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부터 <주역周易>을 읽기 시작했다.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 욕심 내지 말고 현재의 나를 지키며 살 것인가, 보다 높은 것을 성취하기 위해 분투할 것인가. 이런 생각을 하며 마지막으로 점을 쳐보았다. “역을 아는 자는 점을 치지 않는다”고 했으니 마지막이라는 것이다.
‘뇌풍항雷風恒’이 나왔다. 해석자들에 따라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항구하게 자신의 덕을 지키라’는 뜻일 것이다. 그런데, 머묾이 ‘항’인가 움직임이 ‘항’인가. 나는 자신의 본분을 지키면서 살아왔던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늘 애써 왔던가. 판단이 서질 않으니 어느 것을 ‘항’으로 해야 할지 알 수가 없다. 누구 보고 내가 어찌 살아왔느냐고 물어볼 수도 없는 것 아닌가.
(…) 사람 평생의 생각을 모두 담더라도 USB 하나면 족한 시대, 얼마나 쓸데없는 생각과 상상만 했기에 볼품 적은 희곡 다섯 개 이제 내미는가. 아 그러니 ‘항’은 하던 대로 하라는 뜻이 아니라, 너는 아직 한 게 없다는 뜻인가. 꽃 몇 송이 피워 보겠다고 땅에 뿌리를 박은
화초에게, 두고 보아도 소식이 없으니 이제 그만 누워라, 그리고 썩어 버려라 할 수는 없으니까, 그래 계속 해봐라, 이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