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십대에는 〈TV는 사랑을 싣고〉, 〈공개수배 사건 25시〉, 〈도전 골든벨〉, 〈역사스페셜〉 등의 TV 프로그램 대본을 쓴 방송 작가였다. 삼십대 중반에는 1억 원의 당선금을 내건 시나리오 공모전에서 1등으로 당선되어 데뷔한 시나리오 작가였다. 삼십대 끝자락에는 2년간 47개국을 여행하며 《여행의 여왕》이라는 제목의 여행기를 낸 여행 작가였다. 그렇게 적지 않은 세월, 작가라는 이름으로 살았다.
그러나 그것은 진짜 내가 원하는 이름, 진짜 내게 어울리는 이름이 아니었다. 그래서 불혹의 나이에 몽골로 나가 1년간 국제 구호 단체의 자원 활동가로 살았다. 그리고 한국에 돌아와 내 방식대로의 국제 구호 활동을 모색하며 ‘카메라야 부탁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그 결과 지금은 예술심리치료사라는 전혀 상상치 못했던 이름으로 새롭게 사는 중이다. 어쩌면 ‘내 진짜 이름 찾기’는 이제 비로소 시작일지 모른다. 그래서 설렌다. 그래서 고맙다. 그리하여 바로 지금, 이 순간을 나는 내 인생의 ‘화양연화’로 여기며 살고 있다.
영어와는 고등학교 졸업 이후 담쌓고 지냈고, 나이는 서른에서도 한참 후반인 데다, 허리 디스크에 툭하면 장 트러블로 고생하는 저질 체력이고, 전셋집을 빼서 마련한 여행 자금 3500만원이 재산의 전부인 여자! 바로 2007년 당시의 나다.
그런데 신기한 건, 여행을 하면서 보니 내 핸디캡이 오히려 메리트로 작용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는 것이다. 혼자 다닌 까닭에 행운을 더 많이 만날 수 있었고, 여자인 까닭에 세상의 소수자에게 더 마음을 내줄 수 있었으며, 나이가 많은 까닭에 꽃 같은 나이에 여행했을 때보다 더 깊고 넓게 세상을 볼 수 있었다.
여행을 하기 전 나는 하기 싫은 일과 미운 사람 투성이였고 사사건건 날을 세우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돌아온 지금은 하고 싶은 일과 좋은 사람이 너무 많아 우선순위를 고심하는 사람이 되었다. 또 희망, 믿음, 미래 등 전에는 가까이하지 않던 단어들을 지금은 내가 먼저 얘기하고 있다. 심지어 오늘은 무슨 일로 기쁘게 될까 기대하며 하루를 시작해서 이따금 스스로에게 묻는다. “미친 거 아냐?”
나조차 믿을 수 없는 이러한 변화는 723일 이라는 적잖은 시간을 길 위에서 보낸 덕분이다. 혼자 배낭여행을 하는 사람은 하루에도 수십 번씩 ‘결정'을 해야만 한다. 숙소에서 행선지까지 사소한 것도 일일이 선택해야 하고 끊임없는 돌발 상황에 즉각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결정도 책임도 누구에게 돌릴 수 없는 나의 몫. 그 결과는 수없는 자기환멸과 자기애의 롤러코스트였다. 그렇게 723일을 보내고 났더니, 내가 무슨 마늘과 쑥만 먹고 100일을 버틴 곰이라고 새로운 사람이 되는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지난 723일간 내가 겪은 길 위에서의 절망과 기쁨과 감동을! 그래서 아쉽고 부족하지만 이 책을 세상에 내놓는다. 그리고 감히 기대해본다. 업그레이드된 와 함께 탄생할 제2, 제3의 웅녀들을! 더불어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그녀들이 하게 될 이런 말을!
“그까이꺼 세계 여행~”
“그까이꺼 리스타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