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읽거나 봤던 이야기들은 온몸에 새겨져 있다. 여름에 대나무 카펫에 엎드려 책을 읽으면 팔꿈치에 자국이 남았다. 눌린 자국이 진할수록 몰입한 이야기였다. 낮에는 친구들과 그 이야기를 몸으로 실현했다. 뛰어다니고 소리 지르고 이름 붙였다. 집으로 돌아오면 다시 대나무 카펫에 드러누워 이런저런 이야기를 탐험하는 일의 연속이었다.
그런 시절은 어떤 이야기들과 함께 끝이 났다. 끝난 줄 알았다. 그러나 이야기들은 의외의 순간에 다시 나타나곤 했다. 어릴 때처럼 친구들과 몸으로 이야기를 실현하는 건 어려워졌지만 때로는 글로, 때로는 영상으로 이야기를 만들고 있다. 읽기와 보기에 할애하는 시간만큼이나 상상하는 시간, 직접 이야기 만드는 시간이 길어졌고 그 시간의 일부가 <러브 앤 피스>로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