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세 살 때 버스를 타고 가던 길에 한 할머니가 내 옆에 와서 앉은 일이 있다. 큰 보따리를 두 개나 들고 등은 꼭 새우처럼 굽은 할머니였다. 수업이 일찍 끝난 나른한 오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차는 천천히 달렸고 계속 고개를 끄덕이며 졸던 할머니는 이내 내 어깨 위에 고단한 머리를 조용히 올려놓았다. 버스가 약하게 흔들리면 할머니의 머리도 조금씩 흔들렸다. 그 느낌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당선이 되었으니 앞으로 내게 좀더 기회가 주어지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스물세 살 때 내 어깨 위에서 잠들었던 할머니의 모습, 그 이상을 이야기할 자신이 없다. 그래서 앞으로도 내게 남아 있는 질문을 반복하는 수밖에는 없을 것이다.
우리에겐 좀더 인간적인 길이 남아 있지 않을까?
방식은 같다. 늘 그렇듯 근거 없이, 막무가내로.
우리 삶이, 또는 인류가 나아가는 방향이 결국 사랑이라 하더라도, 나는 우리 삶의 궁극적인 속성이 비극임을 감출 수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 삶을 이루고 있는 불행과 비극을 다른 무엇으로 치장할 수 있으랴. 우리는 그런 삶을 살고 있고, 그래도 우리 삶은 충분히 아름답다.
이 이야기는 한 죽음, 그리고 그뒤에 남은 사람들의 이야기다. 나는 그 사람들이 지닌 삶의 의지를 그리고자 했다. 우리는 삶 안에 있고, 그 삶이 지닌 속성을 받아들여야 한다. 나는 그런 의지를 아름답다고 느낀다. 삶이 어느 곳으로 흘러가든 간에. 물론 그곳이 사랑이라면 더할나위없겠지만.
2011년 가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