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댜예프에게 인간이란 “개인”이다. 즉, 자연적 힘, 신화적 힘, 사회정치적 힘과 같은 온갖 힘이 빚은 일체의 속박에서 벗어난 개인, 세계를 객관화하려는 힘에서 이탈한 개인, 세계를 객관적 현실에 고정시키고 주체의 자유를 배제하려는 권력에서 해방된 개인이다. 그가 희망을 건 개인은 독립성과 자주성을 갖고 자기 사유를 할 줄 아는 정신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과학기술의료’를 숙명으로 여기고, 그에 의존하며, 나아가 이를 굳게 믿는 신앙의 영역으로 승화시키려는 시류를 판별할 줄 아는 주체, 각종 선전과 선동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 주체, 인격체로서 진정한 자유의 가치를 실천하는 주체에게 베르댜예프는 여전히 희망을 건다. 그리고 그러한 주체들이 우뚝 서는 해방의 나라야말로 이 땅에 구현될 진정한 ‘신의 나라’일 것이다. - 옮긴이 서문
오직 신의 주권과 통치만을 주장한 개혁자의 격문
뮌처의 신학을 지탱하는 두 기둥은 “성서 해석”과 “성령의 교통”이다. 그는 죽어 박제된 문자로서의 말씀이 아닌, 가난한 민중 가운데 살아 역사하는 말씀을 가르쳤다. 그랬던 그가 모범으로 삼았던 시대는 옛사도 시대의 교회였다. 그는 자기 시대도 그러한 교회가 도래하기를 바랐다. 따라서 그의 시대 비판은 철두철미했으며, 추구했던 대안은 이상적이었다.
뮌처는 당대에 불가능해 보였던 꿈을 실현하려 했다. 그러한 시도는 제도권의 원칙과 갈등을 빚었고, 현실에 부합하지 못했다. 꿈은 좌절됐고, 숨은 끊어졌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살아있으며, 또 계속 부활할 것이다. 무엇보다, 보잘것없는 사람들의 편에 서서, 그들의 존엄성을 위해 싸웠고, 그들에게 성서를 살아있는 말씀으로 전했으며, 권력의 비위를 맞추는 옛 동료와 스승에 맞섰다.
『프라하 선언』은 뮌처의 이러한 여정을 드러낸 첫 작품이다. 달콤한 그리스도보다 쓰디쓴 그리스도를 따르기 원했던 한 신자의 짧은 글이 그의 사망 500년을 바라보는 현 시점에, 이역만리 한국의 신학 독자들에게도 울림을 줄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