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세월을 시와는 전혀 상반되는 손익분기점에만 온 정신을 쏟아붓고, 또 그 와중에 빠져 심신이 굳어버린 내가 어느 날 갑자기 순수한 정신 지향적인 시문학과 한 몸이 된다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철부지로 고교시절 잠시 만났던 시를 다시 찾아왔다고해서 시가 그렇게 쉽사리 나를 반겨 줄 리는 없엇고, 따라서 그 시가 문외한인 나를 데리고 내 자신과 내 과거 그리고 자연, 우주, 종교 속으로 다니며 겪게 했던 그 좌절과 고통은 어쩌면 아주 당연한 응보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러나 시는 그러한 고통과 좌절 속에서 나로 하여금 좀더 성숙한 인생의 경지로 들어서게 해 주었고, 그로 인한 평온한 내 노년을 지족이라는 지혜 근처를 서성대며 지내게 해 주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아주 작은 들꽃 속의 소중함도 볼 수 있게 되었고, 내 마음은 그 들꽃 속의 꽃가루 만큼이나 가볍고 자유로워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