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디자인을 논할 수 있는 용어가 있어야만 게임을 디자인하는 능력도 손에 넣을 수 있다"고 1부의 저자 애나 앤스로피는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용어'는 마케팅에 쓰이는 빈약한 용어나 게임에 대한 이해를 단순화하고 창의적 사고를 제약하는 용어가 아닌 게임 디자인의 본질에 접근할 수 있는 용어다. 여기서 말하는 '게임'은 막대한 자본과 수많은 인력을 동원해 제작하는 대작 게임이라기보다는 인디 정신으로 승부하는 인디게임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말하는 '게임을 디자인하는 능력'은 소수의 천재에게만 허락된 것이 아니라 게임을 만들고 싶은(혹은 누구나 게임을 만들어도 된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야 게임을 만들고 싶어진) 모든 보통 사람에게 허락된 것이다.
유명한 인디게임 개발자인 애나 앤스로피는 기본적인 도구만 이해한다면 누구나 게임 개발자가 될 수 있고 누구나 게임 평론가가 될 수 있다고 외친다. 게임 회사에 취직하거나 억대 자본을 유치하지 못하더라도 누구나 자신만의 생각을 표현하는 게임을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한다. 오히려 타성에 젖지 않은 참신한 게임이 나올 거라고 구슬린다. 참 대담하고 급진적인 주장이다. 이 책의 첫 번째 미덕은 이처럼 게임을 둘러싼 신비주의를 벗기는 데 기여한다는 점이다.
애나 앤스로피는 게임 디자인 담론을 활성화하면 많은 사람이 이득을 볼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 담론을 활성화하는 데 가장 절실히 필요한 것이 어휘의 정립이라고 본다. '호르몬 대체 요법에 관한 실제 경험을 다룬 게임처럼 다양한 게임을 아우를 수 있는 어휘'가 있다면 훨씬 더 다양한 게임이 나올 거라고 본다. 그러한 어휘를 통해 게임을 더 밀도 있게 분석할 수 있다면 '오래전에 해결된 문제를 붙들고 씨름'하지 않아도 되는 만큼 좀 더 멋진 게임을 디자인할 수 있고 게임에 대한 의미 있는 평론을 할 수 있다고 본다. 이 책의 두 번째 미덕은 이처럼 게임이라는 표현 형식에 숨겨진 기본 원리를 꿰뚫을 수 있는 어휘를 정립하려고 노력했다는 점이다. 그것도 아주 평이한 용어로 말이다.
역시 인디게임 개발자인 2부의 저자 나오미 클라크는 1부에서 개념화한 게임의 어휘들을 결합하면 어떤 종류의 이야기가 전달될 수 있는지를 좀 더 방법론적으로 파고든다. 이 책의 세 번째 미덕은 게임이라는 표현 체계가 가진 고유한 방법으로 이야기(컷신이나 장황한 설명문이 아닌 진짜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음을 충분히 깨닫게 해준다는 점이다. 게임을 통해 하고자 하는 말을 플레이어가 잘 듣게 할 것인가? 아니면 플레이어가 그들만의 표현을 마음껏 펼치게 할 것인가? 혹은 두 가지가 적절한 수준에서 균형을 이루게 할 것인가? 나오미 클라크는 어느 쪽이 옳다, 혹은 더 좋다고 딱 떨어지는 결론을 내리지는 않는다. "아직 개척되지 않은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공간을 탐험하는 일이 아주 흥미롭다"며 모험심을 자극하고 가능성을 열어둘 뿐이다.
저자들이 이 책에서 소개한 게임은 무려 100개가 넘는다. 본문에 다 담지 못한 게임 20개는 따로 모아 부록으로 실었을 정도다. 사례를 들어 개념을 구체적으로 보여주고자 한 노력이 엿보인다. 역자로서 게임을 글로만 이해하고 표현하는 일은 당연히 어려웠다. 그래서 번역하는 시간 외에 게임을 플레이해보는 시간도 만만치 않게 필요했다. 물론 그 시간은 충분한 투자 가치가 있었다. 책의 내용도 더 잘 이해할 수 있었고 무엇보다 즐거웠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시간이 걸리더라도 게임을 하나하나 플레이해보면서 읽기를 적극 권한다.
나오미 클라크의 말마따나 "지금처럼 개발자와 플레이어들이 '게임이라는' 표현 체계를 온갖 새로운 방법으로 탐색하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 우리의 모든 생각을 이야기하고 음미할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다." 아무쪼록 이 책이 저자들의 원대한 꿈처럼 게임을 둘러싼 기존 통념을 과감히 뒤엎는 데 일조해,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참신하게 표현하는 게임들이 폭발적으로 쏟아지게 하는 촉매제 역할을 하기를 기대한다.
오타쿠를 바라보는 시각은 다양하고 아직도 변하고 있으므로 딱히 한 가지로 정의하기는 어렵겠지만, 특정 분야에 대한 전문성이 팬이나 마니아 수준을 넘어 문화 생산자를 뺨칠 정도로 뛰어난 사람으로 정의한다면 이 책을 쓴 저자는 분명 오타쿠다. 그리고 자신의 취향을 유감없이 드러낸 그의 소설 데뷔작은 아주 성공적이었다.
저자 어니스트 클라인은 원래 시나리오 작가였다. 스타워즈 팬들의 이야기를 다룬 컬트영화 「팬보이즈(Fanboys)」(2009)가 그의 시나리오로 영화화된 작품이었다. 영화로 제작되는 과정에서 자신의 창작물에 변형이 가해지는 것이 못내 아쉬웠던 클라인은 소설을 써보기로 마음먹었다. 소설이라면 마음껏 자신의 취향을 드러낼 수 있으리라 생각해서였다. 그는 문득 「찰리와 초콜릿 공장」의 윌리 웡카가 게임 디자이너였다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에 휩싸였다. 윌리 웡카가 사탕에 집착한 사탕회사 사장이 아닌 대중문화에 집착한 게임 디자이너였다면 어땠을까? 자신이 개발한 비디오게임 속에 황금 티켓을 숨기지 않았을까? 여기서부터 뭉게뭉게 피어오른 영감은 지상 최대의 게임 대회라는 뼈대를 달고 1980년대 대중문화에 대한 해박한 지식으로 살이 입혀져 화려한 SF 어드벤처 소설로 태어났다. 제목은 'Ready Player One'이라고 붙였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게임으로 주저 없이 손꼽은 <블랙 타이거>에서 오마주한 문구였다. 소설 데뷔작의 출간 후 반응은 자신의 기대 이상으로 뜨거웠다.
그 반응에 힘입어 책 홍보에 활용한다는 기가 막힌 명분을 생각해낸 클라인은 영화 「백 투 더 퓨처」에 나온 타임머신카 드로리안 DMC-12를 장만함으로써 그의 어릴 적 꿈을 현실로 바꿨다. (그것도 마케팅 비용으로!!) 그리고 그 차를 파르지발의 드로리안처럼 '시간 여행이 가능하고, 유령을 소탕하며, 키트처럼 스캔하고, 물질을 통과하는' 드로리안으로 개조했다. 세상에서 가장 오타쿠적인 자동차를 뽑는다면 1위 자리를 꿰찰 만한 자동차가 아닐 수 없다. 이렇게 개조한 차를 직접 몰고 전국의 북 투어 행사장을 누볐으며 가는 곳마다 드로리안에 타보고 인증샷을 찍으려고 몰려드는 수많은 팬들을 결코 마다하지 않았다. 심지어 책 속에 나오는 이스터에그 찾기 대회를 오프라인에서 개최하기도 했다. (다만 전 재산 대신 개조한 드로리안 DMC-12를 내걸었다!!)
이렇듯 저자의 삶은 SF나 게임과 경계가 모호하다. 그는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자신의 열정을 세상과 공유하기를 꿈꾸는 사람이다. 이 책의 단초를 제공하는 제임스 할리데이의 모습이 선연히 겹쳐지는 대목이다.
이 작품에는 독특한 설정이 깔려 있다. 2045년을 시대 배경으로 햅틱 장치를 통해 완벽하게 사실적인 촉각 체험이 가능할 정도로 기술이 발달했지만 전 인류가 가상현실로 도피해야 할 정도로 암울하기만 한 미래상을 예증하는 한편, 1980년대의 SF물과 만화, 고전 게임들을 다채롭게 선보인다. 상상과 추억을 넘나드는 이 짜릿한 롤러코스터야말로 이 책이 선사하는 가장 큰 묘미인 듯싶다.
첫 번째 장만 읽어도 소설의 전체 줄거리가 무엇인지, 누가 세 개의 열쇠와 세 개의 관문을 찾아 우승자가 될지는 충분히 예측 가능하다. 하지만 첫 번째 장은 호기심을 자아내기에 충분한 역할을 하고 있으며 뒤로 갈수록 속도감 있게 전개되는 이야기는 쉴 틈 없이 책장을 넘기게 만든다. 1980년대 대중문화, SF, 게임에 친숙한 독자라면 좀 더 많은 의미를 읽어낼 수도 있겠지만, 이 묘한 소설은 (같은 장르임에도, 흥행이 그리 어렵지 않은 SF영화와는 지극히 딴판으로 고전 중인) SF소설의 진입 장벽이 높다는 세간의 편견은 허상이라는 듯 1980년대 대중문화, SF, 게임에 친숙하지 않은 독자에게도 오락성 짙은 일반 소설로 다가갈 수 있는 책이다.
이 책을 옮기면서 나 역시 반강제적으로 참가자가 되어 1980년대 대중문화들을 집어삼킬 듯이 탐독해야 했다. 그중에는 국내에도 잘 알려진 인기작도 많았지만,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숨은 명작도 있었다. 추억의 작품은 추억의 작품대로 다시금, 숨은 명작은 숨은 명작대로 새롭게 음미해보는 일은 충만한 문화적 자극이었다. 서사를 이끌어가는 굵직한 작품을 제외하고도, 이 작품에는 곳곳에 다양한 작품이 녹아 있다. 셈법에 따라 달라지긴 하겠지만, 얼추 200개는 족히 넘을 듯한 작품 설명을 달자면 과잉 친절이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앞서, 고심 끝에 역주는 과감히 생략했음을 밝혀둔다.
하지만 이 자리를 빌려 몇 가지만 슬쩍 투척해보자면, 주인공의 이름은 '웨이드 오웬 와츠Wade Owen Watts'다. 가장 오타쿠적인 소설 속에서 가장 오타쿠적인 이스터에그 찾기 대회에서 우승하는 가장 오타쿠적인 영웅의 이름으로 'W-O-W'를 능가할 만한 이름이 또 있을까? 주인공의 아파트는 42층이고, 주인공의 두 번째 가명은 해리 터틀이다. 각각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와 「여인의 음모」와 관련이 있다. 에이치의 채팅방 벽에 붙은 포스터는 「제다이의 귀환」이 아닌 「제다이의 복수」다. 그야말로 어느 이름 하나 허투루 지은 것이 없다.
더 알고 싶다면 구글에서 'ready player one references'로 검색하면 많은 정보를 찾을 수 있다. 몇 개만 소개하자면 http://www.imdb.com/list/ls075756472에서는 책 속에 인용된 영화와 드라마 정보를 포스터와 함께 확인할 수 있다. http://www.shmoop.com/ready-player-one/allusions.html에서도 책 속에 인용된 영화, 드라마, 만화, 게임 등의 출처를 확인할 수 있다. 각종 팬 사이트를 탐방해봐도 좋다.
『레디 플레이어 투』는, 어니스트 클라인이 2011년에 발표한 소설 데뷔작으로 국내에는 2015년에 번역 출간되었던 『레디 플레이어 원』의 속편이다. 1980년대 대중문화에 대한 향수와 오마주로 가득 찬 『레디 플레이어 원』은 미국에서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큰 사랑을 받았으며, 2018년에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손끝에서 보는 즐거움이 가득한 영화로 재탄생하기도 했다. 1980년대 대중문화에 바치는 헌사 같은 작품에 스필버그만큼 적격인 영화감독은 또 없었을 것이다. 스필버그는 오락 영화의 거장다운 압도적인 연출력으로 그 믿음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했다. 영화는 소설의 중심 줄거리만 유지했을 뿐 더 많은 세대를 아우를 수 있도록 1980년대만이 아닌 좀 더 폭넓은 대중문화를 차용했는데, 다채로운 비중으로 숨어 있는 각종 레퍼런스와 카메오를 찾아내는 재미에 관객들 사이에서 N차 관람 열풍이 불기도 했다. 영화를 본 후에 원작 소설을 비교하며 읽는 재미도 빠뜨릴 수 없는 재미였다.
소설 속 가상현실 세계인 오아시스는 영화 속에서 화려한 영상미로 구현되었다. 메타버스를 이해하고 싶으면 이 영화를 보라는 말이 생겼을 정도로 오아시스는 메타버스의 대명사 격이 되었다. 단지 상상 속 이야기가 아니다. 오아시스는 곧 현실로 다가올 예정이다. 2024년 1월 초, 클라인은 영화 제작자 댄 파라와 함께 인공지능 및 메타버스 기술·콘텐츠 기업인 퓨처버스(Futureverse)와 손을 잡고 레디버스 스튜디오(Readyverse Studios)를 공동 설립했으며, 올해 안에 웹3 기반의 메타버스 플랫폼인 ‘레디버스(The Readyverse)’를 출시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레디버스에는 과연 어떤 프랜차이즈와 캐릭터가 등장할지, 어떤 체험으로 우리를 즐겁게 해줄지 한껏 기대가 부푼다.
영화화까지 되면서 흥행에 크게 성공한 작품의 속편을 쓸 때 부담감이 없었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속편은 애초부터 전편과 비교당할 숙명을 안고 태어나니 말이다. 많은 속편에 가혹한 평가가 따르는 것은 기정사실 아니던가. 클라인은 2017년부터 약 3년에 걸쳐 『레디 플레이어 투』를 집필하며 큰 부담감에 시달렸음을 고백했다. 클라인이 전편을 집필할 당시만 해도 VR 기기는 태동기에 불과했지만 소설이 나온 직후 VR 기기는 급속도로 발달했다. 『레디 플레이어 투』를 집필할 당시에는 이미 VR 기기는 물론 다양한 햅틱 장비들까지 상용화된 시점이었기에 20~25년 후 발달할 미래 기술을 상상했고 마침내 현실과 가상현실의 경계가 완전히 허물어져 더 이상 둘을 구분할 수 없는 경지에 이르는 궁극의 기술을 등장시켰다. 바로 오엔아이 헤드셋이다. 작중에서 세계 최초의 비침습적 뇌-컴퓨터 인터페이스로 설정된 이 헤드셋을 통해 오아시스에 접속하면 착용자는 아바타가 경험하는 가상환경을 대뇌피질로 직접 주고받는 신호를 통해 오감으로 현실처럼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또 이 헤드셋만 있으면 착용자가 물리적 현실에서 한 경험을 저장하고 가상현실에서 그대로 재현할 수도 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마인드 업로딩과 디지털 영생은 한층 더 흥미로운 서사를 선보인다. 이렇듯 한층 진일보한 메타버스의 세계로 초대해 준 그에게 당당히 합격점을 주고 싶다.
디스토피아적 근미래를 기반으로 상상력을 펼치는 클라인에게 기술의 양면성은 중요한 화두인데, 『레디 플레이어 투』에서는 기술의 양면성이 한층 더 중요한 서사로 등장한다. 기술의 양면성을 놓고 주인공들 사이에서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상상을 초월하는 존재의 부정한 욕심으로 인해 가상현실과 물리적 현실 양쪽 모두에서 끔찍한 일이 벌어진다. ‘전편의 매력은 유지하되 자극의 강도는 높여라.’라는 속편의 승부 전략을 따르기 위해 고민한 흔적이 엿보인다.
물론 전편의 매력 요소가 추억을 소환하는 다양한 대중문화 레퍼런스였던 만큼 『레디 플레이어 투』에서도 레퍼런스의 향연은 빠지지 않았다. 영광스럽게도 『레디 플레이어 투』의 번역을 의뢰받았을 때 이번에는 과연 어떤 레퍼런스들이 등장할지가 가장 궁금했다. 독자로서는 설렘이 컸고 역자로서는 두려움이 컸다.
『레디 플레이어 투』는 주인공 웨이드 와츠가 할리데이의 첫 번째 이스터에그 찾기 대회에서 우승을 거머쥐고 할리데이의 상속자로 지명된 후 9일째 되는 날의 이야기부터 전개된다. 할리데이는 또 한 번 세상을 뒤흔들 엄청난 기술을 그만의 오타쿠적인 방식으로 웨이드에게 공개한다. 웨이드와 친구들은 또 한 번 할리데이가 설계해 놓은 퀘스트를 수행해야 한다. 기술적으로는 할리데이가 만들었지만, 수수께끼를 풀기 위한 단서는 모두 키라와 관련이 있다. 키라는 할리데이와 모로의 관계에서는 물론 오아시스 개발 과정에서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로 전편에 비해 비중이 크게 늘어났다. 클라인은 전편을 집필할 때는 할리데이의 관심사인 척 본인의 관심사를 대놓고 마음껏 집어넣었지만, 『레디 플레이어 투』를 집필할 때는 본인의 ‘안전지대’를 벗어나기 위해 열심히 ‘덕질’을 했다고 밝혔다. 그 결과 존 휴즈의 영화, 프린스의 음악, 톨킨의 소설이 아주 큰 비중으로 다루어졌다. 이 작품들을 제대로 감상해 볼 기회가 없었다면 이번 기회에 이 작품 들을 먼저 ‘덕질’한 후에 이 책을 읽어도 좋을 것이다. 이 책을 먼저 읽었더라도 상관은 없다. ‘덕질’을 꼭 어떤 순서대로 하라는 법은 없으니까. 또 하나, 놀란 소렌토의 프리퀄이 궁금하다면 『마션』(알에이치코리아(RHK), 2021)의 저자 앤디 위어가 쓴 팬픽인 『Lacero』를 읽어보기 바란다. 짧지만 소렌토의 서사를 보완해 주는 이 팬픽은 클라인으로부터 공식 설정으로 인정받아 일부 개정판 원서에 실리기도 했다.
클라인은 레디버스 출시 계획을 발표하며 “미래는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빨리 다가왔다.”고 말했다. 나는 그것이 “조금은 클라인 당신 덕분”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클라인은 누가 보아도 ‘덕후’가 세상을 바꾼다는 말을 몸소 증명하고 있는 한 사람이니까. 더불어 올해 4월에는 첫 아동 소설 『Bridge to Bat City』를 출간 예정이라고 한다. 박쥐 이야기라니 벌써부터 궁금하다.
빅데이터의 물결이 전 세계에 출렁이고 있다. 지금까지 다뤄왔던 데이터와는 차원이 다른 엄청난 규모의 데이터를 빅데이터라고 부른다. 빅데이터는 신기술에 대한 과도한 열망이 부풀린 또 하나의 거품이 될 것인가, 아니면 그동안 많은 실망을 안겨준 신기술들과는 달리 데이터 분석 영역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을 또 하나의 동력이 될 것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빅데이터는 충분히 후자가 될 수 있다. 다만 이를 동력으로 삼기 위해서는 조직의 거의 모든 것을 바꿔야 한다. 분석 역량을 제대로 갖춘 조직만이 빅데이터의 가치를 극대화할 수 있다는 얘기다.
데이터에 가치가 있다는 깨달음은 오래 전부터 있었지만, 지금도 많은 조직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의사결정 문화를 뿌리내리지 못했다. 저자는 '체리피킹(Cherry picking, 좋은 결과만 골라 취하는 행위)'을 하면서 데이터 분석을 조직 내 의사결정에 활용하고 있다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고 잘라 말한다. 새로운 데이터에는 물론 무한한 잠재력이 숨어 있지만, 이 새로운 데이터를 어떻게 활용하는가가 훨씬 더 중요하다는 핵심 명제는 빅데이터 시대에도, 아니 오히려 빅데이터 시대에는 더더욱 중요해진다는 것이 저자의 핵심 주장이다.
저자는 빅데이터에 숨겨진 비즈니스 통찰력에 대해 낙관적인 시선으로 다양한 미래상을 제시해주고 있지만, 지나치게 시작을 망설이거나 단편적으로 인식하거나 초점을 엉뚱하게 짚을 경우 빅데이터 경쟁에서 바로 도태될 수 있음을 경고한다. 다양한 빅데이터 소스가 출현한다고 해서 무한한 가능성이 바로 열리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하듯, 조직은 빅데이터를 다루기 위한 도구와 프로세스와 기법을 갖춰야 한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이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빅데이터를 다루기 위한 적합한 인재와 조직구조, 그리고 혁신과 발견을 창조하는 조직 문화를 갖추는 일이다.
이처럼 저자는 빅데이터라는 주제를 기술적인 측면에서만 접근한 것이 아니라 비즈니스 맥락과 조직 측면까지 아우르는 큰 그림을 선보인다. 더불어 테라데이타의 최고분석책임자로서 오랜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뜬구름 잡는 듯한 이론보다는 빅데이터 활용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어디에 가장 중점을 두어야 할지, 피해야 할 함정이나 조직에서 부닥칠 문제는 무엇인지 등을 실무적인 관점에서 풀어놓았다.
기술적인 내용을 쉽게 풀어쓰는 글쓰기 능력은 아마 모든 저자들의 꿈일 테다. 그만큼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자는 이 꿈을 어느 정도는 이룬 듯하다. 이 책을 읽는 독자가 데이터 과학자나 개발자라면 비즈니스 감각과 조직 문화 측면에서 영감을 받을 수 있을 것이요, 경영자나 현업 담당자, 혹은 빅데이터에 관심이 많은 일반 독자라면 빅데이터에서 끌어낼 수 있는 비즈니스 통찰력과 더불어 빅데이터 관련 기술에 대한 기본 상식도 쌓을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