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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이원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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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0월 <서양사상의 유입과 유학계의 대응>

위잉스 회고록

재작년인 2021년 8월 1일 영면에 든 위잉스는 현대 중국 본토의 정치적 상황에 그다지 호의를 보이지 않았음에도, 대륙의 학계가 “후스[胡適] 이래 가장 걸출한 중국학자”, 심지어 “후스를 뛰어넘는다.”라는 극찬을 할 정도로 중국 고대의 경제사, 사회사, 그리고 사상사 분야에서 각각 일가를 이루었던 중국학의 거인이었다. 국내에는 ‘중국근세 종교윤리와 상인정신’(정인재 역, 대한교과서주식회사, 1993), ‘동양적 가치의 재발견’(김병환 역, 동아시아, 2007), ‘주희의 역사세계’(이원석 역, 글항아리, 2015)가 번역되어 소개되었고, 근년에 민경욱, 정종모, 이영섭 등이 위잉스의 학술 및 사상에 관한 연구를 선보였다. 요즘 중국의 학자들과 얘기해 보면, 자신의 수준이 아직도 민국 시대(1911~1948) 시대 학자의 그것을 넘어서지 못했다는 한탄을 하곤 한다. 본서에서 언급되기도 한 왕궈웨이[王國維], 량치차오[梁啓超], 천인췌[陳寅恪], 후스, 그리고 펑유란[馮友蘭] 등이 그 시대에 불후의 업적을 남길 수 있었던 까닭은 이들이 유년에서 청소년기에 걸쳐 한학 교육을 충실히 이수했을 뿐 아니라 청년기에는 서구 근대 교육의 최일선에서 그 연구 방법론을 익혔고, 게다가 과학, 민주, 자유의 이념적 세례를 받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이들은 한학과 근대 학문 양자의 정수를 제 한 몸에서 융합해 내는 학문적 전통을 세웠는데 위잉스는 그 전통의 마지막 자리에 올라탔기 때문에 ‘중국학의 거인’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신아서원에서 그를 지도한 쳰무[錢穆]는 20세기 중국의 “4대 사학자”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이른바 “국학대사(國學大師)”였고, 하버드대학 시절 위잉스의 지도교수는 중국경제사 및 사회사의 최고 권위자이자 그 엄밀한 학술 비평으로 인해 “중국학의 경찰”로 불렸던 양롄성[楊聯陞]이었다. 본서 ‘위잉스 회고록’은 저자가 이 두 사람으로부터 지도받는 과정과 인격적 교제 양상이 소상히 기록되어 있어, 중국학 인재 양성의 모범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이해하는 데 대단히 유익하며, 오늘날 한국의 대학에서 학문후속세대를 길러내는 방법에 대해 중대한 시사점을 제시한다. 최근 위잉스의 송대 도학론이 국내 학계의 일각에서 조용하나마 반향을 일으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도학의 정치사상과 정치문화에 함장된 반(反)전제적ㆍ입헌군주제적 특성을 부각한 그의 문제작 '주희의 역사세계'로 인해, 송대 도학을 적극적으로 수용한 조선 유학자들의 정치사상을 입헌군주제적 견지에서 재해석할 수 있다는 견해가 제기되는 한편, 입헌군주제가 서구의 역사적 맥락과 분리될 수 없는 것이므로 과연 그런 요소를 도학의 정치사상으로부터 도출할 수 있는지 의문을 제기하는 연구자들도 있어, 학계는 위잉스의 테제를 두고 바야흐로 논전을 형성할 조짐을 보이는 것이다. '위잉스 회고록'은 그러한 논전을 진일보시켜 생산적 결과를 낳게 할 중요한 정보를 담는다고 역자는 판단한다. 그 정보는 위잉스 청년 시절의 정치적 견해와 거기에 영향을 끼친 주요 서적 및 인물에서 찾아볼 수 있다. 위잉스는 젊은 시절 홍콩에 거점을 둔 “제3세력”에 가담하여 정치적ㆍ문화적 활동을 활발히 벌였다. 그는 소극적 동의자에 머물지 않고 “제3세력”의 신진 이론가로서 '자유와 평등의 사이'와 '문명논형(文明論衡)' 등을 출간하였고, “유롄출판사”라는 사상적 진지 한가운데에서 중추적 역할을 담당한 인물이었다. 이렇게 말하면, 위잉스 역시 장졔스[蔣介石]파의 반공주의를 추종한 데 불과한 것 아니냐는 물음이 뒤따를 수 있겠는데, 그가 가담했던 “제3세력”은 자유중국의 국민당과도 대립했던 정치적 실체였다. 이로부터 알 수 있다시피 “제3세력”은 공산당과 국민당 양자를 비판하면서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있었으며, 주로 영국의 페이비언식 사회주의와 미국의 잭슨식 민주주의가 이들의 사상적 기반을 형성했다고 위잉스는 증언한다. 특히 주목할 점은, 중국철학 연구로 일가를 이루었던 장쥔마이[張君勱]가 “제3세력”의 이론적 지도자였으며, 당연하게도 쳰무와 탕쥔이[唐君毅]도 이들에게 동조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위잉스의 정치적 견해는 청년 시절 이후 그다지 변하지 않았고 그것은 은연중 그의 사상사 연구에도 스며들었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우리는 위잉스의 테제를 그대로 받아들이거나 거부하기에 앞서 어째서 그것이 형성되었는지 역사적으로 이해한 후 한층 더 깊은 층위에서 평가해야 한다. '위잉스 회고록'의 이점은 그 문제를 풀기 위한 열쇠까지 친절히 제시해 준다는 데 있다. 그 열쇠란 어빙 배비트(Irving Babbit)의 '민주와 리더십(Democracy and Leadership)'과, 배비트의 사상을 추종했던 메이광디[梅光迪], 우미[吳宓]의 '학형'이라는 잡지, 아울러 량스추[梁實秋]의 '배비트의 인문주의[白璧德的人文主義]'이다. 위잉스에 따르면, 배비트는 공자의 정신수양과 그리스 이래 서양의 법치ㆍ민주를 결합했다고 한다. 2012년 국내에서 번역ㆍ소개된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파커 J. 파머 저/김찬호 역)도 배비트와 유사한 관점을 담는다고 역자는 판단하는데, 도학의 정치사상에 대한 현대의 논의는 위잉스의 본서를 매개로 하여 민주주의의 미래로 나아가게 하는 하나의 도정이 될 가능성도 있다. 이제까지 연구자의 처지에서 이 회고록의 의미를 언급하였는데, 이 책은 일반 시민에게도 매우 유익하고 또 흥미롭게 다가갈 것이다. 학자의 일생만큼 심심한 것이 또 없을 터이나, 위잉스는 그야말로 역사적 대변동기의 중국과 홍콩에서 청년 시절을 보냈기에 독자의 손에 땀을 쥐게 할 정도의 에피소드를 생생하게 서술한다. 더구나 중화인민공화국이 들어선 1948년부터 1950년 극초반에 걸쳐 중국 사회와 교육계가 어떤 변화를 거쳤는지 상대적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만큼, 이 책은 하나의 르포르타주로서, 아니 사료로서도 풍부한 가치가 있다. 또한, 그 시대에 활약한 기라성같은 인물들을 위잉스의 눈을 통해 바라보는 것 역시 즐거운 일이다. 역자는, 독자들이 풍부한 인물 정보를 얻을 수 있도록 따로 주석을 붙여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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