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에 나온 헤인 시리즈 작품들이 세계를 주인공으로 그 안의 개인을 다루었다면, 지금 나온 서부 해안 시리즈에서는 한 사람을 주인공으로 세계를 다룬다. 좁은 울타리 안에서 일어나는 작은 사건을 다루는 듯 보이지만 그 안에는 지금 우리가 선 복잡한 세상의 그림자가 층층이 잠겨 있다. 한 사람의 이야기는 모두의 이야기로 확장된다. ('옮긴이의 말' 중에서)
1970년대에 나온 헤인 시리즈 작품들이 세계를 주인공으로 그 안의 개인을 다루었다면, 지금 나온 서부 해안 시리즈에서는 한 사람을 주인공으로 세계를 다룬다. 좁은 울타리 안에서 일어나는 작은 사건을 다루는 듯 보이지만 그 안에는 지금 우리가 선 복잡한 세상의 그림자가 층층이 잠겨 있다. 한 사람의 이야기는 모두의 이야기로 확장된다. ('옮긴이의 말' 중에서)
주인공인 시트라와 로언이 죽음의 기술을 연마하고, 그 의미를 배우는 훈련 과정을 지켜보면서, 또 그들의 눈을 통해 망가져 가는 수확자들의 세상을 마주하면서 독자는 깨닫게 된다. 이 소설은 애초에 죽음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를 묻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그보다 이것은 인간의 한계에 대한 이야기이며, 새로운 신화 세계에서 벌어지는 몰락과 구원의 모험담이다.
주인공인 시트라와 로언이 죽음의 기술을 연마하고, 그 의미를 배우는 훈련 과정을 지켜보면서, 또 그들의 눈을 통해 망가져 가는 수확자들의 세상을 마주하면서 독자는 깨닫게 된다. 이 소설은 애초에 죽음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를 묻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그보다 이것은 인간의 한계에 대한 이야기이며, 새로운 신화 세계에서 벌어지는 몰락과 구원의 모험담이다.
주인공인 시트라와 로언이 죽음의 기술을 연마하고, 그 의미를 배우는 훈련 과정을 지켜보면서, 또 그들의 눈을 통해 망가져 가는 수확자들의 세상을 마주하면서 독자는 깨닫게 된다. 이 소설은 애초에 죽음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를 묻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그보다 이것은 인간의 한계에 대한 이야기이며, 새로운 신화 세계에서 벌어지는 몰락과 구원의 모험담이다.
주인공인 시트라와 로언이 죽음의 기술을 연마하고, 그 의미를 배우는 훈련 과정을 지켜보면서, 또 그들의 눈을 통해 망가져 가는 수확자들의 세상을 마주하면서 독자는 깨닫게 된다. 이 소설은 애초에 죽음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를 묻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그보다 이것은 인간의 한계에 대한 이야기이며, 새로운 신화 세계에서 벌어지는 몰락과 구원의 모험담이다.
복잡계 속의 우리
책이 나오기 얼마 전에 안경을 새로 맞췄다. 십 년 이상 같은 안경테에 렌즈만 바꾸다가 오랜만에 새로 테를 샀는데, 안경사가 내 예전 안경을 잘 갈무리해 담아주면서 말을 건다.
“예전 안경테를 보니 보수적인 취향이신데, 무슨 심경 변화로 이런 안경테로 바꾸셨어요?”
“이게 왜요? 이 안경테 무난하지 않아요?”
“어? 유행 상관없이 고르신 거예요?”
“그냥 편한 거로 골랐는데요.”
“아… 그냥 고르신 거구나. 요새 유행하는 디자인이에요.”
보수적인 취향이 뭔지도 모르겠고, 요새 유행하는 디자인이 뭔지도 잘 모르겠다. 유행이란 살면서 내가 따라갈 수 없는 무엇이었다. 그렇다고 작품 속 베넷 박사만큼 유행에 면역이 있는 사람 같진 않지만, 플립이나 빌리 레이와 백만 광년쯤 떨어진 부류라는 점은 자신할 수 있다.
그런 이유로, 샌드라 포스터 박사의 간절한 마음이 더 이해가 가기도 했다. 유행은 대체 왜, 어디에서, 어떻게 출발하여 어디로 가는가. 특히 어떤 유행은 이유를 알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진다.
이해할 수 없기로 치자면, 플립도 그렇다. 번역하면서 코니 윌리스 작가 주변에 플립 같은 사람이 실제로 존재할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이 소설의 씨앗이 되었는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물론 실존 인물이냐 아니냐가 중요하지는 않다. 중요한 건 그만큼 플립이라는 인물이 생동감 있다는 점이고, 그보다 중요한 건 작가가 그런 인물을 이해하려는 시도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해할 수 없는 유행과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여기에 어떤 답이 존재할 것인가. 그런 생각의 줄기에 과학사에 길이 남을 뜻밖의 발견들을 섞고, 큰 강의 발원지를 찾아 떠났던 모험가들도 생각하고, 혼돈 이론과, 어쩌면 지금의 복잡계 이론으로 이어질지 모르는 발상을 연결하고….
그렇게 작가가 그려낸 유쾌한 가설은 형편없는 유행에 대해서도, 플립에 대해서도, 이해할 수 없는 세상에 대해서도 따뜻하다. 불평하고 좌절하고 냉소하고 답답해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결코 포기하지 않는, 포기할 수 없는 애정이 담겨 있다. 어쩌면 그것이 이 세상의 모든 플립들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 생각해낸 장대한 가설일지라도, 누군가에게는 위안이 될 수 있으리라 믿는다.
그냥 독자였다면 읽기만 하고 넘어갔을 것들을 찾아보고 배우는 즐거움은 번역자의 특권이기도 하다. 이 소설은 경쾌한 리듬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편집부의 생각에 동의하여, 주석을 달지 않고 가급적 본문 흐름에 녹아들게 옮겼다. 읽다가 튀어나오는 온갖 기기묘묘한 유행사와 과학사의 우연한 발견에 대해 궁금해진다면 한 번씩 검색을 해보는 것도 재미있는 독서 방법이 될 것이다.
같은 즐거움을 누리고 싶은 독자들을 위해 몇 가지만 소개한다.
모래더미 모형(sandpile model). 한 알씩 모래를 떨어뜨리다 보면, 모래더미가 쌓이다가 갑자기 무너져내리는 순간이 있다. 대부분 한 알의 모래알은 아무 파장도 일으키지 못하지만, 가끔은 모래더미 전체에 큰 변화를 일으킨다. 여기에서 ‘자기 조직화 임계성’이라는 말이 나온다. 외부 통제 없이, 계 내부의 복잡한 요소만으로 이루어지는 질서와 혼돈 사이의 단속적인 평형. 1987년에 세 과학자가 소개한 개념으로, 복잡계 과학의 시작이다.
1987년 실험에 참가했던 페르 박은 1996년에 《자연은 어떻게 움직이는가》라는 책으로 이 이론을 다듬어 냈다. 국내에도 번역본이 나와 있었으나 현재는 절판 상태다. 2002년에 다시 복잡계 네트워크 과학을 내놓은 A.L.바라바시의 저서 《링크》와 《버스트》는 현재도 훌륭한 번역본으로 구해볼 수 있다. 복잡계 물리학을 사회학과 경제학에 적용한 마크 뷰캐넌의 《사회적 원자》도 이 분야의 추천 도서다.
이 책의 원서 출간이 1996년이니, 복잡계 과학의 한 갈래로 복잡계 네트워크 과학이 발전하고, 지진과 산불과 주식시장과 질병과 선거에 이르기까지 많은 분야에서 연결점을 연구하는 동안 그 씨앗은 다른 방향으로 뻗어나가 벨웨더 가설(혹은 플립 가설)을 낳은 셈이다.
말이 나온 김에 말인데, 원제인 bellwether는 중세에 양떼 우두머리에게 방울을 달던 데에서 유래한 단어로, 현재는 유행의 선도자, 주모자, 더 나아가서는 그런 조짐이나 징후를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마침 얼마 전에 한국에서도 인기를 끈 영화 <주토피아>에 ‘벨웨더’라는 이름의 양이 등장하는 것을 보고 반가웠으나, 본서에서는 일반적인 의미와 약간 다르게 쓰인다는 점을 고려하여 방울양으로 옮겼다.
본문에 그려지는 극심한 흡연 혐오 유행 속에서 “차별금지법 때문에 흡연자도 해고할 수 없다”는 투덜거림이 스쳐 지나가는데, 이는 물론 차별금지법이 기능하고 있기에 가능한 농담이다. 한국에서 포괄적인 차별금지법은 UN의 권고를 받은 이후 지난 10년간 세 번에 걸친 제정 시도가 있었으며, 20대 국회에서 다시 한 번 통과 여부를 논할 예정이다.
코니 윌리스는 콜로라도 덴버에서 태어나서 콜로라도 대학을 나왔고 지금도 콜로라도에 살고 있다. 이 작품의 무대가 된 곳이다.
주인공인 시트라와 로언이 죽음의 기술을 연마하고, 그 의미를 배우는 훈련 과정을 지켜보면서, 또 그들의 눈을 통해 망가져 가는 수확자들의 세상을 마주하면서 독자는 깨닫게 된다. 이 소설은 애초에 죽음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를 묻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그보다 이것은 인간의 한계에 대한 이야기이며, 새로운 신화 세계에서 벌어지는 몰락과 구원의 모험담이다.
1970년대에 나온 헤인 시리즈 작품들이 세계를 주인공으로 그 안의 개인을 다루었다면, 지금 나온 서부 해안 시리즈에서는 한 사람을 주인공으로 세계를 다룬다. 좁은 울타리 안에서 일어나는 작은 사건을 다루는 듯 보이지만 그 안에는 지금 우리가 선 복잡한 세상의 그림자가 층층이 잠겨 있다. 한 사람의 이야기는 모두의 이야기로 확장된다. ('옮긴이의 말' 중에서)
보르헤스나 마르케스 같은 작가들을 예로 들며 “나는 한 번도 판타지 소설과 소위 ’문학 작품’ 사이에 다른 점을 보지 못했다(2007년 actuSF와의 인터뷰 중에서)”던 본인 말마따나 그의 소설은 언제나 환상성을 품고 있되, 특정한 장르 틀에 갇혀있지는 않다. 이 책에 수록된 단편들은 특히 더 그렇다. 어떤 장르에도 정확히 들어맞지 않는 기묘한 환상성, 고전과 현대와 미래가 뒤섞인 독특한 분위기, 가볍게 읽고 넘길 수 없는 지적인 경향과 섬세한 결은 독자들이 익숙하게 보던 기존 판타지나 SF와는 다르다. 그래서 그의 작품 세계는 특정 장르보다는 장르 ‘사이’, 혹은 ‘경계’라는 표현과 더 어울리는지도 모른다. - 옮긴이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