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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정지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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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월 <영성신학>

영원한 여성상 : 거룩한 창녀

융 분석가인 저자는 고대사회에 실존했던 거룩한 창녀가 우리 마음에 다시 살아나기를 염원하면서 이 책을 독자들에게 헌정한다. 마음 속 깊은 곳에서 거룩한 창녀를 만나야 여성과 남성 모두가 의미 있고 생기 넘치는 삶을 살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성공 신화에 사로잡힌 세상을 인간미 넘치는 세상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의 주제인 거룩한 창녀는 도스토예프스키의『죄와 벌』에 나오는 소냐를 연상시켜준다. 절대 빈곤에 빠져있는 가족을 위해 창녀가 되었지만, 살인을 저지르고 고뇌하는 라스콜리니코프를 어루만져주며 참회의 길로 인도했던 창녀 소냐 말이다. 소냐는 자기희생으로 타자를 구원하는 여성의 상징이다. 거룩한 창녀도 소냐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에게 참된 기쁨을 선사해주는 여성이다. 그러나 거룩한 창녀는 세속의 창녀는 아니다. 거룩한 창녀는 신전에서 여신을 섬기는 여성 사제 혹은 결혼을 앞두고 사랑을 배우기 위해 신전을 찾은 처녀들이었다. 그녀들은 신전에서 여신의 사랑을 체험한 뒤 신전을 찾은 이방 인들을 맞아들이고 함께 여신을 숭배한 후 성적 교제를 나눈다. 이방인과 사랑을 나눈 후 여성 사제들은 신전에 머무르지만, 진정한 처녀가 된 여성들은 집으로 돌아가 결혼을 준비했다. 저자는 고고학적 유물과 신화 그리고 고대의 문서들을 분석한 후 거룩한 창녀가 신적인 사랑 혹은 여성성의 원형을 실현한 여성, 따라서 남성과 세상을 변화시키는 여성이었다고 주장한다. 사랑의 신전은 여신의 사랑을 세상에 전파하는 세상의 배꼽(Ομφαλος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거룩한 창녀가 여신과 함께 사라지면서 성(sexuality)과 영성(spirituality)이 분리되기 시작했으며, 여성의 성에서 신성함이 박탈되면서 여성은 생산과 착취의 대상으로 전락했다고 분석한다. 그녀는 현대의 여성과 남성들이 겪고 있는 집단적 우울증과 사회적 소외의 문제도 결국에는 거룩한 창녀의 부재 현상에서 파생하는 것이라고 덧붙인다. 저자는 고대신화와 종교문서 분석을 통해 사랑의 신전 파괴의 주범을 가부장제에서 찾는다. 특히 가부장적 종교는 성을 영성과 대립시키며 거룩한 창녀를 세속의 창녀와 동일시했다고 말한다. 사실 유대교의 예언자들은 거룩한 창녀 제의를 신랄하게 비판한다. 신전에서 이루어지는 성행위는 신성모독과 성적 문란의 극치라는 것이다. 물론 거룩한 창녀 제의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변질된 양상들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변질의 원인은 제의 자체에 있을 수도 있다. 사랑의 신전 제의에는 언제나 성적 문란에 빠질 위험성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세까지 존재했던 영주의 초야권(初夜權) 행사나 사이비 교주들의 여성착취 사례는 남성의 권력이 사랑의 여신을 대신하면 제의는 변질될 수밖에 없으며, 따라서 거룩한 창녀 제의를 변질시킨 주범이 가부장적 제도임을 시사한다. 어쨌든 거룩한 창녀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물론 세속의 창녀는 여전히 존재한다. 그러나 저자는 거룩한 창녀와 세속의 창녀가 처음부터 구분되었다고 말한다. 세속의 창녀는 거룩한 창녀의 후예나 거룩한 창녀의 타락한 형태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꿈 분석을 통해 거룩한 창녀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역사 속에서 사라진 거룩한 창녀는 여전히 우리의 무의식 깊은 곳에서 꿈틀거리며 우리의 의식이 받아들여주기를 기다린다는 것이다. 따라서 저자는 여성성의 원형인 거룩한 창녀가 우리 안에서 자신을 실현할 수 있도록 도와줄 때 인격발달이 이루어지고 인간성이 실현된다고 주장한다. 우리의 의식이 우리 안에 존재하는 원형적인 여성성의 움직임을 감지하고 받아들이면, 우리의 삶에 새로운 변화, 즉 삶에 주어진 의미와 행복을 발견하고 모든 교제를 신의 선물로 인식하게 되는 변화가 찾아온다 는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주장에 독자들이 공감할 수 있도록 인류의 공통 유산이지만 가부장제와 합리성의 세계에서 소외되었던 신화와 민담 그리고 꿈을 연구의 소재로 삼는다. 그리고 자신의 주장을 설득력 있게 제시하기 위해 학문적 논증의 방식이 아니라 상상력과 감성에 호소하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저자가 가부장제를 지탱해주었던 합리성의 세계를 혁파하자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가부장제가 가져온 질서의식과 합리적 사유방식이 삶에 필수적임을 인정한다. 다만 남성적인 것과 합리적 사유방식은 반드시 여성성의 강물 안에서 세례를 받고 정화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지 않으면, 가부장제는 비합리적인 것과 여성적인 것을 억압함으로써 결국 개인과 공동체를 욕구불만의 깊은 수렁 속에 빠뜨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아무쪼록 저자가 이 책을 통해 우리에게 제시하는 여성성의 세계가 독자여러분에게 가깝게 다가가 말 건네기를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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