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소설집이다.
오래 기다렸다는 점에서 이 ‘첫’은 애틋하고 각별하다.
책을 낼 때마다 그 소설을 쓰던 순간을 돌아보는 버릇이 있다.
등단 후 지금까지 다양한 무늬의 시간들을 지나왔다. 미숙한 실력으로 쓰고 싶은 마음을 따라다니느라 허둥댔지만, 어떤 순간에도 소설 쓰는 재미는 잃지 않았다. 그게 얼마나 큰 행운이었는지 이제야 알 것 같다.
여기에 싣지 못한 두편의 소설이 있다. 그 글들이 지닌 부족함을 잊지 않겠다.
그리고 앞으로도 쓰는 일의 즐거움을 잃지 않겠다.
휘청거릴 때마다 중심을 잃지 않도록 붙잡아주신 하나님께,
내가 나답게 살 수 있도록 도와주고 지지해준 옆 사람에게,
책이 묶일 때까지 기다려주고 격려해준 창비 분들에게,
이름을 기억하고 책을 읽어주는 모든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2012년 가을
소설집에 실릴 원고들을 퇴고하는 동안 가장 많이 생각한 건 ‘처음의 마음’이었다.
첫 책을 내는 것만 같은 마음과 이 책으로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다는 마음을 테이블 위에 올려둔 뒤 오래 들여다보았다.
(……)
지치고 막막할 때마다 눈을 감고 기도했다.
하나님. 지혜를 주세요. 잘 쓰고 싶어요.
더디게 주심에 감사드린다.
나는 여기서부터 다시 쓸 수 있을 것 같다.
우주에서 창백한 푸른 점인 지구를 바라보듯,
카페 제이니의 창가에 앉아 궤도를 수정하는 노경주의 삶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삶이 지속된다는 것은
무언가를 천천히 잃어가는 일이기도 하다는 걸.
그걸 알아가는 게 슬프기만 한 건 아니라는 얘기도 나누고 싶었다.
노경주가 불 꺼진 제이니의 문 앞에 서 있는 마지막 장면을 오래 생각했다.
소설이 알지 못하고 닿을 수 없는 사람을 향해 간절해지는 마음을 전하는 일이라면,
뭐라고 써야 할지 몰라 펜을 든 채 우두커니 서 있는 사람의 심정으로
이 소설을 썼다.
소설 속 인물들이 자신이 속한 공간에서 그곳 너머 어딘가를 응시하는 장면을 좋아한다. 소설은 고통 속에서 가만히 응시하는 자들의 것이라고 생각하고 소설의 순간은 그 잠깐의 멈춤과 응시에서 발생한다고 믿는다. 그 바라봄을 통해 인물들은 못 보던 것을 보거나 모르던 것을 알게 되고 안다고 여겼던 것들이 진짜가 아님을 깨닫게 된다. 비밀을 알게 된 뒤 돌아서기도 하는 것이다. 그 바라보는 시선, 마음이 이야기가 되고 문장이 되는 순간을 좋아한다. (중략) 이 소설집 속의 인물들이 각자의 변화를 겪은 뒤에 어떤 장면에 도달하게 될지 알 수 없지만 그 밤을 지나는 것만으로도 희망이 있다고 말해 주고 싶다. 그런 밤을 지나온 사람들이 이 소설을 읽으며 잠시나마 연대의 감각을 느끼고 작은 빛을 바라보며 애쓰고 있다는 격려를 주고받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용기는 또 다른 용기를 불러온다.
돌이켜보면 우리는 정말 용감했다. 물론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같은 결정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언제라도 다시 그런 시간에 몸을 던질 각오가 되어 있다.
문을 열고 나니 또 하나의 문이 보인다.
아마 걸어나가는 동안 열어야 할 문들은 계속 나타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