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와는 달리 ‘극(劇)’이라는 글자는 제가 생각하고 있던 삶과 세계에 대한 관점을 함축하고 있는 듯 보였습니다. 호랑이와 돼지와 칼. 칼은 곧 칼을 든 인간이겠지요. 이 세 존재가 어딘가에서 만나 마주서서 서로를 노려봅니다. 이 만남은 아슬아슬하고 버겁습니다. 언제든지 흩어져 버릴 수 있는 만남, 마주침입니다. 이 상태는 필연적이거나 영원한 것이 아니며, 오히려 일시적이며 순간적, 상대적인 것입니다. ‘극’이라는 글자는 이렇게 우연한 마주침의 순간을 포착합니다. 이 순간에 각각의 존재는 자신들의 온 존재를 다해 '갈등’하며 서로를 드러냅니다. 저는 이 점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요, 처음에 말씀드렸듯 본디 ‘극(劇)’은 우리 삶에 있어 가능한 한 회피해야 할 부정적인 상태를 가리킵니다. 그것은 조화롭고 원만한 어떤 상태에서는 쉽게 드러나지 않는 삶과 세계의 어떤 국면을 ‘드러내기’ 위해 사용하는 일종의 ‘시험대’. 하나의 방편일 뿐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렇게 저는 ‘드라마’를 싫어하면서 ‘드라마’를 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