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은 영원할 수 있지만 방송드라마는 그럴 수 없다. 일회용으로 사용된 후 버려지는 것이다. 젊은 날에는 그러한 현실이 안타깝고 억울하고 허무하기 짝이 없었다. 그래서 내 원고가 방송되는 날 짐짓 방송을 외면하고 폭음으로 밤을 새우기도 했다.
그러다가 지천명의 나이에 이른 지금 뒤늦게 깨닫기도 한다.
인생도 순간이요 방송도 순간이다. 헛되로이 무엇을 남기려 하느냐. 내가 지어낸 이야기가 마술처럼 전파를 타고 허공을 날아가 수백만 민중의 머릿속에 잠시 머물렀단 사라진다. 이 얼마나 인간답고 아름다운 일인가.
굳이 활자로 남아 아 내가 왜 이렇게 썼던가. 자학하며 고통스러울 염려는 없지 않은가... 그렇다, 방송은 지금 바로 이 순간이라는 미학. 영원하지 않다는 미학, 사라짐의 미학을 지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