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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개명나라 사람으로 산동 익도(益都) 출신이다. 자는 식여(式如), 호는 곤전(崑田)이다. 만력 23년(1595) 양응룡(楊應龍)의 반란을 효과적으로 해결하였다. 정유재란이 발발하자 명군 최고 지휘관에 해당하는 경략(經略)에 임명되어 만력 25년(1597) 3월~만력 27년(1599) 4월까지 전쟁을 지휘하였다. 두 차례 조선에 직접 주둔하며 울산 전투를 비롯하여 노량해전 등을 주관했으며, 전쟁이 끝난 후에는 조선에 남아 전후 처리를 직접 담당했다. 만력 27년 9월 전쟁의 공으로 태자태보(太子太保)를 받았다. 조선에서도 형개의 공로를 기리기 위해 서울에 선무사(宣武祠)를 세워 배향하였다. 만력 29년(1601) 남경병부상서에 임명된 이후 『경략어왜주의』를 편찬했다. 대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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