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이 책을 통해 혁명을 일으키고자 한다. 하지만 적어도 처음부터 거창한 혁명을 이루고자 욕심내는 것은 아니다. 대대적인 개혁이라든가, 원년부터 다시 시작하는 수준의 전면적인 사회 재창조, 신기술을 잡음 하나 없이 매끄럽게, 완벽하게 일괄 적용하는 것 따위를 수단으로 삼을 생각도 없다. 우리가 꿈꾸는 혁명은 철학자들은 당장 사용할 수 있는(ready-to-hand) 도구라 부르고 기술 분야에서는 범용 하드웨어에 해당하는, 일상생활이나 영화, 소프트웨어, 풀기 어려운 살인 사건, 심지어는 동물 세계에서도 볼 수 있는 기존 요소들의 바탕 위에 만들어진다.
"혁명의 수단은 독재자나 폭군, 비밀경찰이 장악하기가 쉽고, 또 실제로 지금까지도 그랬다. 그러나 우리가 추구하는 혁명은 데이터 침해를 거부할 수도, 그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도, 그렇다고 자신의 데이터 침해를 통제할 수도 없는, 한마디로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는 보잘것없는 약자들에게 특히 적합하다." 이 같은 제한적 혁명이 중점으로 삼는 것은 현대의 디지털 감시를 물리치고 약화하는 것이다. 회피나 불복종, 노골적 거부나 계획적 방해를 목적으로 하는 기존의 저항 수단, 그리고 새로 등장하는 여러 저항 수단과 더불어, 그 밖의 다른 개념과 기술을 추가로 적용하고 이를 '우리 스스로가 정한' 이용 약관에 따라 사용할 것이다.
상대가 누구인지에 따라, 또는 목표나 자원에 따라, 감시망 밖으로 사라지기, 시간 벌기, 분석 불가능하게 하기, 감시에 대한 조롱 행위로서의 불복종, 집단적 저항, 크고 작음을 막론하고 부정을 바로잡기 위한 개별적 행동 등을 실행할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하고자 한다.
이미 확립된 기존 사례들과 새로 등장하고 있는 사례들을 모두 포함하는 전체적인 밑그림을 그려보고, 그 모든 경우에 공통으로 적용될 수 있는 접근법을 도출한 다음, 이를 일반화해 정책, 소프트웨어, 행동으로 구체화할 수 있는지 살펴볼 것이다. 이 밑그림은 우리의 거대한, 그러나 작은 혁명의 시도들을 뒷받침하는 기치며, 이 밑그림이 정의하는 것이 바로 '난독화'다.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난독화는 '감시나 데이터 수집을 방해하기 위해 모호하거나 헷갈리거나 호도하는 정보를 고의로 섞어 넣는 것'이다. 개념은 간단하나 그 적용과 사용은 여러 가지로 다양하고 복잡하다.
만약 소프트웨어 개발자나 디자이너로서 소셜 네트워킹이나 위치 정보 서비스 등 사용자의 개인정보 수집 및 사용이 필요한 서비스를 만드는 경우, 소프트웨어에 난독화를 도입하면 사용자의 데이터를 외부로부터 뿐만 아니라 소프트웨어를 개발한 개발사, 심지어 그 스타트업이 다른 회사에 인수되는 경우에도 안전하게 지킬 수 있다. 정부 기관에서도 난독화를 이용하면 데이터 수집의 여러 목적은 달성하면서도 데이터 남용 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다.
또 현대 사회에 만연한 디지털 감시, 그리고 그에 따른 분석의 대상이 되고 싶지 않은 개인이나 집단에게도 난독화는 감시를 방해하고, 시간을 벌고, 수많은 신호들 속으로 숨어버릴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을 제공한다. 이 책이 바로 그 출발점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