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년 전부터 스스로 약속했던 일, 단시조만으로 시집 한 권을 묶었다. 애초의 예상과는 달리, 단시조 쓰기가 그리 만만치는 않았다. 주제넘게 눈은 높고 솜씨는 그에 미치지 못했다. 머리를 싸매고 낑낑대는 동안,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멀었다는 느낌과 함께 좋은 글을 쓰려면 피의 여로旅路를 거쳐야 한다는 선학先學들의 따가운 경책이 내 뒤통수를 쳤다.
그런데,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왜 나는 굳이 힘든 시조를 쓰는 걸까? 수없이 묻고 또 되물어 보았다. 그건 아마도 시조라는 장르적 특성과 관련된 것이 아닐까. 하나의 심화된 주제를 가진 완결된 시조 형태는, 그냥 주어진 형식에다 어떤 내용물을 가져다 부어넣음으로써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작은 음절에서부터 낱말, 구와 장에 이르기까지 구성요소들 끼리 밀고 당기면서 서로 부딪치고 깨어졌다 다시 뜨겁게 재결합하는 수없는 과정을 거치며 완성되는 것이다. 시조 쓰기의 고통과 짜릿한 맛은 바로 여기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시조는 동양정신의 산물이요, 자기 수행의 양식이다. 자기 단련 없이 시조를 쓴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그 과정이 쉽지는 않다. 이번에 엮은 단시조집도 그런 과정의 산물이지만, 성공작은 그리 많지 않음을 고백한다. 좋은 작품을 쓰기 위해 앞으로 더 고민하고, 더 사랑하고, 더 뜨겁게 살아가리라 스스로 다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