것 같다.
그는 독실한 힌두교도였지만 신을 분명히 찾지는 못했다고 말하며 다만 마음 깊숙한 곳에서 들려오는 ‘조용하고 나직한 목소리(still small voice)’에 귀를 기울이며 이에 따라 움직이는 것을 유일한 신조로 삼고 살아왔다고 한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양심에 거슬리는 일을 생리적으로 몹시 고통스럽게 여겼고, 어린아이처럼 단순하여 ‘내가 잘못했어!’라는 말을 서슴지 않고 했으며 일체 권모술수를 알지 못했다. 그를 재판한 판사까지도,
“고원한 이상을 가진 인물, 고결하고 신성하게 살아가는 분— ”
이라고 존경할 정도였다. 1년에 5천 내지 6천 파운드의 수입이 있었지만, 한 달에 3파운드로 살았던 간디, 남들이 어쩌다가 손이 닿기만 해도 부정(不淨)하다고 해서 목욕재계(沐浴齋戒)하는 천민의 딸을 양녀로 맡아 기른 간디, 민중이 자기를 숭배하는 것을 자기 얼굴에 침뱉는 것보다 더 괴로워한 간디…… 이렇게 열거하자면 끝이 없지만, 로맹 롤랑은 그를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를 성자라고 불러서는 안 된다. 그는 결코 그것을 원치 않는다(그리고 그 때문에 그는 참으로 성자다).”
참으로 아이러니컬한 명언이다.
“1세기에 걸친 비인도적인 산업주의와 탐욕스러운 금권정치, 노예적인 기계주의, 신을 질식시키는 경제적인 물질주의에 빠진 유럽 문명의 고질화된 병소를 치료할 수 있는 하나의 처방으로서 간디의 정신을 배워야 한다”
라고 롤랑은 주장한다.
간디는 서구의 근대문명을 ‘커다란 악’이라고 고발하며 물질적인 행복을 인간의 유일한 목적으로 삼고 영혼에 대해서는 안중에도 없는 현대를 ‘암흑시대’라고 규정한다. 그는 이 문명이 안고 있는 허위와 탐욕과 포악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 1차 세계대전이라고 말하며 이렇게 덧붙인다.
“최근의 전란(1차 세계대전)은 오늘날 유럽을 지배하고 있는 문명의 마성(魔性)을 발휘했다. 모든 도덕률은 정복자들에 의해 분쇄되었다. 어떤 허위도 이익만 되면 비열하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모든 죄악의 배후에 숨은 동기는 추악하게도 물질적인 것이다. ……유럽은 악마를 숭배하고 있다.”
정신의 왕자요, 행동의 천재인 간디의 ‘아힘사(비폭력)’ 운동은 이른바 영웅적인 수동(受動)으로, 악을 악으로 대하지 고 사랑으로 대하는 강한 영혼의 비밀 무기이며 일명 무저항 운동이라고도 한다. 그런데 이 무저항은 신앙과 사랑과 헌신에 의해 추진되며 이 삼자의 힘으로 전개되는 대중의 ‘스와라지(자치)’ 운동을 가리켜 ‘사티아그라하(진리의 힘)’라고 부른다. 이 무저항은 자기 희생의 검(劍)으로, 그것은 무력한 평화주의가 아니라 하나의 전투다. 그것은 모든 정신력을 동원하여 ‘폭군의 의지’에 대항하는 것이며, 압박받고 약탈당하고 짓밟히는 인도 민중이 대영제국에 항거하는 유일한 전술이기도 하였다. 간디는 말한다.
“나는 비폭력이 폭력보다 훨씬 훌륭하며, 용서는 처벌보다 더욱 용감한 행위라는 것을 알고 있다. 용서는 무인(武人)의 영예다. 그러나 절제도 처벌할 힘이 있을 때에만 용서가 된다.”
간디가 인도의 독립운동에서 폭력을 배격한 것은, 그것은 막대한 희생을 전제로 하는 까닭에 전술적으로도 졸렬할 뿐만 아니라 설사 폭력에 의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더라도 그것은 진정한 의미의 승리가 되지 못하며, 폭력은 폭력에 의해 멸망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간디는 자기가 영도하는 ‘아힘사’ 운동이 폭력화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면 치욕과 온갖 고문과 죽음까지도 감수하겠다고 말했다. 그의 지도노선은 옳았다. 그가 비폭력 무저항 운동에서 거둔 승리는 현대에 유례가 없는 기념비적인 위업이며, 그 정신 유산은 인도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보내는 간디의 고귀한 선물이 아닐 수 없다.
끝으로 특별부록으로서 20여 년에 걸쳐 간디 영화를 제작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고 이로 인해 83년도 아카데미 감독상을 수상하였던 리처드 아텐버러 경(Sir Richard Atten-borough)이 편집한 《간디 어록(The Words of Gandhi)》을 덧붙였다. 이 어록이 간디의 이념과 철학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성자는 죽지 않고 시대와 더불어 영원히 산다. 간디도 그런 사람 중의 하나다. 그는 적어도 우리가 한 번쯤은 들여다보아야 할 마음의 거울임에 틀림없다. 이것이 오늘날 서구문명의 병폐에 다분히 오염된 이 땅의 메마른 정신 풍토에 이 책을 내놓는 의미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