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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국내저자 > 에세이

이름:윤형두

성별:남성

국적:아시아 > 대한민국

출생:1935년, 일본 고베

최근작
2022년 5월 <한 출판인의 사초 (1982~1986)>

책의 길, 소원의 길

일제 강점기지만 일본글을 알면서부터 책을 알게 되었고,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부터 많은 책을 갖고 싶어졌다. 만화책부터 동화책들을 사모아 놓고, 읽고 싶은 책을 이것저것 읽었다. 그러면서 책을 한없이 소유하고 싶었고, 읽고 싶은 책을 마음껏 읽는 것이 바라는 꿈이었고 소망이었다. 학교 교과서부터 대본점에서 빌려보는 책을 읽으면서 학창시절을 보냈다. 대학에 들어가서는 고학을 하느라 잡지사 견습기자가 되어 책을 만드는데 교정을 보고 제작을 배우고 책을 읽는 것을 권하는 영업도 하고 한때는 고서점 점원도 하였다. 책과 더불어 시간과 세월을 보내며 살아온 것이다. 나는 책으로 세상을 바로잡고 싶었다. 독일이 레클람문고를 비롯한 책을 앞세워 통일을 이뤘듯이 우리나라도 단일민족으로 단일 언어인 한글을 기본으로 통일을 이룩해보겠다는 소망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사무실 나의 자리에 가장 가까운 곳에 출판입국(出版立國 ; 출판으로 나라를 세운다)이라는 액자와 독민제세(讀民濟世 ; 글 읽는 백성이 세상을 이끈다)라는 액자들을 걸어놓고 책과 더불어 한 평생을 살아가야겠다는 다짐을 하고 있다. 나는 그 바람 속에서 지금도 책의 길, 출판의 길을 걸어가며 출판과 관계되는 일을 즐겁게 하고 있다. 그 길이 나의 소원의 길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훌륭한 출판사를 갖고 책을 만드는 것이 나의 소원이요, 귀한 우리 고전을 찾아내서 그것을 갖고 자랑하는 것이 나의 소원이며, 또한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어울려 담소하고 앞으로도 그런 시간이 이어지기를 바라는 것이 나의 소원이다. 그 많은 책을 읽은 것 중에 내가 살아가는데 참다운 도리(道理)를 계시한 글은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는 윤동주 시인의 서시(序詩)이다. 또한 출판인으로서 살아가면서 마음 속 깊이 새겨놓은 좌표가 있다면, 백범 김구 선생이 쓰신 《백범일지》 속의 ‘나의 소원’이라 할 수 있다. 나의 소원은 늘 책 속에 있다. 그 소원을 하나하나 이룩해보고 싶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 그 문화의 바탕이며 근원이 되는 것이 출판이다. 나는 출판의 길 책의 길을 걸어오면서 나의 소원을 이룩하고 있다. 그 길을 걸어오면서 느끼고 또 말하고 써야 할 일들 중에서 남겨진 글들을 여기에 모아 보았다. 이것은 출판과 책을 아끼고 사랑한다는 다짐의 증표이며 상징이다. 한 권의 책이 사람의 운명을 바꾸며 사회를 정화하고 통일 국가를 이룩하여 선진국가의 문화인이 되겠다는 나의 신념과 소망이며 걸어온 길이요 걸어갈 길이다. - 2020년 독서의 계절을 맞으며 - 책머리에

한 출판인의 사초 (1987~1990)

그동안 살아오면서 남겨놓은 낙수(落穗)들을 모아 1991년부터 1997년까지의 사초(私草)를 《한 출판인의 사초》라고 3권으로 묶어 발행하였다. 한 권 한 권 단행본으로 엮을 때마다 이런 책을 내어야 하는가 하고 주저주저하면서도 70여 년 이상 써놓은 글들을 버리기가 아까워 다시 만용을 부리는 것이다. 이번에도 문학과지성사의 대표이자 문학평론가인 김병익 선생이 《문학과 문학》이라는 잡지의 특집대담에서 “요즘 문학작품보다는 전기나 자서전을 많이 읽게 된다면서 거기에서 보이는 사람살이의 정경을 재음미하고 특히 자서전에서 보이는 자기성찰이랄지 고백의 진정성이랄지 하는 것들을 반추할 때 인생의 심연에 다가서는 느낌이 든다”는 글이 머뭇거림에서 실행으로의 용기를 주었다. 그 동안에 월간 《책과인생》에 사초를 연재할 때 내가 살아온 기억 속에 떠오른 옛 친구들의 이야기를 사진이나 연하장이나 편지와 함께 게재한 것을 보고 반갑게 글월을 보내거나 전화가 올 때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또한 허영자 교수님의 〈시 쓰는 말〉 중에서 “시 쓰기라는 작업을 통해서 나는 상처를 치유하고 위안을 얻고 다소의 자기 정화를 도모할 수 있습니다. 바라건대 이러한 시 쓰기가 나의 존재를 확인하는 증표가 되고 시를 읽어주는 세상의 어느 친구에게도 작은 위로가 되었으면 하는 것이 나의 시 쓰는 마음”이라는 글은 내가 글을 쓰는 마음과 같다. 나는 지난날에 써놓은 잡록이나 잡기(雜記)를 되돌아보면서 옛날을 회상하고 참회하고 후회하기도 하며 껄껄거리며 웃어보기도 한다. 사초(私草)에 스쳐지나간 사람들은 나의 흰머리와 얼굴에 주름처럼 내 가슴에 각인된 사람들이다. 이제 나이 들어 젊었을 때의 내 살아왔던 시절의 진솔한 기록을 읽는 것이 더 마음에 와닿고 강하게 느낌이 온다. 이제 이 책을 합해 10여 년간의 사초를 간행하게 된다. 그래도 아직 60년 이상의 일기가 나의 서재에 쌓여있다. 이것만은 내 손수 편집하고 교정도 보고 요사이는 적은 숫자의 책을 제작하기 쉬워졌으니 모두 간행하고 싶은데 세상사 마음대로 되려는지 모르겠다. 내가 시작한 것은 내가 매듭짓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뜻대로 되려는지 알 수 없다. 내가 수필을 써보겠다고 하였더니 문학평론가인 선배가 수필을 쓰려면 철학서를 먼저 읽으라고 했다. 그래서 파스칼의 팡세로부터 실존주의에 관한 책들을 읽었다. 그러나 그 책들은 눈이 스치고 지나갈 뿐 머리에 머물지 않는다. 하지만 전기류인 링컨전, 디즈레일리전, 프랭클린전, 백범일지 등은 두 번 세 번 손이 가게 된다. 또 머리에 잔잔히 그 삶 등이 각인된다. 타인의 책 백 권쯤 만들어드리는 사이에 나의 책 한 권 끼워서 만들어보겠다. 기록이 모여 역사가 되고 역사가 곧 국가의 자부심으로 미래에 전달되는 것이 아닐까? 옷깃을 스치고 지나간 사람들도 천겁의 인연이라 하는데 앞으로 살아갈 세상이 조심스럽다.

한 출판인의 사초 (1991~1992)

쇼펜하우어는 《인생론》의 마지막 장에 “인간은 누구나 다 가장 추한 육신과 천한 욕정과 속된 야망, 온갖 어리석음과 사악으로 가득 차 있는 외모와 부자연스러움과 타락한 생활에서 오는 천박하고 횡포한 모습을 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되도록 그들과 마주치는 것을 피하고 자연의 품에서 동물들과 사이좋게 지내면서 즐거움을 나누고 싶다”고 술회하며 그의 인생론을 매듭지었다. 그러나 나는 염세주의에 빠져 있는 그의 철학적 사색에서 벗어나 평범한 인간 즉 속인(俗人)들과 어울리며 80년을 살아왔다. 그 삶 속에서 많은 인간관계를 맺어왔다. 인간의 심리는 항시 유동적이어서 이익을 위해, 그때의 환경에 의해 협조도 하고 배신도 한다. 협조한 사람이 협조하기 쉽고 배신한 사람이 배신하기 쉬울 뿐이다. 그리고 기회주의자는 항시 기회주의자다. 그런 사람은 그런 사람이려니 하고 그 이상의 기대를 하지 않는다. 써놓은 글들을 넘기면서 때는 늦었지만 많은 것을 깨우친다. 남은 여생을 착실히 정리하고 미움도 사랑마저도 모두 지워버리고 살아온 삶을 하얀 백지로 남기고 싶다. 지난날 고서점가를 다니면서 묵서로 백지에 잡록(雜錄), 사초(私草), 여록(餘錄), 잡기(雜記), 한필(閑筆) 등 갖가지 이름으로 자신이 걸어온 이야기들을 써놓은 것을 수없이 대하였다. 오늘도 KBS에서 방영하는 〈진품명품〉 프로그램에서 일제시대에 남양군도의 미얀마(緬甸)에 주둔한 일본군의 위안부에 관한 국한문으로 쓴 일기가 나왔는데 감정가가 수천만원일 뿐 아니라 국가적으로도 중요한 문서라고 한다. 모든 기록들이 가정사가 되고 사회사가 되고 역사가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나는 한국 출판계의 역사적 기록이면 적은 쪽지라도 수집하고 모았다. 그것이 무가치하고 폐지로 없어질지라도 모아 보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산 동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의 기록들을 찾아 읽고 배운다. 나와 가까이 지내는 한승헌 변호사의 진실된 기록인 《불행한 조국의 임상노트》는 몇 번째 읽고 있다. 그분이 검사 생활을 그만두고 1965년 변호사 개업을 하시고 내가 1962년에 고시계 편집장 대리를 하고 1966년에 범우사를 창사한 후 가깝게 모시면서 임상노트가 내 삶의 길잡이가 되어 오고 있다. 지난 7~80년대에 한 변호사는 변호인석에서 정치재판의 변호를 맡았으며 나는 그 숱한 사건의 재판과정을 겪어오며 방청석에서 같이 아픔을 삭였다. 특히 정을병, 임헌영, 김우종, 장백일 씨 등이 구속되었던 ‘한양지 문인 간첩단 사건’, 김상현, 조연하, 조윤형 씨가 구속되었던 ‘반유신 탄압사건’의 재판에는 한 번도 거르지 않고 방청석에 있었다. 또한 근자에 세상을 뜨신 민영민 회장님의 회고록 《영어 강국 KOREA를 키운 3.8따라지》는 그가 출협 회장 시절 등 출판계에서 일어난 일들과 나의 고난의 역사에 많은 관계가 있어 자주 접하고 있으며 《박맹호 자서전》도 2013년 1월 10일에 1독을 마치면서 말미에 박 회장이 아버지에게 출협 회장 선거에 낙선했다고 했더니 ‘아버님이 돈을 쓰지 않아서 낙선했다’고 올바른 말씀을 하셨다는 기록도 있다. 이런 것이 모두 우리들이 살아온 현대사다. 한때는 나의 일기가 병약한 순간의 연속이었던 때도 있었다. 그리고 만났던 사람들이 모두 좋았던 것만은 아닌 것 같다. 그러나 모두를 좋아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렇게 노력해왔다. 이 기록들이 시작부터 매듭까지 생활과 생각이 거의 반복되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 반복이 삶이 아니었겠는가. 그리고 이 글을 써서 무엇 하겠느냐는 자조(自嘲)의 글도 자주 나온다. 그러나 그 속에서 반성도 하고 삶의 설계도 만들고 후회도 만족감도 맛볼 수 있었다. 지난날에 써놓은 기록이 있었기 때문에 이런 사초를 엮어내겠다는 착상을 하게 된 것이 아니겠는가. 잡기일망정 가능하면 기록하자. 기록을 남기기 위해서라기보다 살기 위해 기록을 남기자. 오늘을 진실되게 사는 이야기를 쓰게 되면 그것이 미래에 교훈이 될 것이다. 한때는 좋은 시를 쓰려고 했다. 아름다운 비밀을 간진할 수 있는 사람이면 좋은 시를 썼을 것이다. 그러나 시를 잃어버린 지가 오래된다. 삶이라는 것, 의미가 있든 무의미하든 그것을 위해 연연하고 있다. 방금 스탠드의 전구가 갑자기 불이 나가듯 언제 그칠 줄 모르는 생을 지탱하면서 끝까지 보람을 찾으면서 잡록이나마 남겨보려 한다. - 2018년 4월 3일

한 출판인의 사초 (1993~1994)

기록은 삶의 흔적이다. 그래서 역사를 거울삼으면 흥망을 알고 사람을 거울삼으면 운명을 안다고 하였다. 그동안 많은 사람과 교류하며 살아왔다. 그 교류가 곧 나의 역사다. 쇼펜하우어는 인생론에서 “인간 개개인에 대해 생각해보면 한 생애의 역사는 어쩔 수 없이 반드시 패배자로서 낙인찍히기 마련이다. 왜냐하면 끝장이 난 모든 생애는 재앙과 실패의 연속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나의 지내온 삶도 지나온 기록들을 살펴보면 후회의 고백서며 참회의 기록이다. 실수라기보다 욕심이 빚어낸 결과이며 항시 유동적인 인간의 심리에 의해 이익을 추구하고 환경에 의해 배신당하기도 한다. 나는 그런 나약해지는 마음을 되잡기 위해 지난날을 돌이켜보며 돌아올 날들의 삶을 위해 다짐의 글을 써왔다. 글 같지 않은 글은 쓰지 말자고 하면서도 나는 습관적으로 글을 쓰고 또 남의 글을 읽었다. 위대한 철인의 글이나 불후의 명저보다 나와 동시대인들이 쓴 글들이 감명을 주었다. 유종호 교수의 한국전쟁 전후의 고향에서 일어났던 이야기를 진솔하게 담아낸 1950년의 《회상기》, 김현 님의 1986년에서 1989년의 381일간의 독서일기인 《행복한 책 읽기》, 1960년대부터 거창한 얘기에 가린 그 시절의 속살을 샅샅이 헤쳐낸 민병욱 기자의 《민초통신 33》을 읽고 이런 글들이 어느 현학적이고 고차원적인 고담준론보다 나의 독서편력에 단맛을 주었다. 그래서 2016년 9월에 《한 출판인의 사초(私草)》(1995~1997)를 펴낸 후 1993, 1994년의 일기를 합하여 또 한 권의 《한 출판인의 사초》를 발행하게 되었다. 또한 요사이 읽고 있는 모지스 할머니의 이야기가 용기를 북돋아주고 있다. 그녀는 76세에 한 번도 배운 적 없이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여 93세에 《타임》지 표지를 장식하였으며 100번째 생일은 ‘모지스 할머니의 날’로 지정되고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그녀를 ‘미국인의 삶에서 가장 사랑받는 인물’로 칭했다. 10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왕성하게 활동하며 1600여 점의 그림을 남겼다. 나의 이 작업도 무료의 소견법이요 카타르시스의 배설이요 패배자의 기록이라 여긴다. 타인의 글을 출판하면서 나의 글도 하는 욕심 섞인 마음의 산물이다.

한 출판인의 사초 (1998~1999)

나는 초등학교를 일본에서 다녔다. 도쿄(東京)에서 얼마쯤 떨어진 사가미하라(相模原)에 있는 오노(大野) 제일초등학교에 다녔다. 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이시가와(石川) 선생이 학생들에게 일기장이란 노트를 한 권씩 주면서 매일 일기를 써서 제출하라는 것이었다. 그때 나는 강요에 의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것이 지금도 무엇인가 쓰지 않으면 불안해 하게 된 것 같다. 아버님은 그곳에 있는 제2육군병원에 군속으로 출근하시면서 집에 오시면 그날 일어난 일들을 적으시는 것 같았다. 어머니도 청소도구 군납을 하시면서 금전출납부에 그날의 경리관계를 기재하시는 것 같았다. 어릴 때 그런 분위기가 나는 좋았다. 한국으로 돌아온 후에도 나는 습관에 의해 꾸준히 일기를 썼다. 그런데 객지 생활을 하면서 그 일기장들을 고향인 여수시 돌산면 우두리 779의 13호 어머니가 사시는 해변가집 콜렉션 박스에 차곡차곡 넣어서 농장 안에 간직해 두었는데 1959년 9월 사라호 태풍으로 쓰나미가 집을 쓸고 갈 때 바닷물에 쓸려 사라지고 말았다. 그 후 서울 생활의 기록과 여순사건, 한국전쟁 등을 겪은 후 1954년 휴전 이후의 일기라기보다 작품이라고 생각하고 쓴 글 등은 관악구 봉천동 집에 두었다가 1971년 2월 12일 《다리》지 필화사건으로 구속이 되어 〈반공법 사범〉이란 누명으로 서대문 교도소에 구치되자 어머님이 혹 아들에게 피해가 갈까 싶어 내 일기장을 모두 불태워버려 그 흔적이 없다. 그 후 생활이 안정된 후 1987년부터 1997년까지의 생활기록을 5권의 사초집으로 묶어 간행하여보니 내 개인사가 정리되어가는 것 같아 써놓은 일기를 바탕으로 계속 정리해보려 한다. 당의통략(黨議通略)을 쓴 이건창(李建昌)은 “마음은 한 치 가슴속에 감추어져 있고 말은 깜짝할 사이에 나오는 것으로 마음은 허물이 있더라도 사람들이 다 보지 못하고 말은 실수가 있더라도 또한 일시적인 것에 불과하다. 그러나 글이란 것은 한번 붓으로 종이에 쓰면 오래도록 멀리 전해져서 이미 가리거나 마멸시키지 못하는 것”이라고 했는데 종이에 쓴 글도 없어지면 사라지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나의 글을 책으로 엮어 남기려는 것이다. 아테네 문화를 이어오고 있는 이탈리아에서는 인류기록유산 공유 프로젝트인 기억은행을 만들어 고령자들의 이야기 속에 담긴 기억과 지혜를 수집하여 사이트를 통해 세계인들과 공유하는 일을 시작하였다고 한다. 특히 한 분야 한 업종에 종사한 사람들의 사소한 기록이나마 후세에 전하는 것이 얼마나 보람 있는 일인가. 노인이 죽으면 도서관 하나가 불타는 것과 같다는 말이 있다. 나는 80여 년간 살아온 기록과 60여 년간 몸 담아온 출판계에서 얽힌 사연과 또한 모아놓은 자료들을 사초(私草)라는 글 모음에 같이 남겨두어 후세인에게 보탬이 되었으면 한다. 글쓰기의 행위는 모든 구성의 최고의 가능성이다. 이념적 객관이 지닌 역사성의 초월적인 깊이는 바로 이 가능성에 의해 측정되는 것이다. 자기 역사를 자기가 쓰지 않으면 자기라는 인간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할 수가 없는 것이다. 나는 분명 앎보다 삶이 내 삶을 지배하고 있는 것 같다. 사람이 얼마나 알고 있느냐보다 사람이 얼마만큼 진실하고 참되게 살아왔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느껴진다. 지식을 가진 자들이 혹세무민(惑世誣民)하고 학기(學妓) 노릇을 하며 세상을 망치고 어지럽혀 왔는가 그런 세상에 살았다. 소박한 진실이 화려한 수사보다 고귀하다고 본다. 지난날의 족적(足跡)을 뒤돌아보며 사는 것은 내 미래를 살아가는 데 있어서 보약이요 영약이다. 나는 지난날의 나를 알고 나를 이해하고 또 하나의 나를 그리기 위해 글을 쓴다. - 서문

한 출판인의 사초 (2000~2001)

지난날의 일기와 메모들을 모아 월간 《책과인생》에 연재했던 것을 한 권의 책으로 묶어 발간했다. 그동안 1987년부터 99년까지 13년치를 다섯 권으로 묶어 발행하였는데 1995년부터 97년분은 고맙게도 <2017년 세종도서 문학나눔> 도서로 선정되어 초판 2쇄를 발행하였다. 하지만 다른 책들은 아직 초판 1쇄에 머물러 있다. 연이어 발행했던 《한 출판인의 사초》가 쇄를 거듭하거나 다량으로 판매되리란 생각이 앞섰던 것은 아니지만 독자가 찾아주지 않은 책을 왜 발간해야 하느냐 하는 회의가 자꾸만 진행을 더디게 하였다. 그래서인지 70여 년을 써 왔던 일기도 그친 지 오래되었고, 지난날 여기저기 써 놓았던 자료들마저 모으고 챙기는 것도 힘들어졌다. 그런데 최근 어느 날 책상머리에 꽂혀있는 우리 집안 <파평윤씨 가승(家乘)>을 뽑아들게 되었다. 할아버지는 내가 어렸을 적에 여순사건과 한국전쟁 때 큰댁으로 피난을 가면 나를 불러서 대나무로 만든 큰 책함을 열고는 <파평윤씨 세보>를 꺼내 보여 주셨다. 거기에는 친히 할아버지가 붓글씨로 써놓으신 ‘파평윤씨 소정공파(昭靖公派)’ 가승이 들어 있었는데 나에게 필사를 하라고 시키셨다. 그것을 큰집과 백부님, 중부님, 숙부님 그리고 우리집 것까지 다섯 벌을 베껴 적으라는 것이었다. 그 외에도 왕비록, 효자록, 충신록 같은 것들이 있었던 것 같다. 특히 시조할아버지의 고려태조 통합 익찬공신과 5세인 윤관(尹瓘) 장군, 청제 북벌론을 제창한 6세인 윤언이(尹彦頤), 호부상서 할아버지와 우리 집안이 파주에서 호남으로 오게 된 25세 명익(明翼) 할아버지가 무과에 급제하여 전라도 보성군수로 내려가셨다가 임진왜란 때 의병장 좌수군별장으로 돌산 나진포 전투에서 전사하신 것을 수차례 강조하셨다. 그래서 나는 50여 년간 고서들이 있는 곳을 찾아 관심을 가지면서 우리 집안의 기록들을 눈여겨 찾았으나 찾지를 못했다. 특히 단재 신채호 선생이 높이 평가하신 윤언이 할아버지와 임란 때 전사하신 윤명익 할아버지의 기록 등은 혹시 있을까 하고 기대하면서 지금도 찾고 있다. 혹시 나의 대한 후손들이 나에 대한 기록이라도 찾는다면 잡록에 불과하지만 참고가 되리라 믿는다. 손자들이 할애비의 사초(私草)를 보관하고, 또한 손녀들이 시집갈 때 사초를 가져가서 곁에 두고 살아간다는 것은 의의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한 사람의 개인사가 사회사가 되고 더 나아가 국사가 된다고 하지 않던가. 나는 국사에 올라있는 존경하는 분도 중요하지만 각 가문에서 훌륭한 분을 얼마나 모시고 있느냐 하는 것도 영광이지 않을까 싶다. 집안에 존경할 만한 어르신이 없는데 국가에 존경할 만한 분이 있겠는가? 가문에 존경받는 어른이 많은 국가가 되었으면 한다. 후손들에게 가능하면 욕된 선조가 되지 않기 위해 앞으로도 후손을 위해, 귀감이 되는 한두 권의 책을 펴내고 싶다. 특히 이 책에는 〈새천년 새희망 세계7대륙 최고봉 등정행사〉에 아프리카 최고봉 킬리만자로 등반대 단장으로 정상인 길만스포인트까지 다녀온 여정과, 아세아산악연맹 회의차 이란에 갔다 오고 또한 캄보디아 앙코르와트와 베트남의 메콩강 등의 여행기가 담겨 있다. 그곳을 다녀오고 세계를 보는 시야를 넓히는 계기가 되었다고 본다. 2020년 9월 20일

한 출판인의 여정일기

나의 등산일지는 산행기인 <산사랑 책사랑 나라사랑>에 넣고, 중국기행은 중국여행기인 <한 출판인의 중국나들이>에, 그리고 일본기행은 일본여행기인 <한 출판인의 일본나들이>에 넣어 출간하였다. 중국여행기는 중국 북경 인민출판사에서 중국어판으로 발간하여 아시아태평양 출판문화상 금상을 수상한 바 있으며, 또 일본 기행문은 일본 출판뉴스사에서 번역 발간하였다. 그런데 미국 기행문과 유럽 기행문은 어디에든 넣을 수 없어 원고 상태로 보관하고 있었다. 그러다 이번에 2000년대 들어 다녀온 해외여행 기록과 같이 묶어 한 권으로 엮었다. (문집 10권을 엮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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