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동안 기억해야 할 일이 두 가지가 있다. 우리는 떠나가고 있는 존재들이라는 사실과 이 땅에서 사는 동안에는 추위와 더위, 여름과 겨울, 낮과 밤을 쉬지 않고 맞으면서 심고 거두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낮과 밤중에 어느 편이 좋은가는 의미가 없다. 지금 낮을 맞았다고 해서 좋아할 일도 아니고 밤을 지나고 있다고 해서 절망할 일도 아니다. 이 모든 것들이 어우러지는 것이 생이기 때문이다. 내 노래가 이 땅을 살며 낮과 밤을 맞는 나그네들에게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었으면 좋겠다.
“앞으로 우리 다시는 헤어져 살지 말자!”
편지 형식으로 보낸 이야기들은 혼이 깃든 진솔한 이야기다. 거짓이 난무하는 시대에 진정성이 가지는 힘은 위대하다.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진실이다. 그러한 사람들의 기대를 저버리고 싶지 않아서 책을 엮는다.
편지에서 수없이 밝혔듯이 국방부 시계는 거꾸로 가도 돌아갔고 그렇게 바라던 제대를 하고 아내와 함께 단란한 가정을 꾸리며 살아가고 있다. 생각해 보면 아름답고도 슬픈 추억이다. 나와 내 아내가 바라던 그 사랑은 쟁취 되었다. 사랑은 소중하다. 각자의 사랑은 그저 생겨난 것이 아니라 엄청난 희생이라는 대가를 치르고 얻어진 것이다. 우리는 이런 사랑을 감사하며 소중히 여기는 사랑의 전사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거나 출세를 위해 달려가다가 꿈을 잃고 좌절하며 방황하던 때는 없었는가? 만일 있었다면 그때 당신은 어떤 처신을 했으며, 어떻게 그 어려움을 극복해 낼 수 있었는지 묻고 싶다.
나는 군대에 가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 석사장교로 몇 개월 군 복무를 하면 될 줄 알았다. 박사과정에 진학해서 학자로서의 길을 걸었으며, 결혼까지 해서 딸아이를 낳고 행복한 가정을 꿈꾸었다. 하지만 석사장교 시험에 떨어지고 나는 눈물을 머금고 가족들과 헤어져 군대에 입대했다.
데모가 많던 군사정권 아래에서 육군 보병으로 수사정보 주특기를 받았던 나는 갑자기 훈련소에서 컴퓨터 추첨을 통해 전투경찰로 차출되었다. 허구한 날 전국의 시위현장에서 정치의 부재를 화염병과 최루탄으로 맞서야 했던 불운한 시대를 보냈다. 나는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박사과정을 바로 마치면 교수 자리를 약속받았었다. 돌을 넘기지도 못한 어린 딸과 나를 하늘로 알고 의지하던 마음이 여린 새댁을 남겨두고 군에 가야만 했다. 나의 뜻과는 달리 전국 시위현장을 떠돌며 어떨 때는 정의로운 항거에 최루탄을 쏘며 진압해야 하는 운명 앞에서 좌절했다.
그때 어쩔 수 없는 처지에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내 꿈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군대 밖에 있는 아내에게 하소연이 섞인 편지를 날리면서 세상을 향해 소리칠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국방부 시계가 빨리 돌아가기를 바랐고, 혹독한 사랑의 책임을 감내해야만 했다. 결코, 내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시간이었다. 나는 이 시대를 증언하고 싶었다. 그리고 군으로 간 사랑의 모습을 증언하고 싶었다. 누구나 다 두 주먹을 쥐고 하늘을 향해 하소연하고 싶었던 시절들이 있다. 이 이야기도 그중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