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늦은 질문이어도 좋은가. 이만큼에 서서 저만큼의 강을 물으며, 묵묵히 바라보는 경우가 잦다. 예전 어디선가 보았던 시간이 묵어 목전의 강물로 오는 것 같다. 황혼을 지피는 새들은 귀소를 서두르는가. 나는 약간은 처연하게 강 끝을 응시한다. 나는 서둘러 달려가야 할 집이 없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사람처럼, 나에게서조차 잠시 물러난다. 저 무심한 강물이 물어대는 무언가 반박할 수 없는 질문들로부터, 아무리 사소한 질문일지라도 어느 소설가처럼 수백만 페이지를 샅샅이 뒤지지 않을 수 없도록 자꾸만 절박해지는 이 황혼으로부터, 방금 눈앞에 무엇이 지나갔지? 아니 나는 지금 어디에 있지? 저렇게 강물은 하냥 출렁거리고 또 시간은 조각조각 깨져 일렁거리는 목전. 이것은, 이 아닌 것은 대체 무엇인가 또 묻는다. - 시인의 말
일곱 권의 시집 가운데서 뽑은 60여 편의 첫 시선집을 육필시집으로 낼 수 있어 기쁘다. 이 시선집이 시와 삶의 일치라는 요원한 꿈에 대한 그간의 이력이라 생각하니 허술하고 부끄럽기 짝이 없다. 하지만 시가 있어 행복했고, 앞으로도 일곱 권 정도의 시집을 더 내서 두 번째 선집을 낼 꿈에 부푸니, 나의 불우가 아름답기까지 하다.
언제부턴가 내 시에서 주체가 사라지곤 했다. 아니 애초부터 그랬다. 그건 내가 나를 별로 신뢰하지도 않지만, 세계와 우주를 '독학'하는 처지에 무슨 목소리를 내랴 싶어서이기도 했다. 주체가 드러내는 게 '속내'라고 한다면, 어쨌든 그것은 속에서 내를 열든가 산을 세우든가 무슨 길을 찾겠거니 하고 되레 그걸 꼭꼭 눌러두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