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에 대해 쓰고 싶었다. 세상은 혼자 살아갈 수 없다는 평범하지만 무거운 명제 앞에 오늘도 서 있기 때문이다. 나는 몽상가가 아니다. 눈만 뜨면 간절하게 다가서는 것들 앞에서 한순간도 자유로울 수가 없다. 그래서 이런 간절한 눈빛들을 외면하지 않기 위해 날마다 신문의 행간을 살피고, 뉴스 진행자의 목소리 너머에 더 귀를 기울이지만, 아직은 마음이 내 밥그릇에 먼저 가 있다. 내 사는 게 이렇듯 늘 어중간하다. 그렇다보니 모든 나와의 사이가 어중간하다. 이 시집이 그렇다.
시간이 언제나 내 편이 아니라는 것을 나만 몰랐다. 참 우둔하다. 저 칠흑 같은 1980년대와 1990년대 형들과 아우들과 공장과 어울려 건너온 시간을 나는 잊을 수 없다.
지난 시간 위에는 봄꽃 같은 추억이 잔잔한 웃음을 머금게도 하지만, 곳곳 상처로 인한 적이 더 많다.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바람에 휩쓸려간 손들을 그래서 잊을 수 없다.
2010년대가 되어도 바람은 여전히 공장을 흔드느라 바쁘다. 흔들리는 공장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는 것을 나는 안다. 그래서 갈 길은 염려하지 않기로 했다. 사실 내 소관이 아니다. 그런 시대가 되었다.
위안이 마음속에 있는 것처럼 공장이 내 몸속에 똬리를 튼 지 오래다. 공장과 내가 한 몸이 되었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공장이 변하는 만큼 나는 따라가지 못한다. 그래서 갈수록 몸이 무겁다. 몸만 무거운 것이 아니라 여전히 하루라는 현실이 더 무겁다.
이제 좀 더 가볍고 밝고 편안한 시를 쓰고 싶다.
미안하다.
미안하다는 말,
이 말만큼 미안한 말은 없을 것이다.
생각만 해도 벌써 몸과 마음이 온통 미안해진다.
공장 폐쇄와 맞닥뜨리고부터
그날그날 일기처럼 이 글을 썼다.
쓰면서 가장 큰 마음속 짐은
이 땅에서 노동자로 살아가는 부모 마음이 어떨까
짐작만이라도 해 보는 시간이었다.
그것도 공장 폐쇄로 인해
당장 일터에서 쫓겨날지 모르는 처지가 된 부모라면
아이들 앞에 두고 그 마음이 어떨까.
나아가 길게는 수십 년 짧게는 수년 동안
함께 부대끼며 생활해 온 공장 동료를 생각하는
마음 또한 간절하였다.
공장이 언제라도 문을 닫을 수 있다는 것을
노동자들 대부분은 잊고 산다.
그만큼 순박하다고 해야 할까.
이런 순박한 노동자들이 열심히 일만 하다
어느 순간 공장 문이 닫히면 그 결과는 혹독하다.
상상을 초월한다.
자신이 살아온 삶을 부정하지 않고는 설명되지 않는다.
2015년 11월 26일은 잊을 수 없다.
자의든 타의든 희망퇴직이란 이름으로
약 40%의 동료가 공장을 떠나는 동안
함께 고민하고 위로하고 분노했던
그 시간을 여기 남긴다.
공장은 단순히 일만 하는 곳이 아니다.
한 노동자의 삶이 오롯이 배어 있는 삶터다.
이러한 삶의 터전을 잃는다는 것은
삶을 지속할 수 있는 끈 하나를 빼앗기는 것과 같다.
하지만,
이 불안한 끈에 우린 내일도 목이 매여 있다.
2017년 4월
어떤 시가 좋은 시인가. 지난 한때 이런 시가 좋은 시라고 당당하게 말한 적 있다. 하지만 시를 쓸수록 어떤 시가 좋은 시라고 딱 잘라 말할 수 없게 되었다.
지금까지 시를 써오면서 한 번도 의심하지 않은 내일에 대해 의심하기 시작했고, 이 부조리한 사회와 먹고사는 기본적인 것에 시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는 것을 알아버렸다.
오늘도 나는 밥줄에 목을 매고 있고, 처음인 양 그런 내 모습에 깜짝 놀란다. 어제까지는 내일을 살았으나 이제 나이
와 함께 오늘을 살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오늘이 아니라 내일을 살아가는 젊음이 부럽다. 이 시집이 그런 이들에게 잠시나마 삶의 위안이 되었으면 좋겠다.
앞만 보고 달리느라 짐작도 못했다. 부족한 것이 노력만이 아니라는 것을, 길을 나서서는 지는 해만 걱정했지 정작, 밤 내내 견뎌야 하는 외로움 같은 것은 생각도 못 했다. 늦었지만 꼭, 누가 말해주지 안아도 내 몸 구석구석 박혀 툭툭 불거지는 투박한 목소리부터 낮추어야 겠다. 가만히 다가와 옆자리에 앉는 햇살처럼, 내 눈에 오롯이 머물어 이 길 옳다 일러주는 살아있는 것들 앞에서부터 좀더 작아져야 겠다.
공장 처마 밑에 터를 잡은 비둘기 부부나, 누구 보다 먼저 봄을 전해주는 공장 화단 식구들, 쌕쌕거리며 돌아가는 기계나, 기계 앞을 떠나지 못하는 어깨가 쳐진 동료들 앞에서 더 목소리를 낮추고 더 작아 져야 겠다.
이른 아침 내내 소문만 무성 하드니 정작 봄은 올 생각도 없는 모양이다. 그래도 고마울 따름이다 모든 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