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설계사무소에서 근무하며 주로 했던 일은 최대한 크고 높은 건물을 지으려는 건축주의 무한한 욕망과 가능한 한 그것을 억제하려는 법의 규제를 적당히 조율해 주는 일이었다. 산과 강이 오묘하게 만나는 곳에 인간이 집을 짓듯이, 우리도 욕망과 규제의 틈새를 비집고 들어가 집을 지었다. 그리고 이 책은 바로 그러한 시각의 틀로 구석기 시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길고 긴 건축의 역사를 거칠게 일별한 것이다.
과거에는 주인집에 매여서 잔심부름을 하거나 농장을 경여하던 솔거노비들이 외부에 독립해 살며 신공을 납부하는 외거노비로 변화하면서 이들은 농업 외에 도심 서비스업과 상업이라는 새로운 생산 영역에 뛰어들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렇게 변화하는 사회상이 주거 건축에도 반영되기 시작하는데, 바로 그 역동적인 시대의 모습을 그리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