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 떼가 하멜린을 공격했을 때, 어른들은 ‘피리 부는 사나이’를 고용해 이를 해결하려 했다. 하지만 정작 문제가 해결되자 어른들은 약속을 저버렸고, 화난 사나이는 쥐 떼를 유인했던 방법으로 이번엔 동네 아이들을 데리고 사라져 버린다. 후안 마요르가는 ‘피리 부는 사나이’ 전설에서 어른들의 탐욕과 무능력을 보았고, 상상력을 동원해 이를 현재 우리 주위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건들과 연결시킨다. 실제로 1997년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라발 지역에서 벌어진 아동 성추행 및 음란물 제작 사건이 작품에 아이디어를 제공했다.
가난한 아이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가장해 파렴치한 욕망을 채워 온 부자 리바스, 이를 알고도 모르는 척 자식을 방치해 둔 부모, 직업적인 태도로 아이를 대하는 아동심리상담사, 사회정의를 위해 사건을 집요하게 파헤치지만 정작 자기 자식한테는 무관심한 판사, 진실을 보도한답시고 자극적인 기사만 쏟아 내는 언론은 이 시대 어른들의 모습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어른들의 무책임하고 무관심한 태도와 욕심에 아이들이 희생된 것이다.
연극은 열린 구조로 상연된다. 지문은 해설자를 통해 발화되고 무대장치는 관객의 상상력에 맡겨진다. 해설자는 등장인물의 행동, 생각, 때로는 심리도 설명하면서 관객이 사건에 몰입하기보다는 객관적인 관찰자가 되도록 만든다. 관객은 피리 부는 사나이의 피리 소리를 따라가듯 해설자의 설명을 따라가며 다양한 연극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1965년 마드리드에서 태어나 현재 스페인을 대표하는 극작가로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대학에서 수학과 철학을 전공했으며 1997년에는 독일 철학자 발터 베냐민(Walter Benjamin, 1892∼1940)에 대한 연구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마드리드와 근교의 중·고등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치기도 했으며 마드리드 왕립드라마예술학교에서 교수로 지내다 현재 카를로스3세대학에서 무대예술 강좌를 총괄하고 있다. 2011년에는 ‘라 로카 데 라 카사(La Loca de la Casa)’라는 극단을 창립해 1년에 한 번 직접 연출한 작품을 무대에 올리고 있다. 연극은 즐거움과 감동 외에도, 관객들이 자신의 삶과 자신이 사는 세상을 조명해 볼 수 있는 뭔가를 던져 주어야 한다고 마요르가는 생각한다. 또한, 수학과 철학을 전공한 자신의 이력을 증명하듯, 극 언어가 수학처럼 정확하기를 추구하고, 진정한 연극을 위해서는 사람들이 불편하게 느끼거나 회피하는 것에 시선을 고정시키도록 하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대표작으로는 <스탈린에게 보내는 연애편지(Cartas de amor a Stalin)>(1999), <천국으로 가는 길(Himmelweg)>(2003), <하멜린(Hamelin)>(2005), <맨 끝줄 소년(El chico de la ultima fila)>(2006), <다윈의 거북이(La tortuga de Darwin)>(2008), <영원한 평화(La paz perpetua)>(2008), <갈라진 혀(La lengua en pedazos)>(2011, 작가의 첫 연출작) 등이 있다. 현재 그의 작품들은 스페인에서 가장 많이 무대에 오르며, 가장 많은 상을 수상했고,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는 물론 이탈리아어, 포르투갈어, 폴란드어, 아랍어, 그리스어 등 25개 언어로 번역되어 다양한 나라의 무대에 오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