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쓰기 이전에 삶은 고통입니다. 뜨겁고 쓴 고통을 삼키고 내 살과 뼈로 만들기 시작하면서 세상에 훤히 고통을 열어보일 수 있었습니다. 꽃살무늬로 바람에 씻기는 모습이나 목어 속에서 만나는 저녁 산사 소리 같으면서 악다귀로 찌들어버린 싸움판에서 어쩌면 바위 안에 부처의 형상을 읽었던 석공의 뜻을 헤아리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대학시절부터 군인 살고 세상과 싸우고 떠돌면서 얻은 시들을 좌판에 펼쳤습니다.
시의 길을 열어준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아내와 아들, 창작문학회 식구들이 있었기에 지치지 않고 첫시집의 상처를 보여드리게 되었습니다. 자작나무 몸통에서 읽을 수 있는, 그 오체투지로 밝아오는 눈을 보여드리고자 합니다. 첫시집인 만큼 또 한 세상을 넘겨받은 꼴입니다. 그렇게 오체투지로 살면서 독자들에게 다가가는 시를 쓰겠습니다.
(2002년 9월 16일 알라딘에 보내신 작가 코멘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