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시인. 안서(岸曙)는 호. 본명은 김억(金億), 김희권(金熙權). 평안북도 곽산 출신.
1907년 정주군의 오산학교에서 수학, 1913년 일본의 게이오의숙(慶應義塾) 영문과에 입학, 1914년 도쿄 유학생들이 발간하는 ‘학지광(學之光)’에 시 ‘이별’ 등을 발표하여 창작 활동을 시작했다. 1916년 모교인 오산학교에 교사로 부임, 시인 김소월은 오산학교 때의 제자로, 김억의 지도를 받았다. 1920년대 초반 상징시의 시풍이 문단에 정착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1920년대 중반부터는 한시의 번역이나 민요 발굴 등에 노력하였다. 1922년 김소월을 처음 문단에 소개, 1923년 시집 ‘해파리의 노래’ 간행, 1924년 ‘동아일보’ 학예부 기자로 입사하였다. 잡지 ‘폐허’와 ‘창조’의 동인. 평양의 숭실학교 교사, 이 밖에도 에스페란토 보급에 앞장서는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1950년 6·25사변 때 납북되었다. 시집으로 번역 시집 ‘오뇌의 무도’(1921), 창작 시집 ‘해파리의 노래’, ‘봄의 노래’(1925), ‘먼동 틀 제’(1947), ‘민요시집’(1948)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