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국 아일랜드에서는 오래전부터 거장의 반열에 올랐으나 2021년부터 미국 독자 대중 사이에 서서히 화제가 되더니, 이제는 독자들이 잃어버린 시간을 벌충하려는 듯 애타게 찾는 소설가가 있다. “한 세대에 한 명씩만 나오는 작가”로 불리는 아일랜드 현대문학의 대표 작가 클레어 키건이다. '가디언'은 그의 작품을 두고 “탄광 속의 다이아몬드처럼 희귀하고 진귀하다”라고 평했다. 이는 그가 24년간 활동하면서 단 4권의 책만을 냈는데 모든 작품이 얇고 예리하기 때문이다. 2009년 발표한 <맡겨진 소녀>는 '타임스'에서 ‘21세기 최고의 소설 50권’에 선정되었고, 최근작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2022년 부커상 최종후보에 오르며 ‘역대 부커상 후보에 오른 가장 짧은 소설’로 등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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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사소한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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맡겨진 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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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들판을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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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사소한 것들 + 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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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다정함조차 아플 때가 있다, 태어나 그것을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이에게는.” 나는 이 두 줄의 책 소개에 이끌려 <맡겨진 소녀>를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보다 더 이 소설을 잘 표현하는 문장은 없으리라 생각했다. <맡겨진 소녀>는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사랑을 받아보지 못한 어린아이가 처음으로 조건 없는 사랑받는 이야기다. 작가는 그런 사랑이 존재하리라고는 상상도 해보지 못한 아이의 메마른 마음이 어떻게 사랑을 받아들이는지 세세하게 묘사한다. 그리고 사랑받은 아이가 어떻게 회복하고 성장해가는지를, 자신에게 사랑을 준 사람들에게 어떻게 그 사랑을 돌려주는지를 보여준다. 어른이 된 많은 이들의 내면에는 이 ‘맡겨진 소녀’가 있다. 어른들에게 아무렇게나 대우받고 상처받은, 하지만 이미 어른으로 자라버린 아이들에게 이 책은 말을 건넨다. 어린 시절, 그토록 작고 힘이 없었던 네가 충분히 사랑받지 못했던 건 너의 탓이 아니라고, 그건 네 잘못이 아니라고.
소설 <맡겨진 소녀>에서 모든 존재들은 온당한 시선을 받는다. “가지가 땅에 끌리는” 수양버들이나 더 이상 이름으로 불리지 못하는 개, 우편함까지 매일 달음질쳐 나가는 ‘나’, 상실 뒤의 나날들을 미움과 증오와 복수가 아니라 그 모든 것을 무화시키는 침묵으로 보듬으며 살아가는 킨셀라 부부에까지. 깊고 서정적이며 감동적인 이해가 모든 장면에 램프처럼 환하게 가닿는다. 식탁 위에 올려놓고 이 소설을 펼쳤을 때 나는 여러 일에 지쳐 아주 나쁜 상태였으나 단번에 읽어 내려간 뒤에는 이 새로운 전율을 표현할 “새로운 말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읽는 모두를 “매끈하고 깨끗하고 연약한” 시절로 데려가 우리가 기억해야 할 가장 섬세한 사랑을 “손안”에 쥐여주는 이 소설의 가슴 벅찬 여름날들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말이다.
<맡겨진 소녀>를 다 읽고 나니 그 빳빳한 양장 커버가 이야기를(특히 그 소중한 결말을) ‘보호’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처럼 사소한 것들>도 그렇다. ‘키거니언 엔딩’이라고 부르고 싶은 그것의 본질은 무슨 반전 같은 게 아니다. 예기치 않은 일이 일어나는 게 아니라, 감히 기대해도 될까 싶은 일이 실현되기 때문이다. 인간의 가능성이 서사의 필연성으로 도약하는 지점에서 소설이 끝날 때, 우리는 우리가 이 세계를 포기할 수 없는 이유 하나를 얻게 된다. 이 작가가 단편 분량의 소설을 단행본으로 출간하는 것에 나는 불만이 없다. 이런 결말 뒤에, 감히, 어떤 다른 이야기가 시작될 수 있단 말인가.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클레어 키건이 쓴 ‘기억할 만한 지나침’에 관한 이야기다. 아니, 긴 시다. 날마다 기계적으로 전개되는 일상에 복무하는 한 사람을 멈춰 세우는 힘은 무엇일까. 핀셋으로 뽑아낸 듯 정교한 문장들은 서로 협력하고 조응하다 한 방에 시적인 순간을 탄생시킨다. 그것은 ‘뒤돌아보는 인간’의 탄생이다. ‘가족 인간’이기를 멈추는 선택이다. 나는 단숨에 읽고 앞으로 가서 다시 읽었다. 타인에 대한 숙고가 자기 회복에 이르는 점층 구조의 신비에 빠져들지 않을 도리가 없다. 동요하지 않음이라는 견고한 세계가 무너진 자리에서 광물처럼 빛을 내는 삶의 진실을 모든 이들과 나누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