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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국내저자 > 예술

이름:정성일

성별:남성

국적:아시아 > 대한민국

직업:영화평론가 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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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9월 <나의 작가주의 : 왕빙, 영화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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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젠가 영화는 세상이 될 것이다

  영화평론가 정성일 인터뷰, 1부.


   영화평론가 정성일을 둘러싼 이미지는 여러 가지입니다. 달필과 달변. 말을 글처럼(!) 사용하는 사람. 엄청 어려운 말을 자주 쓰는 사람. 영화를 쇼트 단위로 분해(혹은 난도질)해버리는 숏커트 매니아. 그래서 영화의 구조 안에서만 사는 것같은 사람. 영화 구조주의자. 영화 순혈주의자. 영화에 대한 낭만도 환상도 없이 온갖 분석에만 몰두하는 외골수. '평론가들은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만 하고 아무 쓸모없는 것들만 헤집는 것 같다'라고 할 때 누군가에게는 가장 먼저 떠오를 이름.


  이중에 어떤 것이 사실이고 어떤 것이 아닐까요. 혹은, 사실이긴 한데 사람들이 그 사실 자체를 오해하고 있지는 않았을까요. 혹시 그에 대한 어떤 오해는 우리가 영화 자체를 오해하고 있음에서 시작된 것은 아닐까요.


  답변을 들으면서 더 하고싶은 질문이 계속 생겨나는, 그러나 시간상 참아야만 했던 안타까운 인터뷰였습니다. 그러나 윤곽은 잡은 것 같습니다. 언젠가 영화는 세상이 될 것입니다. 부디 즐겁게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예술MD 최원호






알라딘- 책이 잘 팔리고 있습니다(웃음). 왜 잘 팔릴까요.

정성일- 음... 잘 모르겠어요. 영화가 흥행할 때는 여러가지 복합적인 요인이 있잖아요? 영화 <아저씨>가 원빈이 나온다는 이유(웃음) 하나만으로 성공한 건 아니니까요. 그것처럼 이 책에도 그런 여러 요소와 이유가 있을 겁니다. 저는 출판계가 돌아가는 건 잘 모르고, 그건 아마 이 분야의 전문가 분들께 여쭤봐야 답이 나올 것 같아요. 저는 각 분야들의 전문가를 존중합니다(웃음).

사실 영화에 관련된 책을 내는 사람들은 영화 책들이 그렇게 큰 반응을 얻지 못할 거라는 걸 알고 있어요. 저도 임권택 감독과 김기덕 감독과의 인터뷰 책을 냈었는데 그게 그렇게 판매가 좋진 않았던 걸로 알아요. 그러고보면 1970년대에는 문학비평집들이 많이 읽혔지요. 김현, 정과리... 많이 사서 읽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안 사게 됐어요. 딱 한 권 예외가 있는데 신형철이 쓴 <몰락의 에티카>예요. 그 외의 평론들은 어느 순간부터 독자들과 교감이 없이 그냥 자기 얘기만 하는 것 같거든요.

다시 생각해 봤는데, 이번 책을 사시는 분들은 그냥 영화 팬, 나머지는 올드독 팬들이 아닐까 싶은데(웃음).


  단 한 권. <몰락의 에티카>, 신형철 평론집  




알라딘- <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다>라는 제목은 중의적으로 보입니다. 하나는 비교적 일반적인 의미, 즉 시뮬라르크의 증대와 디지털 시대의 도래에 대한 것, 즉 다가올 미래에 대한 분석 혹은 예측입니다. 그런데 책을 읽으면서 제목이 다르게 느껴졌습니다. 말 그대로 영화의 어떤 진심 혹은 열망이 세상과 결국 소통할 방법을 찾게 되는, 영화가 곧 세상이 되는, 희망이나 목표 같습니다. 그리고 그 두 의미는 서로 역설적이고요. 혹시 그런 중의적 배치를 염두에 두셨나요?

정성일- 음... 우선 감사합니다. 이 책 내고 인터뷰를 여러 번 했지만 그걸 물어봐준 사람은 없었어요. 많은 사람들이 저 제목을 단순히 한 시네필의 호기어린 메시지 아니면 들뢰즈의 맥락대로만 생각해서 좀 실망했었어요.

물론 저 제목은 들뢰즈의 말이죠. 들뢰즈가 썼을 때는 음울한 의미였어요. 실재와 재현이 뒤섞이고 때로 자리가 바뀌기도 하는 혼란스러운 상황에 대해서죠. 지젝의 '실재의 사막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도 비슷한 맥락입니다. 9/11을 말할 때 사람들이 마치 영화 같다고 했었죠. 현실이 영화를 재현하는 것, 스펙터클이 이 세계의 뭔가를 뒤집었어요. 리얼리티가 재현을 재현하게 되는 역재현이 이루어지고 있는 거죠. 그래서 알랭 바디우는 21세기의 유일한 목표는 실재에 대한 열정이다라고 얘기했어요. 그만큼 실재의 위치가 뒤집혀서, 잘못 지정되어있다는 것이고, 그게 시급한 문제라는 거죠. 그래서 철학에 비추어진 영화는 주로 비관적이에요.

(잠시 침묵) 일개 영화 평론가가 세상을 바꿀 수는 없지만, 무언가를 해야 해요. 그렇다면 좋은 영화를 방어함으로써 나쁜 것과 구분짓고, 그것으로 긍정을 이야기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이렇게 말해보죠. 언젠가 세상은 '나쁜' 영화가 될 것이다, 가 철학의 이야기라면, 저는 언젠가 세상은 '좋은' 영화가 될 것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그랬으면 좋겠다. 그렇게 되어야 한다. 싶다, 좋겠다, 되어야 한다... 시급하고 당면한 과제죠. 영화는 과제입니다. 영화를 낭만적으로만 생각하는 분들이 있어요. 로맨틱한 환상 같은 걸로요. 그렇지 않습니다.



알라딘- 방금 말씀과 책 속의 김선일 비디오, 지아장커와의 대담 등을 종합해보면, 영화는 단순히 스펙터클이나 가상 현실의 체계에 그치지 않습니다. 오히려 주체적으로 동시대를 표현하고 그와 소통하기 위한 또다른 종류의 어법일 수 있다는, 혹은 그래야만 한다는 말씀이신데요. 이건 그간 정성일이라는 이름에 대한 선입견과는 거의 반대되는 이야기들 같습니다. 이를테면 영화 순혈주의자라거나(웃음), 혹은 영화 영성주의자라거나 하는, 영화 그 자체에만 몰두하는 사람 같은 이미지 말이죠.

정성일- 하하, 영성주의자라. (웃음)

알라딘-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 우리의 시대와 영화가 서로 어떤 합일점 혹은 통로를 찾아야 한다는 것인가요?

정성일- '이미' 모든 예술 중에 영화가 세상과 가장 가까이 있어요. 그래서 잘못하면 이 세상과 영화는 서로 뒤섞이거나 위치가 혼동될 위험을 갖고 있죠. 그와 반대되는 게 음악이 아닌가 싶어요. 루카치는 말년에 음악에 대해 몰두했지만 결국 결론을 내리는 데는 실패했죠. 그만큼 멀리 있어요. 말하자면 현실과 예술의 거리에는 수많은 스펙트럼이 있고, 영화는 가장 가까이에, 음악은 가장 멀리에 있는 것 같아요.

다시 영화에 대해서만 말하자면, 영화는 어떤 방식으로 찍어도 그 세상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어요. 영화 속에 세상의 흔적이 잠입하고, 그것이 영화에 어떤 동력을 제공하고, 움직이고 활동하게 만들죠. 이런 특성은 세상이 영화에 미치는 힘이기도 하지만, 거꾸로 영화가 세상을 흡수하는 능력이기도 해요. 그때 중요한 것은 만드는 자의 의지예요. 현실의 어떤 점을 흡수할 것인가를 결정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때로는 현실에 직접적으로 굴복하기도 하고, 반대로 지나치게 심미적으로 흘러가 버리기도 해요. 둘 다 아닙니다. 틀린 방법이에요.

중요한 것은 영화를 만드는 사람의 '선한 의지' 예요.

자, 이제 복잡한 문제가 발생하죠. 선은 무엇이고 악은 무엇인가. 어디까지가 선이고 어디부터는 악인가. 이쯤되면 철학의 지점에 다다라요. 따라서 저는 영화를 구성하는 세 가지 요소는 윤리-미학-정치라고 생각해요. 이 요소들 중에 하나만 무너져도 성립할 수 없어요. 이 윤리-미학-정치가 영화에서 가장 근본적인 질문입니다. 흔히 돈이냐 예술이냐라는 식으로 질문하는데, 그건 틀린 질문이에요. 너무 많은 것들을 단순화하죠. 틀린 질문이 틀린 답을 유도하고, 그런 식으로는 절대 어떤 결론에 다다르지 못해요. 예술이냐 아니냐, 이런 식으로 질문의 가능성을 좁혀버려서는 안돼요.



알라딘- 책에서도, 지금 인터뷰에서도 사회와 영화와의 관계, 탐색의 다양성, 이런 주제가 반복되어 나타납니다. CinDi(시네마 디지털 서울 영화제)에 참여하시는 이유도 그런 맥락에서인가요?

정성일- 네 참여하죠. 그건 임무예요. 굉장히 큰 임무이고 중요한 일입니다. 지금의 흐름이 어떻게 되어가는가, 동시대에 영화는 어떻게 바뀌어가고 있는가를 보여줘야만 해요. 단지 그 이유 뿐입니다. 아마추어적이죠. 그런데 영화제는 직업이 아니라 취미여야만 하거든요. 취미에서 한발만 벗어나도 바로 비즈니스-폴리틱스의 세계가 되어 버려요.

영화제에는 돈이 들어가는데, 취미다보니 그냥 돈은 쓰기만 하고 끝나요(웃음). 소위 문화 사업, 돈을 못 버는 일이죠. 여기에 누가 돈을 대면 돈 대신에 명분이나 다른 어떤 것을 가져가고 싶어 해요. 결국 영화제의 비전이나 태도attitude가 후원자들이 부여한 임무와 경쟁하는 상황이 벌어져요. 고용되는 것, 직원이 되는 거죠. 그래서 영화제는 취미여야 합니다. 프로페셔널한 아마추어랄까(웃음). 물론 현실적인 한계가 있을 수 있죠. 맞아요. 그래도 아직까지는 비교적 잘 해 오고 있는 것 같아요.



알라딘- 이쯤 되면 추천도서를 받는데요. 지금 인터뷰 분위기에 맞춰서(웃음), 미학적으로만 분석한 영화 책 말고, 세상과 관계하는 영화에 대해 읽어볼 만한 좋은 책이 있을까요?


정성일- 음, 정치적 입장에 따라 서로 다른 책을 봐야 할 것 같은데. 저는 영화 평론가답게(웃음) 60-70년대의 고다르 영화로 하죠. 저는 영화와 정치의 관계, 정치적 테제의 표현, 매체의 미학적 문제, 그리고 그런 메쏘드method들을 실행하는 방식 모두를 고다르에게서 배웠습니다. 거기에 대해 고민이 생길 때면 늘 다시 고다르로 돌아가요.

물론 이건 제 경우이고, 다른 것들을 떠올리는 사람들도 있을 거예요. 1920년대의 소비에트 영화, 혹은 지젝이라면 레닌이겠죠. 요새 재장전도 하고(웃음). 혹은 1960년대 라틴아메리카 영화들. 68중심의 유럽 영화들. 90년대의 중국 지하전영. 여러 방식이 있을 수 있어요. 그러나 역시 제게는, 영화정치라는 하드한 측면에서만 보자면 고다르죠.


  <레닌 재장전>, 알랭 바디우 외 (물론 지젝도 있음)



알라딘- <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다>에 보면 소위 영화광들이 렌즈와 필름과 같은 하드웨어적인 고찰에 매우 취약하다는 사실을 지적하셨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이런 문제들이 대단히 중요하고 핵심적인 부분'이라고 이어 말씀하셨는데요. 그 중요함이란 어떤 것인가요?

정성일- 결국... 영화에서 봐야 하는 건 영화죠. 무슨 말이냐면, 사람들은 보통 영화에서 줄거리나 배우를 본다는 거예요. 비평에서도 그런 경우를 많이 봅니다. 제가 동료들의 비평에서 가장 실망하는 경우는 비평이 영화와 TV를 구별하지 못할 때예요. 그럼 영화에서 영화를 본다란 뭘까. 쇼트를 보는 겁니다. 쇼트의 활동 범위. 활동력. 목적. 미학적 개념. 씬 속에서의 위치. 그리고 그 위치들의 상호 조직과 관계. 즉, 영화 안에서 쇼트라는 세포가 생명을 얻는 과정. 그 쇼트의 질료적 기반은 절대적으로 테크놀러지 그 자체입니다.

예를 들어 보죠. 지금 우리 대화가 영화로 촬영된다고 치면, 그 포맷이 1.33이냐 1.66이냐, 아니면 씨네마스코프냐에 따라 전혀 다른 장면으로 만들어집니다. 지금 우리를 찍는 장면, 이 씬을 규정하는 건 출연하고 있는 우리가 아니라 그 질료인 거예요. 저는 <아저씨>에 원빈이 나오냐 현빈이 나오냐, 무슨 빈이 나오냐는 관심이 없습니다(웃음). 구스 반 산트는 <엘리펀트>를 1.33으로 찍었어요. 그런데 <게리>는 그가 유일하게 씨네마스코프로 촬영한 영화입니다. 이 포맷 자체가 이미 그 두 영화의 차이를 설명하기 시작해요. 그걸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지금 우리가 앉아있는 이 씬-

지금 우리가 앉아있는 이 씬을 생각해 보면, 여러가지 가능성을 두고 결정을 해야 돼요. 카페 가운데냐 창가냐, 아침이냐 오후냐, 빛의 각도가 어느 정도냐, 여기서 영화의 하드웨어를 이해하는 것은 아주 중요해요. ASA(필름 감도) 몇 짜리 필름을 쓸 것이냐는 지금 창밖의 풍경을 함께 담을 것이냐, 아니면 노출 차이를 통해 하얗게 날려버릴 것이냐를 결정하는 잣대가 됩니다. 그 감도 차이만으로도 이 쇼트는 완전히 다른 특성을 갖게 돼요. 연출자의 의도가 전적으로 이 모든 것을 좌우합니다. 이건 모든 영화에 해당되는 이야기예요. 블록버스터든 독립영화든, 제작비가 얼마든, 모든 쇼트는 주어진 환경 하에서 그걸 만드는 사람의 선택으로 이루어집니다. 시네필이라면 거기에 호기심을 보여야 해요. 영화에 대한 질료적 이해 없이는 결코 쇼트의 관계 안으로 들어올 수가 없습니다.

음악을 예로 들면... 음악을 그냥 많이 듣는다고 해서 음악을 더 이해할 수 있는 건 아니예요. 한계가 있어요. 어느 순간부터는 씨디 장수와 그에 비례한 지식만 늘어납니다. 누가 작곡하고 누가 연주하고... 저도 그런 적이 있었어요. 아무리 들어도 뭔가 제자리를 도는 것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었죠. 그러다 음악을 좋아하는 어떤 분과 그에 대한 얘기를 했는데, 한참 얘기하다가 그 분이 조심스럽게 물으시는 거예요.

'그런데 혹시, 악보를 못 읽으시는 건 아니죠?'

그때 진짜 철렁했어요. 허를 찔린 기분이었죠. 지금은 아주 잘은 아니지만 악보를 읽을 수는 있어요. 그러니까 음악이 더 이해가 되고, 더 많은 걸 느끼게 됐어요. 음악을 받아들이는 태도의 변화가 이해의 폭을 넓힌 거죠.

영화도 크게 다르지 않아요. 아무 생각없이 보는 영화에서 얻는 건 목록들, 그러니까 감독 이름, 배우 이름, 제목 뿐이에요. 어느 순간부터는 양적으로만 팽창할 뿐이죠. 많이 본다는 것, 양적 팽창이 질적인 것으로 전환되는 순간moment, 그것이 질료적 기반에서 시작됩니다.





  *글이 길어져(정확히는 답변이 길어져) 이 인터뷰는 2부로 나뉩니다. 지금까지는 MD의 질문이었으며, 2부는 독자 여러분들의 질문으로 이루어집니다. <해안선>의 마지막 자막에 대한 해설, DVD와 코멘터리의 세계, 영화로부터 주어진 감각과 그에 대해 사유하기, '정성일 씨는 왜 글을 어렵게 쓰시나요' 등의 질문에 대한 답변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2부 가기는 <여기>를 누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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