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산속 절집에서 여름을 마주하고 있다. 이번 더위는 산속도 예외가 아니어서 실내에 있는 것이 그나마 견딜 만하지만 기어이 산문 밖으로 나선다. 한발 먼저 따라나서던 강아지도 보이지 않는다. 연못은 수련의 무리를 일제히 내세워 기우제를 지낸다. 늙은 보리수나무도 이파리를 허옇게 뒤집은 채 널브러져 있다. 나도 더위의 한 풍경이 되어 시나브로 앉아 있다. 바람이 없으니 풍경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잔디밭으로도 막을 수 없는 열기가 봄날 아지랑이처럼 어른거린다. 미련하게도 나는 바람을 기다린다. 얼마나 지났을까, 자귀나무 이파리가 후르르 떨린다.
금방 타오를 듯싶을 때 바람은 분다. 이제 그만 숨이 막히는구나 싶을 때 웬걸, 그렇게 쉽게 하듯 거짓말처럼 숨통이 트이고는 했다. 그럴 때마다 적어둔 글들을 다시 세상에 내보낸다. 내 몫의 '혹독함'을 견디는 방법은 이렇게 '나를 덜어내는' 일 뿐이었다. 그러나 덜어낸 것은 다시 차오르는 간단한 이치를 깨닫기에는 아직도 멀었거나 혹은 그 방법을 터득하지 못한 듯 나는 여전히 숨 가쁘고 덥다.
자서전을 쓰는 사람들을 보면 저걸 정말 쓸 필요가 있을까 싶을 때가 있었다. 교만이고 무지였다. 사람이 자신의 삶을 정리한다는 것, 혹은 뒤돌아본다는 것은 삶의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돌아보기가 두려웠던 것은 아닐까. 지금 쓰고 있는 에스프리가 어쩌면 나의 작은 자서전일지도 모른다. 아니, 지금껏 써 온 모든 글들이 사실은 형태를 바꾼 나의 자서전에 다름 아니다.
누구나 그렇듯이 나 또한 여러 명의 '자신'으로 살아온 기록 중에서 '시인 박미라'의 간추린 자서전을 써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