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에서 나는 선생으로 살아온 내 경험과 선생으로 살고자 하는 나의 지향이 한 흐름 선상에 있음을 말하고자 할 것이다. 또한, 남은 인생을 선생으로 살아내기 위한 성찰과 다짐을 담아내고자 할 것이다. 따지고 보면 내가 물었던 선생의 정체성은 한국 현대사와 평행하거나 혹은 약간씩 미래적 가치와 전망을 따라가고 있다. 1977년 보육원 아이들을 대상으로 야학 활동을 하던 시절에는 기독교 신앙에 입각한 인도주의적 교육에 관심을 가졌고, 1983년부터 1986년까지 3년간은 고등공민학교 교사로서 니힐의 ‘섬머 힐’ 교육사상에 심취해 자유교육에 몰입하였으며, 그 이후 서울 중앙고등학교 교사 시절에는 파울로 프레이리 등과 마르크시즘에 입각한 해방교육에 관심을 가졌다. 또한,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전반기까지는 대안교육과 생태교육에 관심을 집중하였고, 2007년을 기점으로 그 이후로는 지혜교육을 묻고 살아왔다. 지금은 뇌과학에 기반한 치유교육과 영성교육에 관심이 가 있는 상태인데, 그것들은 선생으로서의 내 정체성 그리고 시대적 과제와 요구에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선생이 꼭 제자들보다 뛰어날 필요는 없다. 선생의 기쁨은 제자들이 선생을 극복하고 더 앞선 세계로 나아가는 것을 보는 데 있다. 성서에 의하면 세례자 요한은 예수의 길잡이가 된 것만으로도 감격스러워한다. 전문적 영역에서도 마찬가지다. 돌이켜보면 세상에는 선생이 많았다. 아니, 모든 것이 선생일 수 있었다. 다만 그것을 알아보는 눈이 부족했을 뿐이다. 자신만 눈을 뜨면 모든 것이 선생인 것을!
이 책을 쓰면서 내가 내게 던진 가장 곤혹스러운 질문은 ‘서이초등학교’ 교사의 자살 등 (학부모나 학생들에 의한) 수많은 교사 인권유린 참사가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되고 있는 지금, ‘과연 내 이야기가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다행히 내가 선생 노릇을 했던 현장 거의 대부분은 광의의 대안교육 분야 쪽이어서 선생의 권위가 비교적 잘 보장된 곳들이었다. 덕분에 내 가치관에 따른 선생 노릇을 비교적 자유롭게 할 수 있었고, 거기에 부합하는 내 선생관을 쓰는 것에 하등 문제가 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내 교육 경력이 말해주듯이 이 책은 꼭 제도권 학교 선생들만 을 염두에 두고 쓴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선생 노릇을 할 위치나 상황에 처한 사람 모두를 염두에 두고 쓴 것이기 때문에 제도권 교육현장에서 벌어지는 비극적 상황을 넘어설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원칙적으로 교육현장은 선생과 학생 그리고 학부모가 적대적 관계가 아니라 협력관계를 맺는 것이 정상이라고 나는 믿는다. 그러한 신념에 따라 내 작은 소망은 진보적 교육을 지향하는 학교 교사, 아이들을 지극히 사랑하는 학교 안팎의 선생, 대안학교 선생, 그중에서도 특히 비인가 대안학교 선생, 교육 발전을 희망하는 학부모, 사회 진화를 위해 헌신하는 활동가들에게 작은 의미가 되었으면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