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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국내저자 > 번역

이름:이석호

국적:아시아 >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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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7월 <글렌 굴드에게 듣다>

이석호

좋은 음악을 듣고, 좋은 글을 읽는 것이 낙이다. 그 낙을 다른 이들과 나누는 것이 또한 즐거워 그럴 궁리를 하고 지낸다. 20여 권의 음악 도서를 우리말로 옮겼다. 《다시 피아노》, 《음악에서 무엇을 들어 낼 것인가》, 《말러와 1910년의 세계》, 《쇼, 음악을 말하다》, 에드워드 사이드의 음악비평집 《경계의 음악》, 《스뱌토슬라프 리흐테르, 피아니스트》, 필립 글래스의 자서전 《음악 없는 말》, 《크레모나 바이올린 기행》, 《지휘의 발견》, 《인간으로서의 베토벤》, 《슈베르트 평전》, 《스타인웨이 만들기》, 《라흐마니노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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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말

<파블로 카살스의 마스터 클래스> - 2024년 7월  더보기

때로 어떤 음악가의 명성은 그가 행하고 이룬 바를 뛰어넘어 드높은 위상을 획득하곤 합니다. 엄청난 업적에 세상의 감사와 선의가 더해진 숭상이겠습니다. 제대祭臺 위에 놓인 거인의 동상 앞에 선 사람들은 삼가 공경하는 마음이 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감히 조금의 흠집도 낼 수 없는 명성이요, 짐짓 어깃장을 부려보자 싶어도 대단한 불경죄의 심판대에 오를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하는 압도적 높이입니다. 보통 이런 위인들에게는 ‘거룩할 성聖’ 자가 붙곤 합니다. 괴테는 시성詩聖이라는 칭호로 숭앙받았고, 베토벤은 ‘음악의 성인樂聖’으로 우러름을 받습니다. 그리고 이 책의 화자이자 주인공인 카살스 역시 ‘첼로의 성자’라는 표현이 몸에 착 달라붙는 옷처럼 자연스럽습니다. 생각해봅시다. 카살스 만한 연주자가 흔히 있었던가요? 자신이 종사한 악기에서 일가를 이룬 사람들이야 적지 않습니다만, 만약 그 악기 연주의 역사를 그 사람의 전과 후로 나눌 수 있는 인물을 꼽아보라 하면 다섯 손가락을 채우기도 쉽지 않습니다. 바이올린에는 파가니니요, 피아노에는 리스트이며, 노래는 엔리코 카루소와 마리아 칼라스 정도가 전부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첼로라는 악기가 독주 악기로서 위상을 획득한 건 누구보다 그의 공로였습니다. 주법의 혁신을 가져온 것은 물론이요, 첼로의 구약성서라 불리는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이라는 작품집을 연주회용 레퍼토리로 격상한 것이 또한 카살스였습니다. 음악평론가 하비 색스는 “오늘날 활동하고 있는 첼리스트 중에서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카살스가 남긴 혁신의 혜택을 받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단언했습니다. 첼로의 역사를 ‘비포 카살스’와 ‘애프터 카살스’로 나누어 마땅한 근거입니다. 그가 올라선 제대를 떠받치는 기둥이 음악뿐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에게 ‘성자’의 광휘가 더해진 이유는 음악 바깥의 행적에 기인한 바 큽니다. 카살스는 음악 이외의 분야에서도 분명히 자기 목소리를 낸 거인이었습니다. 군사 정권에게 멱살 잡힌 조국 스페인의 운명을 비통히 여겼고, 그에 앞서 세계 어디서든 평화와 자유, 민주를 갈망하는 목소리를 내길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프랑코 정권이 들어서자 조국의 독재 상황에 동조하거나 침묵하는 국가에서는 결코 무대에 서지 않겠노라 공언했고 그 다짐을 행동으로 실천했습니다. 전 세계의 존경을 받는 음악가가 망명 상태에서 벌이는 반정부 활동에 심기가 불편해진 프랑코의 최측근 인사는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만약 카살스를 생포하게 되면 당장 그의 팔을 팔꿈치 아래로 절단해 버리겠다”는 극언을 서슴지 않았다고 합니다. 대의를 위해 자신의 이익을 희생하는 그의 자세는 다른 면에서도 빛났습니다. 카탈루냐 사람들에게 좋은 음악을 접할 기회를 제공하겠다는 뜻으로 1920년 파우 카살스 오케스트라를 창단했고, 악단의 연주 기량이 일정 수준에 오를 때까지 몇 년간 사재를 털어 단원들에게 급료를 지급하며 연습시켰습니다. 뿐만 아니라 형편이 어려운 이들도 큰 경제적 부담 없이 훌륭한 음악을 만날 수 있도록 ‘노동자 연주회 협회’를 조직했습니다. 월수입이 500페세타에 미치지 못하는 이들이 오직 주머니 사정 때문에 음악에 다가가지 못하는 부조리를 막기 위해 소액의 연회비만 내면 협회의 회원으로 받아주었고, 회원들을 위해 연 6회의 무료 연주회를 개최했습니다. 이 책에서 우리는 카살스 본인의 육성과 주변인들의 회억을 통해 첼로의 성자와 만납니다. 한 줄짜리 촌철에서부터 비교적 긴 길이의 일화까지 모두가 카살스의 진면목을 짐작케 하는 값진 단편들입니다. 본문에는 담기지 않은 예화 하나를 덧붙이며 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1971년 10월 24일, 파블로 카살스는 뉴욕의 유엔 총회에 모습을 나타냈습니다. 그의 평생의 공적을 기리는 유엔 평화 메달을 수여 받는 자리였습니다. 유엔 사무총장 우탄트는 다음과 같은 치사와 함께 카살스의 목에 메달을 걸었습니다. “돈 파블로, 당신은 진실과 아름다움, 그리고 평화에 당신의 삶을 바치셨습니다.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또한 한 사람의 예술가로서 당신은 이 유엔 평화 메달이 상징하는 이상을 실천하셨습니다. 깊은 존경을 담아 이 메달을 당신께 수여합니다.” 카살스는 다음과 같은 인사말로 화답하며 첼로를 집어 들었습니다. “나는 근 40년 동안 대중 앞에서 연주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연주를 해야겠습니다. 이 곡은 ‘새들의 노래’라고 불립니다. 하늘을 나는 새들이 ‘피스(평화), 피스, 피스’ 하고 노래합니다. 이 음악은 바흐와 베토벤, 그리고 모든 위대한 음악가들이 사랑하고 우러렀음 직한 그런 곡입니다. 무척 아름다운 곡이며, 내 조국 카탈루냐의 영혼과도 같은 음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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