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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국내저자 > 소설

이름:이정은

본명:이수희

성별:여성

국적:아시아 > 대한민국

출생:, 대한민국 서울

최근작
2022년 8월 <슈뢰딩거의 고양이>

이정은

본명 이수희. 서울에서 태어나 용인에서 청소년기를 보냈고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문예창작전문가 과정을 졸업했다. 1989년〈월간에세이〉에 수필로 추천받았고 1991년〈월간문학〉 신인상으로 등단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1994년 첫 소설집《시선》을 출간한 이래 창작에 몰두하면서 이정은만의 소설세계를 구축해 냈다.
간결한 문체와 삶의 시련과 고통에서 길어낸 정교하고 감동적인 서사로 평단의 주목과 독자의 사랑을 받고 있으며, 십여 년간 서양철학 연구반에서 문학철학을 공부했다. 학구적이고, 성실하고, 도전하고, 열정적으로 치열하게 살면서 자신의 길을 가고 있는 그는 대한민국 젊은이들의 영원한 롤 모델이다.
소설집《피에타》,《불멸》,《세상에 말을 걸다》 등, 장편소설《그해 여름, 패러독스의 시간》,《플러스섬 게임》,《삼월의 토끼》,《블루 인 러브》,《웰컴 아벨》,《태양처럼 뜨겁게》 등을 펴냈다. 공저로《한ㆍ중정예작가초대소설집》 등이 있다.
만우박영준문학상, 들소리문학상 대상, 한국소설문학상, 학촌이범선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현재 한국소설가협회 최고위원, 한국가톨릭문인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대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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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말

<삼월의 토끼> - 2021년 9월  더보기

달려라, 벗어나라, ‘3월의 토끼!’ 여기 보호막 없이 세상을 견뎌내야 하는 한 생명의 삶이 있다. 지금 그녀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신은 혼자서 인간 만들기가 버거워 인간에게 대신 탄생의 과업을 주었다고 한다. 부담 큰 이 일을 기꺼이 하도록 남녀 간 강렬한 사랑으로써 생명을 탄생케 했다는 것이다. 생명은 양육과정에서도 탄생 못지않은 사랑을 필요로 한다. 탄생을 위해서일 때보다 더 큰 사랑으로써 여린 생명을 보듬어 자라나게 해야 한다. 낳고 키우는 이 둘 가운데 어느 한쪽만 부족해도 인류는 멸종될지 모른다. 살아 남는다고 해도 온전한 인격체로 영글지 못하는 쭉정이가 될지도 모른다. 부모가 버린 아이들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 어른들의 일방적인 생각, 계산에 의해 방치되는 아이들, 사회에 발붙일 곳 없는 아이들은 이내 범죄의 먹잇감이 되기 십상이다. 사랑의 관심과 격려라는 비빌 언덕이 없는 외톨이들을 돌봐주는 건 사회, 곧 우리 모두의 과제가 아닐 수 없는데 말이다. 축복받지 못한 죄 없는 생명들, 가난과 불륜으로 세상에 태어나 보호자 없이 막막하게 내 던져지는 생명들, 매 맞는 게 일상이 되어버리는 생명들, 음지에서 겨우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 생명들…. 그 고통은 어른이 되어서 복수하고 싶은 트라우마에 시달리게도 한다. 고통이 클수록 증오심도 커간다. 이런 부정적 마음에 가득 차서 세상을 살아가기란 얼마나 어렵겠는가. 진정 누군가 잡아주는 손길이 절실하건만. 사랑하는 남편을 빼앗아간 첩, 그가 낳은 남편의 딸을 키우며 미움을 다스리지 못해 악인이 되어가는 여자. 그 입장이 이해는 간다 해도, 미움의 매질 속에 살아야 하는 어린 생명의 삶은 비참 그 자체다. 그 여자, 그 어미의 죄를 고스란히 받아야 하는 한 일생을 그리고자 했다.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는 순간 피해는 과거요, 가해는 현재로 나타난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현재 가해자의 후회와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에 동의하게 되기도 한다. 피해는 과거에 이루어졌고, 가해자는 불쌍한 모습으로 용서를 구하는 모양새다. 피해 현장은 이미 지워졌고, 가해자는 변명이나 거짓말을 한다. 우리는 현실만 보고 객관적인 입장을 취하기 쉽다. 그러나 그 누구도 피해자의 고통을 고스란히 대변할 수는 없다. 당시 그 고통을 절감하지 않고는 나름의 판단으로써 선처니 감형이니 용서를 함부로 입에 담을 수는 없으리라. 세상을 놀라게 한 ‘정인이 사건’. 제2, 제3의 정인이들이 고통 중에 죽어간다. 우리는 사망 당시 상황으로 미루어 그 고통을 짐작할 따름이다. 정작 당사자가 당하고 있던 때의 그 고통을 우리가 어찌 다 헤아릴 수 있겠는가. ‘남의 갈비뼈 부러진 아픔보다 내 손톱 끝에 박힌 작은 가시 하나가 더 아프다’고, 피해 당사자가 아니면 어찌 그 고통을 다 알겠는가. 『삼월의 토끼』 주인공은 고통으로 인해 태어난 자체를 원망했고, 생명을 버리지 못해 살아남는다. 그늘이 깊으면 증오도 크다. 그리고 복수의 칼날을 벼린다. 버려진 아이들은 어느 연령에 도달하면 고아원도 더 이상 보호막이 되지 못한다. 이제부터는 보호하지 못한다고, 자립하라고 내보내진다. 아무 준비도 없이 사회로 내몰리면서 생활고며 사기며 사회악에 당하고 좌절하기 일쑤다. 어느 청년은 늘 칼을 품고 다녔다고 한다. “행여 길에서라도 나를 낳은 여자를 만난다면 칼로 찔러 죽이려”해서 였다고. 끔찍한 말이다. ‘부모님 은혜는 하늘같아서…’라는 노래도 있는데, 하물며 죽이려 한다니! 버릴 거면 왜 낳았는지, 그래서 온갖 고통을 겪게 했는지 묻고 응징하고 싶었다는 얘기다. 피해자의 편에 서면 복수심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그럼에도 이런 억울함과 분노를 넘어 사회가 그 악순환을 끊어내야 한다. 보호의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이 조금이라도 낫게 살만한 세상을 만들어가기 위해서라도. 복수의 장면만 보노라면 이거 지나치지 않은가 여길 수도 있다. 하지만 채찍에 휘둘린 당사자 주인공의 아픔을 안다면 함부로 판단할 수 있을까. 인과응보의 프레임을 떠나 지극히 비인간적인 행위는 그만큼 벌을 받아야하지 않을까. 생각에 생각을 더해 봐도 그때 약자의 고통을 다 느끼기란 어렵다. 폭력의 결과로 나타난 상처, 멍, 뼈 골절 등으로 짐작할 뿐. 직접 피해자, 주인공의 영과 육, 혼의 깊은 아픔 속으로까지 들어가 봐야 하리라. 영원히 잊힐 수 없는 아픔, 고통에 공감해 봐야 하리라. 그 결과, 복수에의 집착 또한 얼마나 허약하고 허망한 것인지에 대해서도. 약자로 살아가는 어린 생명에게 강자가 가한 폭력은 어떤 벌로도 용서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 고통을 모른 체 가해자들이 살아가게 두어서도 아니 될 것이다. 모든 행위에는 적절한 대가가 따라야 마땅할 터이니. 섣불리 용서라는 말로 얼버무리고, 당사자도 아닌데 왈가왈부하는 판정은 2차 가해에 다름 아니다. 칼날을 세우던 그 청년은 다행히도 복수의 마음을 버렸다고 한다. 이젠 홀로 설 수 있기에 모진 목숨이라도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한데 대해 감사할 차례라고 말했다. 소설의 사회적 순기능을 마다하고 이런 주제를 선택하게 된 까닭은 내 어릴 적 친구의 무표정한 모습을 기억 속에서 지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그는 이 세상의 삶을 스스로 마감하고 말았다. 이제 그 영혼을 위로해 줄 방법도 없다. 매를 맞고 절뚝이며 마당으로 쫓겨나던 친구 얼굴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삶의 희망을 잃어버린 자의 얼굴, 차마 쳐다보기도 어렵던 그 얼굴. 사람이라기보다 그저 지구상의 물체, 살덩이에 불과해 보였던 모습. 그에게 꼭 복수할 기회가 주어졌으면 했다. 그렇게 해서라도 혼을 달래주고 싶었다. 좀 더 살만한 세상을 꿈꿔보고 싶었다. 그 어떤 복수든 간에 나는 그녀에게 감히 면죄부를 주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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