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2월 20일 : 34호
마음 속에서 주먹 한 번 쥐어본 직장인이라면
냉면은 여름 음식이지만 겨울 냉면이 별미라는 걸 알 만한 먹보들은 다 아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농담입니다...) 여름하면 괴담이지만 겨울 괴담도 또 별미죠. 한기를 오싹함으로 걷어내보면 어떨까요. 출판사 안전가옥이 기획한 앤솔러지물로 오피스 괴담이 찾아왔습니다. 범유진,최유안, 김진영, 김혜영, 전혜진 작가가 참여했는데요, 모두 직장생활 경험이 있는 분들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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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면은 여름 음식이지만 겨울 냉면이 별미라는 걸 알 만한 먹보들은 다 아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농담입니다...) 여름하면 괴담이지만 겨울 괴담도 또 별미죠. 한기를 오싹함으로 걷어내보면 어떨까요. 출판사 안전가옥이 기획한 앤솔러지물로 오피스 괴담이 찾아왔습니다. 범유진,최유안, 김진영, 김혜영, 전혜진 작가가 참여했는데요, 모두 직장생활 경험이 있는 분들이라고 합니다.
내게만 유독 비밀이 많은 작은 회사에서, 서늘한 비밀을 모르는 신입사원 〈오버타임 크리스마스〉
사연 많은 고택에서, 어떻게든 일이 되게 만들며 정부 행사를 준비하는 공무원 〈명주고택〉
계약 연장을 간절히 바라는 30대 후반 싱글맘 〈행복을 드립니다〉
상사의 횡포에 익숙해져 버린 사회 초년생 〈오피스 파파〉
업무 효율을 추구하는 초대형 물류 센터 업무 담당자 〈컨베이어 리바이어던〉
각자각자의 추억 속 서늘한 기억이 떠오를 만한 스토리라인이 돋보입니다. 하나하나의 사연이 하이퍼리얼리즘입니다. 이 레터를 읽어주실 독자분들은, 위의 다섯 이야기의 주인공 중 어떤 인물에게 가장 눈길이 갈지 궁금합니다. 전자상거래 회사에 근무하는 저는 물류센터 이야기를 읽으며 새해엔 좀 다르게 살아볼 큰 그림을 그려볼까 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요, 다음 한국문학 사랑 레터는 새해에 뵙겠습니다!
- 알라딘 한국소설/시/희곡 MD 김효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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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쪽 :
“이게 맞다고 생각해?”
강성필 팀장님이 물어보실 때마다 저는 늘 틀렸습니다. 이상하죠. 모든 문제의 답을 찍더라도 보통 하나는 맞힐 텐데 말이에요. 나중엔 제가 생각하는 대로 말하는 대신에 강성필 팀장님이 원하시는 대답을 유추해서 답하곤 했어요. 그래도 늘 오답이더군요. 강 팀장님 앞에서 저는 늘 확신을 가질 수 없었습니다. 근데 이게 꼭 강 팀장님 때문이라고 말할 순 없어요. 저는 늘 모든 것에 확신이 없는 사람이었거든요.
Q :
<계절은 짧고 기억은 영영>에서 1980년 광주에서 일어난 일을 쓰려 하는 '나'에게 '일기쓰기교실'의 동료는 그 일은 오래된 일이라고 말합니다. 2023년 겨울 영화 <서울의 봄>이 흥행중인데요, 이 영화도 오래된 일을 다시 말하고 싶어하는 영화입니다. 잊지 않고 계속 기록하는 사람이 주인공이라는 점에서,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이 인물에 대해 여쭙고 싶습니다.
A :
‘잊지 않고 계속 기록하는 사람’이라는 말씀이 어쩐지 위안이 됩니다. 기억에 관해서는 일본의 페미니스트이자 아랍문학전공 학자 오카 마리의 『기억 서사』의 한 구절 “사람이 무엇인가를 떠올린다고 할 때, 사람이 생각해내는 것이 아니라, 기억이 사람에게 도래하는 것이다”에 많이 기댔습니다. 오카 마리의 책을 읽다 보면 기억은 망각을 피하는 책무가 되고 기억의 재현에는 윤리가 따른다는 생각이 들어요. 바꾸어 말하면 소설 쓰는 사람으로서 저는 기억할 의무가 있지만, 그 기억을 소설로 쓸 때는 재현이 폭력이 되지 않게 조심해야겠지요. 그래서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은 자신의 기억을 ‘허구’가 아닌 ‘일기’로만 진술할 수 있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시 요약해서 답변을 드리자면 소설의 인물은 자신의 기억을 기록하면서 자기도 모르게 타인을, 시대를, 역사를 기억하고 마는 사람이 아닐까요. 그건 작가로서 제가 바라는 궁극의 행위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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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계절은 짧고 기억은 영영>에서 1980년 광주에서 일어난 일을 쓰려 하는 '나'에게 '일기쓰기교실'의 동료는 그 일은 오래된 일이라고 말합니다. 2023년 겨울 영화 <서울의 봄>이 흥행중인데요, 이 영화도 오래된 일을 다시 말하고 싶어하는 영화입니다. 잊지 않고 계속 기록하는 사람이 주인공이라는 점에서,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이 인물에 대해 여쭙고 싶습니다.
A :
‘잊지 않고 계속 기록하는 사람’이라는 말씀이 어쩐지 위안이 됩니다. 기억에 관해서는 일본의 페미니스트이자 아랍문학전공 학자 오카 마리의 『기억 서사』의 한 구절 “사람이 무엇인가를 떠올린다고 할 때, 사람이 생각해내는 것이 아니라, 기억이 사람에게 도래하는 것이다”에 많이 기댔습니다. 오카 마리의 책을 읽다 보면 기억은 망각을 피하는 책무가 되고 기억의 재현에는 윤리가 따른다는 생각이 들어요. 바꾸어 말하면 소설 쓰는 사람으로서 저는 기억할 의무가 있지만, 그 기억을 소설로 쓸 때는 재현이 폭력이 되지 않게 조심해야겠지요. 그래서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은 자신의 기억을 ‘허구’가 아닌 ‘일기’로만 진술할 수 있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시 요약해서 답변을 드리자면 소설의 인물은 자신의 기억을 기록하면서 자기도 모르게 타인을, 시대를, 역사를 기억하고 마는 사람이 아닐까요. 그건 작가로서 제가 바라는 궁극의 행위이기도 합니다.
Q :
번역하는 사람으로도 활동하고 계신데요, 이주혜 작가가 번역한 책 중 이 소설을 읽은 독자가 이 책도 살펴주셨으면, 하는 책이 있을까요?
A :
아무래도 가장 최근에 작업한 역서가 먼저 떠오르네요. 에세이스트이자 회고록 작가 비비언 고닉의 비평 총서 『멀리 오래 보기』입니다. 제게 고닉은 개인의 실제 경험을 1인칭으로 전달하면서도 반드시 하고자 하는 이야기의 ‘상황’을 설정하고 그 상황을 누비는 ‘페르소나’를 찾아야 한다고 말한 ‘1인칭의 작가’입니다. 고닉의 관점으로 『계절은 짧고 기억은 영영』을 본다면, 소설의 화자 ‘나’는 자신의 고통스러운 기억을 대신 씩씩하게 진술해줄 페르소나 ‘시옷’을 발견한 게 아닐까요? 그 시옷이 힘겹게 통과한 ‘상황’은 야만과 폭력과 혐오의 시대였던 80년의 봄이겠고요. 『멀리 오래 보기』는 고닉이 읽고 바라본 여러 책과 작가와 시대를 고닉의 관점으로 다시 살펴볼 수 있는 책인데요. 우리는 이 책을 읽으며 ‘진정한 관점’을 찾기 위해 평생 읽고 쓰고 바라본 거장의 50년을 더듬어볼 수 있고, 더불어 우리의 진정한 관점이 무엇일까 한 번쯤은 고민해보게 됩니다. 읽고 쓰고 생각하는 사람에게(여기 속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요?) 추천하고 싶은 책입니다.
Q :
곧 새해입니다. 새해 다짐으로 결심하는 우리들의 목표 중 하나로 '일기쓰기'도 있을텐데요, '쓰면 만나고 만나면 비로소 헤어질 수 있습니다'라는 말에 기대어 자신의 이야기를 쓰는 것에 도전할 독자에게 인사 부탁드립니다.
A :
일기는 의외로 자신을 객관화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일기의 독자는 우선 자기 자신이잖아요. 장담하건대 일기를 쓰고 나서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 다시 읽어보면 굉장히 낯선 ‘나’를 발견하게 될 거예요. 그 ‘나’가 낯설수록 우린 과거의 나와 제대로 헤어지고 있는 중입니다. 사실 일기 쓰기를 권장하는 것처럼 소설에 썼지만, 저는 일기보다는 한 달에 한 번 월기를 씁니다. 매월 말일에 그달의 달력과 플래너를 펼쳐놓고 한 달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누구를 만났고, 어떤 다행과 불행이 있었는지 복기해 봅니다. 그리고 간략하게 한 달의 기분이랄지 소회 같은 것을 기록하지요. 한 달이라는 거리를 두고 바라본 ‘나’는 그 순간보다는 조금 덜 불안하고, 덜 슬프고, 덜 까불어요. 이렇게 한 달을 조금 차분하게 바라보고 나면 다음 달로 들어갈 용기가 또 샘물처럼 얕게 고이더라고요. 결국, 일기든 소설이든 제게 쓰는 행위는 다음으로 넘어갈 힘을 쥐어짜는 안간힘이라고 볼 수 있겠네요. 독자 여러분도 일기든 주기든 월기든, 소설이든 에세이든 스스로 힘을 주는 글쓰기와 함께 새해 맞이하시길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기원합니다. 2024년에도 우리, 나란히, 함께, 읽고 써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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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빈곤 활동가 김윤영의 <가난한 도시생활자의 서울 산책>을 읽다 조세희의 소설 속 '낙원구 행복동'의 모델이 '서대문구 현저동'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엄마의 말뚝'의 박완서의 소설 속 좁은 골목 역시 그가 실제 거주하기도 했던 '현저동'이었다고 하네요. 현재 이곳은 종로구 무악동으로 분류되어 있습니다.
추운 계절이면 다른 사람도 참 춥겠구나 생각하게 됩니다. 올해도 '부동산 문학'으로 분류할 만한 작품들이 여럿 출간되었습니다. 지하집에 사는 이서수의 소설 속 인물들도, 재개발을 앞둔 동네에서 매수자에게 집을 보여주며 사는 김혜진의 소설 속 인물들도 너무 춥지는 않게 겨울을 났으면 좋겠습니다. 모두 축복을 보내는 마음으로, 오늘은 오랜만에 '난쏘공'을 다시 읽어보려 합니다.
자그마치 680쪽. 요즘 이렇게 긴 소설을 쓰다니, 누군가는 혀를 내두르고 고개를 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누군가는 눈을 치켜뜨고 귀를 반짝 열지도 모를 일입니다. 도대체 어떤 이야기이길래 이렇게나 긴 분량이 필요했을지 확인하지 않고는 못 버틸 테니까요. 저는 당연히 후자였습니다. 모든 것이 점점 더 짧아지는 쇼츠의 세상에서 보란 듯이 긴 소설을 보고 호기심에 빠지지 않기란 불가능했습니다. 아무리 작가라 해도 우리와 같은 시대, 그러니까 모든 것이 점점 더 짧아지는 쇼츠의 세상에서 살고 있는 건 다르지 않을 텐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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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그마치 680쪽. 요즘 이렇게 긴 소설을 쓰다니, 누군가는 혀를 내두르고 고개를 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누군가는 눈을 치켜뜨고 귀를 반짝 열지도 모를 일입니다. 도대체 어떤 이야기이길래 이렇게나 긴 분량이 필요했을지 확인하지 않고는 못 버틸 테니까요. 저는 당연히 후자였습니다. 모든 것이 점점 더 짧아지는 쇼츠의 세상에서 보란 듯이 긴 소설을 보고 호기심에 빠지지 않기란 불가능했습니다. 아무리 작가라 해도 우리와 같은 시대, 그러니까 모든 것이 점점 더 짧아지는 쇼츠의 세상에서 살고 있는 건 다르지 않을 텐데 말이죠.
결론부터 말하자면 『광인』은 길이와 무관하게 숨 막히는 몰입감으로 독자를 몰고 가는 소설입니다. 어디로 몰고 가느냐 하면, 등장인물들을 각자가 처한 감정의 절벽까지 밀어붙입니다. 그럴 때 어떤 독자도 이 절벽으로 가는 길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그만큼 몰입감 있는 소설이고, 그러니 이만한 분량을 이겨낼 수 있었겠지요. 『광인』은 사랑에 관한 소설입니다. 그것도 세 삶의 사랑 이야기. 그렇습니다. 삼각관계. 그러나 삼각관계라는 네 글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복잡한 힘의 작용이 있고, 그 안에서 타인과 관계 맺는 인간의 거친 욕망들이 적발되며 서로를 향해 짓는 죄와 벌이 난무합니다.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지만 미친 사랑의 주인공이 되고 만 남자. 그저 소소한 행복을 바랐을 뿐인데 모두를, 그리고 자신마저도 비극의 구렁텅이로 몰고 간 남자. 이 지독한 사랑의 환란 속으로 당신을 초대합니다. 긴긴 겨울밤에 어울리는 단 한 편의 러브스토리, 혹은 죄와 벌에 대한 이야기.
- 문학 2팀장 박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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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미 도서 비평가 협회가 수여하는 올해 ‘바리오스 번역서상’ 1차 후보로 한국시 두 권이 후보로 올랐습니다. <저주토끼>를 번역해 부커상 최종 후보에 오른 안톤 허가 이성복 시론집 <무한화서>을 번역했고, 그리핀 시문학상을 수상한 <죽음의 자서전>을 번역한 최돈미가 이번에도 김혜순의 시 <날개 환상통>의 번역을 맡았다고 합니다. 우리만 알기엔 아쉬운 멋진 한국문학을 영어권 독자도 읽을 수 있다니 기대가 됩니다. 마침 두 시집 모두 얼음이라는 점에서 (이성복), 열기라는 점에서 (김혜순) 겨울과 잘 어울립니다. 세계인과 함께 이 시집을 읽어보는 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