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한번쯤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처음 만나는 순간부터 운명인줄 알고 시작되는 사랑도 있으며
얼마동안 사귀어 보아야 서로 사랑하게 됨을 확인하기도 하며
만날 때에는 모르다가 헤어진 다음에야 진실한 사랑을 깨닫기도 합니다.
서로 사랑하다가 안녕! 하며
웃으면서 헤어지면 그만 이라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사랑이라는 열병은 그리 만만한 놈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제1부 운명처럼 다가온 그대
제2부 내 마음을 두드리는 바람
제3부 사랑은 함께 가는 것
제4부 그대로 인해 해가 뜨고
사랑이란 우리가 이 세상에 와서 지향해야 할
최고의 가치이자 존재의 양식입니다.
제 작품 속의 언어는 평범하면서도 평이합니다.
그러나 제 작품 속의 언어는 어떤 특별한 언어보다
더 깊은 뜻이 담겨져 있습니다.
이 책을 읽는 독자 여러분!
이미 이루어진 사랑에게는
더욱 견고한 성을 차곡차곡 쌓기를 바라며
더러 아픔이 있는 사랑에게는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열 번째 시집을 펴내며
초등학교시절에는 아주 평범한 아이였다. 늘 공부는 뒷전이었고 노는데 정신이 팔려 숙제도 제대로 못 해가는 개구쟁이였다. 중 1때 어디서 구했는지 기억조차 가물거리지만 ‘바닷가 게들’이라는 윤부현 동시집 표지가 너덜너덜해질 정도로 읽고 또 읽었다. 난생 처음으로 접했던 시집이 바로 이 시집이었다. 이 때부터 혼자서 글을 끄적 끄적 쓰기 시작했다. 중 2때에는 베트남 전쟁이 한창일 때라 학교에서 파월장병에게 위문편지를 단체로 보냈는데 글 솜씨가 뛰어나서(?) 그런지 답장이 왔다. 이 일을 계기로 편지를 주고 받았던 당시 육군중사가 사촌매형이 되는 인연을 맺기도 했다. 중3때에는 전교회장에 출마한 친구의 선거운동원이 되어 전교생이 모인 자리에서 찬조연설을 하는 끼(?)도 발휘하기도 하였다.
고등학교 시절 ‘석련문학회’에 가입하여 ‘문학의 밤’에 출연 시낭송을 하였으며 교내 웅변대회에 나가기도 하였다. 고교 1학년 때(1972년) 개교 50주년이라서 시내 호서극장에서 예술제가 열렸는데 ‘내 고향 지토리’라는 자작시를 낭송하여 ‘지토리’ 라는 별명을 얻기도 하였다. 관현악 합주, 합창, 보디빌딩, 시낭송, 독창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되었는데 1학년임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순서가 내 시낭송이었다. 1학년 짜리가 예술제 피날레를 멋지게 장식했다고 많은 박수를 받아 일약 교내 스타(?)가 되었다. 지금도 고등학교 시절 친구들을 만나면 내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친구들이 나를 가리켜 ‘지토리’라고 부른다.
고2가 되면서 대입준비를 하느라 시를 통 쓰질 못하다가 교대에 진학, ‘석초문학회’에 가입하면서 처음으로 시인이셨던 지도교수의 지도도 받아보았다. 대학 시절에는 웅변을 했던 경험으로 교내방송국 아나운서를 지내기도 하였다. 가정형편으로 2년제 교대에 진학하여 초등교원이 되었지만 국문학을 전공했더라면 내 인생의 판도가 달라졌을 것이다. 그러나 후회는 없다. 1979년 첫 발령을 받은 후에는 혼자서 끙끙 거리며 작품을 쓸 수밖에 없었다. 7전8기(七顚八起)의 오기로 절치부심(切齒腐心) 습작을 하며 10년 도전 끝에 신춘문예에 당선되었으며, 문예지 신인상도 받았다. 그 당시에는 우리나라에 문예지가 20여종 밖에 없어 문예지로 등단하는 것도 그리 쉽지도 않았다. (계속되는 이야기는 지면관계상 생략하였으니 이 시집 123쪽에 실린 ‘숨겨왔던 비밀 하나’에서 이어지니 꼭 읽어보길 바란다.)
평생 30권 이상의 저서를 펴내는 것과 개인 문학관을 세우는 것이 내 꿈이며 목표다. 등단이후 2년마다 1권씩 저서를 펴내 현재 16권의 저서를 펴냈으며, 정년 퇴직후에도 계속하여 14권의 저서를 더 펴내야 된다. 또한 문학관도 세워야 하니 퇴직 후에도 마냥 세월아 네월아 하며 여생을 허비하며 보낼 수 없다. 열 번째 시집을 펴내며 나의 꿈을 세상에 밝히는 것은 ‘선포 효과’를 기대하기 위함이다.
'내 인생, 우물쭈물 거리다 내 이렇게 끝날 줄 알았다.'
1925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아일랜드 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1885-1950)의 묘비명처럼 되지 않기 위해서는 정년 퇴직이후에도 한시라도 우물쭈물 거릴 시간이 없다. 올해로 교직생활은 40여 년째, 문단생활은 30여 년 째가 된다. 교직생활은 정년으로 마감을 짓지만 창작활동은 이제 본격적으로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터닝 포인트가 되는 셈이다. 작가에게는 넉넉한 시간 확보가 필수다. 널널한 자유시간을 어떻게 작품활동에 요긴하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내 문학 인생의 성패가 갈리게 될 것이다. 이제 제2라운드 인생이 시작되는 가슴 설레이는 순간이 온 것이다.
정말 우물주물 거릴 시간 없다.
'인생 금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