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서울에서 출생하여 숙명여자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하고 4년 동안 중학교 국어교사로 재직했다. 1978년 남민전 조직활동중에 김남주 시인을 만났으며, 이듬해 남민전 사건으로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먼저 석방된 후 복역 중인 김남주 시인을 10여년 동안 옥바라지하다가, 1989년 그의 석방 한 달여 만에 결혼식을 올렸다.
1982년부터 대한가족계획협회에서 홍보일을, 1989년에는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에서 총무일을 맡았으며, 부평, 성남에서 소외된 여성들을 대상으로 야학활동을 했다. 역사와 사회에 대해 적극적인 참여의식을 가지고 소설을 비롯한 다양한 형식의 글들을 집필해 왔다. 1994년 김남주 시인이 3개월간의 힘겨운 암 투병 끝에 사망한 후 강화에 내려가 아들 토일이와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