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에서 길을 잃었다. 바람결 따라 샛강으로 흘러갔다. 낯선 문이 열리고 복숭아보다 달콤한 향기가 강렬하게 다가왔다. 문 안으로 들어서니 수필의 묵향이 안개처럼 자욱하여 그 향기에 취해 시간의 흐름을 잊었다. 목련꽃 하얗게 흐드러지고 벚꽃이 노란 개나리와 봄볕을 다투는 정경도 스쳐 지났다. 수박이 제 붉은 마음 무르익어 태양 아래 현기증 앓는 줄도 몰랐다. 밤송이가 속을 열어 알밤을 우박처럼 터뜨리는 가을이 산속에 홀로 물들어 가도록 샛강 도원에서 나는 수필을 쓰고 또 쓰며 머리가 맑아져 갔다.
실타래처럼 얽히고설킨 지나온 길이 기억의 지붕 아래 잠자는 듯 말없이 묻혀있었다. 다람쥐가 나무 밑에 도토리 숨겨둔 장소를 잊어버리고 주변을 작은 발로 이리저리 파헤치다가 자신의 귀한 식량 한 톨 찾아내듯이 나는 기억이 묻힌 비밀의 세계에서 더듬거리며 때 묻은 기억을 한 올씩 건져냈다. 운 좋게 흙 묻은 도토리 하나 건져내는 다람쥐처럼 모자란 글을 주워들고 기분이 좋았다. 세월에 바래지고 녹슨 부분도 차라리 애처롭고 예뻤다. 그렇게 나는 샛강 도원에서 바람에 춤추는 수양버들을 보며 나이도 잊었다. 버들 옆에 수필나무 하나 심었다.
2019년 늦가을
사랑의 순간은 짧고
기억은 영원하네
나를 사랑한 사람들이 있었기에
삶이 풍요로웠고
내가 사랑한 사람들이 있었기에
삶이 아름다웠네
발밑의 이름 모를 풀마저
존귀함을 알려주었고
둥지의 새는
공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보여주었네
먼지 속에도 우주가 있다는 것을
사랑을 하면서 배웠네
2021년 8월
권순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