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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미하엘 쾰마이어 (Michael Ko''hlmeier)

국적:유럽 > 중유럽 > 독일

출생:1949년, 오스트리아

최근작
2005년 12월 <소설로 읽는 성서 1>

그리스 신화

아버지께서는 내게 늘 그리스 신화를 들려주셨다. 신화를 통해 인간적인 가르침을 주기 위해서였다. 할머니께서는 아버지의 그런 의도에 반대하시며 그림 형제 동화를 들려주셨다. 아직 어릴 때 너무 많은 걸 알게 되면 성격을 버린다는 것이 할머니의 생각이었다. 나는 양쪽 이야기를 더 듣고 싶어서 늘 안달이었다. 동화와 신화는 내 귀에서 자매처럼 한데 어우러졌다. 나는 이야기를 그냥 듣기만 하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다는 것을 곧 알게 되었다. 이야기를 하면 새롭게 이야기를 계속 엮어 나가게 된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야만 진귀한 보배를 찾을 수 있다. 말을 한다는 것은 단순히 알고 있는 것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다. 화자는 청중보다 더 많이 알기는 하지만 훨씬 더 많이 아는 것은 아니다. 화자는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를 들려줌으로써 비로소 확신을 갖게 된다. 이야기는 널리 퍼지는 과정에서 수없이 많은 갈래가 생겨나는데 그 가운데 하나를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알려 주면서 그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고 파악하게 된다. 그러므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은 그 자체가 하나의 발견이다.

미하엘 쾰마이어의 그리스 로마 신화

그리스 신화는 우리가 끊임없이 들여다보는 어둡고 깊은 거울이다. 그것이 선명하든, 수수께끼처럼 불투명하든 거기에 비친 것은 우리가 가진 모습 그대로다. 시대를 막론하고 인류는 이 거대한 그물에 연결되어 있다. 다시 말하지만, 이야기하는 사람이 누가 됐든 신화는 이야기될 때마다 그의 영혼에 들어와 새로이 창조되며, 그때에야 비로소 그 사람의 소유가 된다.

소설로 읽는 성서 1

<성서>의 이야기들은 그리스 신화의 이야기들과 함께 유럽의 정신 속에 숨어 있는 중요한 부분을 사람들의 뇌리에 각인시켜 주었다. 나는 그것을 '감정으로 느끼는 역사의식'이라고 부르고 싶다. 그리스 신화에 뿌리를 내렸던 신화적 이야기가 <성서> 속에서도 살아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본래 <성서> 안에는 수많은 이야기가 있다. 그러나 훗날 <성서>를 기록한 사람들은 자기들이 생각하는 하느님의 형상과 맞지 않는 이야기들을 삭제하였다. 책 중의 책인 <성서>에 담겨 있던 수많은 이야기가 사라진 것이다. <성서>를 읽다보면 의미가 불분명하거나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구절이 수없이 등장한다. 풀리지 않는 의미를 풀어내려는 시도가 오래 전부터 계속되어 왔다. 그 해답은 사라진 <성서>의 사본들과 외경에서 자주 발견되었다. 또 <성서>를 에워싸며 무성하게 자라난 이야기들, 즉 신화, 전설, 설화, 민담 등이 자주 해답을 들려주었다. 나는 이처럼 수많은 이야기를 내 소설 속으로 받아들였다. 이런 까닭에 나의 소설에 '성서 이야기'라는 이름을 붙이기로 마음을 정한 것이다.

소설로 읽는 성서 2

<성서>의 이야기들은 그리스 신화의 이야기들과 함께 유럽의 정신 속에 숨어 있는 중요한 부분을 사람들의 뇌리에 각인시켜 주었다. 나는 그것을 '감정으로 느끼는 역사의식'이라고 부르고 싶다. 그리스 신화에 뿌리를 내렸던 신화적 이야기가 <성서> 속에서도 살아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본래 <성서> 안에는 수많은 이야기가 있다. 그러나 훗날 <성서>를 기록한 사람들은 자기들이 생각하는 하느님의 형상과 맞지 않는 이야기들을 삭제하였다. 책 중의 책인 <성서>에 담겨 있던 수많은 이야기가 사라진 것이다. <성서>를 읽다보면 의미가 불분명하거나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구절이 수없이 등장한다. 풀리지 않는 의미를 풀어내려는 시도가 오래 전부터 계속되어 왔다. 그 해답은 사라진 <성서>의 사본들과 외경에서 자주 발견되었다. 또 <성서>를 에워싸며 무성하게 자라난 이야기들, 즉 신화, 전설, 설화, 민담 등이 자주 해답을 들려주었다. 나는 이처럼 수많은 이야기를 내 소설 속으로 받아들였다. 이런 까닭에 나의 소설에 '성서 이야기'라는 이름을 붙이기로 마음을 정한 것이다.

소설로 읽는 성서 3

<성서>의 이야기들은 그리스 신화의 이야기들과 함께 유럽의 정신 속에 숨어 있는 중요한 부분을 사람들의 뇌리에 각인시켜 주었다. 나는 그것을 '감정으로 느끼는 역사의식'이라고 부르고 싶다. 그리스 신화에 뿌리를 내렸던 신화적 이야기가 <성서> 속에서도 살아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본래 <성서> 안에는 수많은 이야기가 있다. 그러나 훗날 <성서>를 기록한 사람들은 자기들이 생각하는 하느님의 형상과 맞지 않는 이야기들을 삭제하였다. 책 중의 책인 <성서>에 담겨 있던 수많은 이야기가 사라진 것이다. <성서>를 읽다보면 의미가 불분명하거나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구절이 수없이 등장한다. 풀리지 않는 의미를 풀어내려는 시도가 오래 전부터 계속되어 왔다. 그 해답은 사라진 <성서>의 사본들과 외경에서 자주 발견되었다. 또 <성서>를 에워싸며 무성하게 자라난 이야기들, 즉 신화, 전설, 설화, 민담 등이 자주 해답을 들려주었다. 나는 이처럼 수많은 이야기를 내 소설 속으로 받아들였다. 이런 까닭에 나의 소설에 '성서 이야기'라는 이름을 붙이기로 마음을 정한 것이다.

한 권으로 읽는 셰익스피어

셰익스피어가 위대한 이유는, 그의 걸작들이, '인간으로 살아간다는 일'의 모든 근본 바탕을 고스란히 담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선함과 악함은 함께 어울리며, 때로는 격정으로, 때로는 진한 감동으로 우리를 몸서리치게 만든다. 셰익스피어는 인간을 새롭게 창조함으로써 그 결과 문학을 새롭게 썼다. 거기에 내가 더 덧붙일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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