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의 혼란기에 선 인물들, 불교를 만나다
“바른 것을 북돋우고, 재능이 뛰어나며, 자신에게 주어진 때를 잃지 않고, 천하에 공명을 세우는 사람들을 위해 열전을 짓는다.”
사마천은 자신이 ‘열전’을 지은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 이러한 사람들을 위해 사마천이 지은 열전은, 그들의 삶을 통해서 우리가 어떠한 삶을 좇아야 하는지를 가르쳐 준다. 세상에 내던져진 인간은 정체성의 혼란을 겪기 마련이다. 그리고 이러한 개인적 혼란이 세상의 혼란과 만나게 되면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선택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문제가 된다. 물론 세상이 안정기일 때 우리가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하는지 명쾌할 것이다. 그러나 세상이 혼란기일 때 우리는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할까? 이 책은 우리에게 근대의 혼란기를 살아간 9명의 인물들의 삶을 펼치고 있다. 근대의 혼란 속에서 이 인물들은 불교와 관련을 맺으며 자신의 길을 걸었다. 어떤 이는 선불교를 중흥시키고, 어떤 이들은 불교를 개혁하였다. 어떤 이는 불교의 정체성을 탐구하는가 하면, 어떤 이는 불교 교리를 바탕으로 아주 새로운 종교를 창시해 냈다. 학자의 길과 투사의 길은 때로는 하나의 길이 되기도 했다. 그리고 어떤 이의 길은 변절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많이 휘기도 했다. 분명한 것은 이들의 자취가 선명히 남아 우리에게 9개의 길을 보여 주고 있다는 것이다.
9개의 길이 가리키는 길, 수행(修行) 혹은 수행(遂行)
9개의 길이 보여 주는 삶을 하나로 묶자면 어떤 말이 잘 어울릴까? 그것은 분명 ‘수행’일 것이다. 그것이 수행(修行)이었든, 수행(遂行)이었든 이 책의 인물들은 모두 수행하는 삶을 살았다. 물론 대부분은 그 둘을 함께하며 살았다. 경허는 끊겼던 선맥을 잇고 제자들을 가르쳐 한국 선불교를 중흥시켰다. 그의 무애행은 때로는 주변을 혼란스럽게 할 정도였으나, 그 시대의 혼란을 생각해 보면 아주 잘 어울리는 한 쌍일 것이다. 박한영은 불교인들을 넘어서 근대 지식인들의 멘토가 되어 근대 한국의 지식계에 크게 기여했다. 백용성은 불교를 개혁하고자 하며 실천불교를 시작했고, 「님의 침묵」으로 잘 알려진 한용운은 님을 향하여 치열하게 살아 민족의 애인이자 인도자가 되었다. 박중빈은 불교 교리를 바탕으로 새로운 종교인 원불교를 창시했으며, 최남선은 조선심을 찾으며 조선의 정체성, 한국 불교의 정체성을 탐구하였다. 비록 그의 마지막은 지탄받고 있으나, 그의 기여를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백성욱은 성과 속을 넘나들며 가르침을 주었고, 김법린은 시대와 함께하는 삶을 살았다. 그리고 신여성이었던 김일엽은 대선사가 되어, 일생의 전반기에는 여성들에게, 일생의 후반기에는 중생들에게 가르침을 남겼다. 비슷하면서도 각기 다른 이들의 수행이 언제나 바른길이었다고 보기는 힘들지도 모른다. 세간에서는 어떤 이의 길은 수행(獸行)으로 보기도 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들의 수행이 우리에게 남긴 자취가 하나의 길이 되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