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도는 쪽빛의 고향이다. 햇살이 비껴갈 즈음 쪽빛들이 본토배기 거드름을 피우다가 서로의 몸에 바람을 던져댄다.
우연히 왔던 곳에서 돌아갈 길을 잊기로 했다. 심해지던 환절기 비염이 조금씩 잦아드는 봄날, 단지 거쳐 가는 이방인의 옷을 벗어 걸어두고, 비로소 정박의 꿈을 생각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이곳까지 오게 된 이유를 생각지 말기로 했다. 그 이유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고나자 완도는 ‘아무것도’를 넘는 그 무엇이 되어주었다.
아직껏 한 번도 이방인의 삶을 벗어나 본 적이 없었다. 지금 이곳에서도 여전히 이방인의 행색을 벗어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이곳에서 밀려나거나 벗어날 생각도 없다. 설령 이방인의 행색으로 살아야 한다더라도 그냥 버티어낼 생각이다.
그러다 보면, 나에게도 쪽빛이 튀기지 않을까? 조금씩 조금씩 튀긴 쪽빛에 물들어 나도 본토배기들처럼 거드름을 피우게 될지도 모르지 않는가. 그러다가 나의 그리움이 쪽빛에 스며들어 나도 쪽빛이 될지도 모르는 일.
바다가 쪽빛으로 탄다. 쪽배가 흘러 들어온다. 배는 와서 정박하고 나는 정박하는 배를 지켜본다. 그냥.
그냥, 한없이 내가 가벼워지고 결국 그 가벼운 것마저 다 사그라들고나면 그 때 혹여나 이곳에서 본토배기인 내가 풀처럼 자라고 있을지도 모르기에. 그냥 서 있다. 어떤 씨앗 하나 있어 아직은 섬인 이곳에 나를 끌어들인 이유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