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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소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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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2월 <기독교인의 관점에서 본 정신 질환>

진화론의 상징들

생물학자인 저자 조나단 웰스는 2000년에 진화론 비판서인 『진화의 상징들』을 출간했다. 진화의 상징이란 나무줄기에 붙어 있는 회색가지나방들, 헤켈의 배(胚)들 등과 같이 진화의 증거 또는 진화와 관련된 개념을 영상(影像)으로 나타낸 것을 말한다. 이 책에서 웰스는 10개의 진화의 상징들을 비판적으로 살펴보았다. 2000년 이후 생물학은 많이 발전했으며, 한편 진화론에 대한 비판도 더욱 체계를 갖추게 되었다. 저자가 새로 밝혀진 사실들로 앞의 책을 보완해 2017년에 출간한 책이 바로 이 책, 『좀비 과학: 더 많은 진화의 상징들』(Zombie Science: More Icons of Evolution)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이전의 상징들에 대한 비판을 보완하고, 6개의 상징들을 추가해 자세하게 그들의 문제점을 살펴본다. 역자는 평소에 진화론에 관심이 많았으나 전공자가 아니므로, 이 책을 번역하면서 많은 것을 새로 알게 되었다. 우선 진화를 소진화와 대진화로 구분한 것은 진화론 비판가들이 아니고, 저명한 진화론자인 도브잔스키였다. 그는 1930년대에 종 안에서 일어나는 작은 변화를 소진화라고 부르고, 새로운 종, 기관 및 신체 구조의 생성과 같은 큰 변화를 대진화라고 불렀다. 그는 또 비교적 짧은 시간에 일어나는 소진화의 메커니즘은 규명할 수 있지만, 지질학적 규모의 긴 시간이 걸리는 대진화의 메커니즘은 규명하기 어려우므로 대진화도 소진화와 같은 메커니즘으로 일어난다고 가정하고 연구를 진행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동안 DNA에서 무작위로 일어나는 돌연변이에 의해 소진화가 일어나는 것은 실험과 관찰을 통해 확증되었다. 그러므로 소진화는 논쟁의 대상이 아니다. 그러나 소진화적 변화들이 축적되어 새로운 종, 기관 및 신체 구조의 생성과 같은 대진화를 일으킬 수 있는지는 아직까지 실험적으로 확인되지 않았다. 대진화가 일어나기 위해서는 새로운 단백질들이 만들어져야 하는데, 단백질은 20종의 아미노산들의 배열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무작위적인 방식으로 단백질이 생성될 확률을 계산할 수 있다. 계산 결과는 이 확률이 너무 작아 무작위적인 방식으로는 생명의 역사 중에 천연 단백질이 하나도 생성될 수 없음을 보여 주고 있다. 그러므로 도브잔스키가 가정했듯이 대진화의 메커니즘이 소진화의 메커니즘과 같다면, 대진화는 일어날 확률이 지극히 작아 실질적으로 일어날 수 없다. 아직까지 아무도 이 확률 문제를 해결한, 납득할 만한 대진화의 메커니즘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진화론 내부에서도 현재의 신다윈주의로는 대진화를 설명할 수 없으므로 새로운 진화 이론을 모색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이와 같이 소진화와 대진화를 구분하면 문제가 명확해진다. DNA의 구조와 돌연변이가 발견되기 전에 살았던 다윈은 소진화와 대진화를 명확히 구분하지 않고 진화론을 제안했으며, 실제로 『종의 기원』에서는 소진화의 증거를 가지고 대진화도 일어나는 것으로 추론했다. 이 책의 저자는 진화론자들이 지금까지 진화의 증거로 제시하는 것들은 소진화의 증거이지 대진화의 증거는 아니라고 주장한다. 대진화의 메커니즘도 규명되지 않은 상황에서 대진화의 증거라고 주장된 것은 추측이거나 그럴듯하게 꾸며낸 이야기일 뿐이다. 진화론은 하나의 과학적 이론이다. 그런데 대진화에 대한 확실한 증거가 없는 상태에서 진화론을 잘 모르는 학생들이나 일반인들에게 소진화와 대진화를 뭉뚱그려 진화가 확증된 사실인 것처럼 제시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더욱이 그동안 진화의 증거로 제시된 것 중 어떤 것은 후속 연구에 의해 증거로서의 가치를 잃어버렸는데도, 교과서와 언론 매체에서 계속해서 진화론의 증거로 제시되고 있다. 이것은 마치 땅에 묻혔던 시체가 다시 걸어 나와 돌아다니는 셈이므로, 저자는 이것을 “좀비 과학”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 책의 주장에 대해 물론 진화론자들은 반론을 제기할 것이다. 그러므로 독자는 양쪽의 주장을 듣고 진실이 무엇인지 스스로 분별할 수밖에 없다. 그동안 학교에서는 진화론만 가르쳐 왔기 때문에, 학생과 일반인은 과학에 근거를 둔 진화론에 대한 비판을 접할 기회가 많지 않았을 것이다. 이 책이 그동안 진화론의 관점에서만 바라보던 진화의 여러 증거를 새로운 관점에서 보고 진실을 분별하는 데 도움을 주기 바란다. 처음부터 이 책의 번역을 기획하고, 출판사 선정을 위해 애써 주신 한국 지적 설계연구회 회장 이승엽 교수님과 출판을 맡아 준 부흥과개혁사에게 감사드린다. - 역자 후기

하나님 나라와 유토피아 오류

1970년대 초반에 나는 세계 선교 운동의 성경적 기초가 깊이 침식되면서 이 운동이 처하게 된 근본적인 위기에 대한 내 평가를 영어권 청중에게 소개하는 일련의 책들을 출간했다. 이 책은 그 책들의 후속편이다. 『선교-어느 길로?』, 『흔들린 기초』, 『방콕 ‘73-세계 선교의 시작인가, 끝인가?』라는 제목의 책들에서, 나는 1961년에 뉴델리에서 이전의 국제 선교사 협의회가 세계 교회 협의회(WCC)로 통합된 이후 에큐메니칼 선교학의 극적인 발전 및 1968년에 웁살라에서 열린 WCC 제4차 총회와 태국에서 열린 제8차 세계 선교사 대회의 중요한 사건들에 초점을 맞추었다. 이런 사건들은 WCC 운동 안팎에서 복음주의 지지자들의 불안감을 증폭시켰고, 곧 유명한 1966년의 휘튼 선언과 1970년의 프랑크푸르트 선언에서 사과하는 반응이 표명되기에 이르렀다. 1980년과 1989년에 국제 선교 운동의 양 진영은 각자의 후원 아래 별도의 세계 대회를 열 것을 요구했다. 이 사실은 1973년에 방콕과 1974년에 로잔에서 취한 대조적인 방향으로 인해 야기된 선교학적 양극화가 양측의 대표자들이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여러 차례 시도했음에도 불구하고 결코 치유되지 않았음을 보여 준다. 사실상 샌안토니오에서 ‘복음주의적 관심을 가진’ 160명의 참가자들이 마닐라 대회 참가자들에게 다음 회의가 합동 회의가 되어야 한다는 자신들의 제안을 지지해 줄 것을 간청한 공개서한은 두 진영 사이의 깊은 신학적 균열 때문에 로잔 집행위원회에게서 냉담한 반응을 받았다. 복음주의-에큐메니칼 갈등에서 실제로 문제의 핵심이 무엇인지는 논의될 수 있고 논의되어 왔다. 선교 과업에 대한 성경적 관점을 왜곡시킨 것은 WCC 운동 측의 사회적 행동과 복음 전도 사이의 불균형이라고 주장하는 복음주의자들이 있다. 그러면 균형을 조정하는 것이 그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될 것이다. 이것이 사실상 ‘급진적 복음주의자들’의 대표들, 즉 두 운동 간의 합의를 주장하는 주요 대변인들이 제안하는 것이다. 만약 복음주의자들이 그들의 에큐메니칼 동료들에게서 배워 제3세계의 사회정치적 도전을 직시한다면, 반면에 에큐메니칼 운동가들이 수많은 미전도 종족 그룹의 영적 필요에 부응할 준비가 되어 있음을 보여 준다면, 그들은 통합이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이런 고려에는 일말의 진실이 있다. 그러나 그것의 약점은 이것이 신학적 토대 속으로 충분히 깊이 파고 들어가지 못하는 약간 실용적인 접근이라는 것이다. 복음주의자들이 비기독교 세계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데 더 열심인 반면에, 에큐메니칼 운동가들은 그들의 빈곤을 야기하는 불공평한 사회 구조를 변화시키는 데 더 관심이 있다는 사실은 마지막 분석에서 하나님의 구속 계획에 대한 이해의 깊은 균열에 근거하고 있다. 양측 모두 원칙적으로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적은 영적 및 육체적, 개인적 및 집단적 필요가 모두 제거되는, 인류의 완전한 구원이라는 데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더욱이 양측은 이 행복한 상황에 도달한 상태를 성경적 용어로 하나님의 나라라고 부를 수 있다는 데 동의할 수 있다. 기독교 선교는 궁극적인 목적을 달성하려는 노력에서, 사실상 구약 성경의 선지자들과 세 명의 공관복음서 저자들이 예수 자신의 설교에 근거하여 제시한 이 신성한 목적에서 항상 영감을 받아 왔다. 그러나 현대 국제 운동의 비극은 신학적 자유주의, 사회복음, 인본주의 이념의 영향 아래, 그리고 부분적으로는 서로 다른 천년왕국 이론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가 흐릿한 개념이 되었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가장 급진적인 왜곡에서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다양한 역사 철학에서 바라는 어떤 이상적인 상태에 대한 동의어로 축소되었다. 그러나 모두 종말론적 정확성의 기본적인 결여, 또는 내 신학이 뿌리를 두고 있는 대륙 사상 학파의 용어를 사용하면, 성경적인 구원 역사에 대한 인식 부족에서 기인하는 혼란의 여러 다른 수준들이 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은 하나님의 구속적 경륜이 최종 목적지에 도달하여 모든 피조물이 하나님의 영광의 거울이 될 때까지,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세계를 다루실 때 펼쳐지는 여러 단계들 사이의 구원 역사의 결정적인 차이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이 원대한 목적을 놓치고 거기에 이르기까지의 단계들을 소홀히 하면, 이론적인 오류가 생길 뿐 아니라, 그것의 실질적인 결과는 하나님의 자녀에게 약속하시고 주신 천국을 오로지 사람 자신의 자율적인 노력에 의해서만 건설될 지상의 나라로 바꾸는 것이다. 이 일련의 연구에 기록된 내 관찰에 따르면, 이것은 새로운 유형의 선교의 비전을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에큐메니칼 운동에 일어났던 일이다. 그런 이유로 나는 국제 선교 운동의 복음주의 진영이 성경적 지향에 충실하게 남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복음주의자들은 이념적 위조품과의 어떤 타협도 피해야 한다. 설령 ‘바울의 언어’를 이른바 ‘예수님의 언어’로 대체함으로써 사실상 선지자에서부터 복음서를 거쳐 서신서에 이르는 성경적 신학의 내적 원리를 뒤집는 이른바 ‘하나님의 나라 신학’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그런 제안이 오더라도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그렇게 함으로써 이런 견해는 하나님의 모든 약속이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며(고후 1:20), 우리는 하나님과의 교제, 즉 교회 안에서 하나님 나라의 실현의 현재 단계에서 그 나라로 받아들여진다는 성경적 구원 역사의 결정적 요점을 놓치고 있다.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데 있어 하나님의 주권적인 경륜을 염두에 두라는 이 호소는 이 에세이와 강연 모음집을 관통하는 공통적인 아이디어다. 독자들은 그 에세이들과 강연들이 세계 복음화를 위한 로잔 운동의 제1차 대회와 제2차 대회 사이의 16년 동안 다양한 경우에 작성되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장들의 스타일이 다르고, 때로는 이전 장에서 설명한 주장이 반복되지만, 원래 지적한 맥락을 유지하기 위해 업데이트를 최소한으로 제한했다. 그럼에도 독자들은 이 책을 동질의 신학적 취지를 가진 것으로 만드는 내적 일관성을 인식할 것이라고 믿는다. 나의 성경 인용문은 일반적으로 개정 표준역 성경에서 인용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책의 두 편집자인 북아일랜드 뱅거의 로버트 로저스 박사와 일리노이 디어필드 소재 트리니티 복음주의 신학교의 존 파인버그 박사의 귀중한 도움에 감사드린다. 그들은 내 영어를 다듬었고 가끔 내 관점의 본질을 손상시키지 않으면서 복음주의 사상의 다른 전통적인 계열에 따라 형성된 교회 환경에서 수용될 수 있도록 몇 가지 신학적 수정을 제안했다. 나는 이 분야의 전문가뿐 아니라 오늘날 교회의 선교와 에큐메니칼 사상의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 알고 싶어 하는 지성적인 평신도를 위한 책을 만들고 싶었으므로, 이런 관심에 특별히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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