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에서 나는 현대사의 굴곡 속에 시적 언어를 새겨 넣었던 선배 시인들의 궤적을 탐색하고자 하였다. 그것은 불우와 환멸의 시가능로 점철된 우리 문학사의 흔적을 따라가서 마침내 그 광휘의 지점에 닿고자 하는 욕망에서 촉발된 작업이었다.
박인환과 김수영, 김춘수 등 서로 다른 언어적 호흡과 색채를 지닌 시인들이 함께 묶여질 수 있었던 것은 근대의 시간을 관통해가고자 했던 이들의 시적 운명의 공통성 때문일 터이다. 이들의 시쓰기는 서구의 문명사적 포획 앞에서 비서구 시인들이 감당해야 할 피로와 고투 그리고 고독한 운명의 도정이었다.
나는 그녀를 보기 위해서 그 도시의 박물관에 가곤 했다. 내가 알기로 그녀는 수십 년 동안 그곳에 있었고,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거기에 있었을 것이다. 누런 삼베에 감싸인 그녀는 곧 잠에서 깨어날 듯하고, 어쩌면 굳게 잠긴 잠의 저편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플라스틱 관 옆에 나무 조각이 붙어 있다. ‘사막의 무녀’. 이것이 그녀의 이름이다.
―에세이 「화염의 박물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