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를 살면서, 정의를 위해 목숨 걸고 싸우는 이는 누구이며 현세의 안위를 위해 영혼마저 파는 이는 누구인가. 어디에서 이렇게 길이 갈리는 걸까? 이 작품의 밑바탕에는 그런 궁금증에 대한 질문이 깔려 있다. 그래서 나는 독립운동가의 투쟁기에 앞서 삶에 대한, 또는 역사에 대한 두 사내의 태도와 순정한 영혼의 궤적에 초점을 맞추고자 노력했다.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2014년 초, 연희창작촌에 머무는 동안 탈북자들을 취재하며 소설의 얼개를 고민하고, 여름의 초입 원주 토지문화관에서 본격적으로 집필을 시작했다. 가을에는, 중국 톈진에서 열린 빈하이 국제작가레지던스에서도 이 소설을 쓰고 있었으니 난민처럼 돌아다니면서 쓴 작품이다.
동시대를 살면서, 정의를 위해 목숨 걸고 싸우는 이는 누구이며 현세의 안위를 위해 영혼마저 파는 이는 누구인가. 어디에서 이렇게 길이 갈리는 걸까? 이 작품의 밑바탕에는 그런 궁금증에 대한 질문이 깔려 있다. 그래서 나는 독립운동가의 투쟁기에 앞서 삶에 대한, 또는 역사에 대한 두 사내의 태도와 순정한 영혼의 궤적에 초점을 맞추고자 노력했다.
2006년 3월 11일 홍콩항에서 H상선의 ‘FORTUNE’호 승선, 20일간을 항해한 후 3월 31일 네덜란드의 로테르담에서 하선, 첫 유럽 여행을 할 꿈에 부풀어 있었으나 정확히 열흘 후, 3월 21일 아덴만에서 ‘FORTUNE’호가 폭발하는 바람에 네덜란드 함선에 구출되어 예멘을 통해 곧바로 한국으로 귀국했다. 그로부터 10년이 흐른 2017년, 나는 육로로 네덜란드의 로테르담 항구에 가서 나 홀로 나의 항해를 마쳤다. 항해도 폭발도, 머리카락 하나 다치지 않고 귀환한 것도 아직도 모두 꿈만 같다.
변하지 않는 것은 보석이 된다
깊은 산속 마을에는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들이 없습니다. 대형 백화점이나 마트도 없고 색색깔 조명을 켠 멋진 카페, 레스토랑도 없습니다. 놀이동산 같은 건 꿈도 꾸지 마세요. 그 옛날에는 더 했답니다. 아스팔트 도로 같은 게 없으니 자동차가 다니지 않는 건 당연하고요. 학교 갈 때 한두 시간 걷는 건 가벼운 몸풀기죠. 생선이랑 신발, 가방을 사러 장에 가거나 물건을 팔러 큰 도시로 나갈 때는 하루종일 산길을 걸을 때도 있으니까요. 자기 몸보다도 더 무거운 짐을 이고 지고 말입니다.
한밤중에 산속에서 길을 잃는 건 얘깃거리도 못 돼요. 침낭이 다 뭐랍니까? 마침 동굴이라도 있으면 하늘이 도우신 것이고, 날씨만 춥지 않다면 나뭇잎 이불 삼아 몸을 누이는 거지요. 이제나저제나 장에 간 아버지를 기다리던 아이들은 칠흑 같은 먼 산만 바라보다가 잠이 들겠지요. 먼 데서 호랑이 울음소리라도 들리면 그날 잠은 다 잔 거랍니다.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 이야기냐고요? 아니요. 겨우 4, 50년 전, 지리산 산골마을 이야기랍니다.
그 시절, 산골마을은 문명의 편리함을 누릴 수 없었고 가난했습니다. 하지만 말입니다, 넘치도록 풍요로운 게 있었습니다. 그건 자연의 신비와 인정입니다. 산골마을 사람들은, 별과 달과 바람이 전하는 말을 이해했습니다. 비록 가난하지만 나눌수록 따뜻해지는 우주의 비밀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뭐 대단히 아는 척하지 않습니다. 그냥 살다 보니 그렇구나 할 뿐입니다. 그냥 살다 보니, 그곳이 명당자리가 되었듯이 말입니다. 세월이 흘러, 지금 그것은 돈으로 바꿀 수 없는 가치가 되었습니다.
변치 않는 것은 보석이 됩니다.
산골 소년소녀들의 가슴을 콩닥거리게 만든 풋풋한 첫사랑의 예감도 변치 않았겠죠. 이 글을 세상 모든 산골 소년소녀들에게 바칩니다.
유대인 극장
“해외여행을 하면서 두어 번 정도 혐오 발언의 대상이 된 적이 있다. 한번은 은발을 곱게 빗어 넘긴 자그마한 할머니로부터, 한번은 10대 백인 소녀들로부터. 그때 알았다. 혐오의 언어는 번역이 필요 없다는 걸.
할머니에게 그런 말을 들었을 때는 충격이 너무 커서 아무런 대응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10대 소녀들이 우르르 몰려가면서 나를 향해 그런 말을 했을 때는, 나도 가만 있지 않았다. 나는 내가 알고 있는 욕설을 줄줄이 읊었다. 물론 한국말로. 오해를 살까봐 변명을 하자면, 나는 욕설을 거의 하지 않는다. 하지만 한국어의 찰진 욕설은 나의 흥미로운 채집 대상이다. 어떤 상황에서는 살 떨리는 모욕이 되는 말이, 진한 애정을 표현하는 말로 둔갑하는 걸 볼 때면 한국말이 신비롭다는 생각마저 든다. 그렇게 채집해놓은 것이 마침내 진가를 발휘했다. 나는 마치 책을 읽듯이 욕설을 나열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소녀들이 움찔하더니 겁먹은 강아지들처럼 꽁지를 내리고 도망쳤다. 나는 욕 배틀에서 승리한 것처럼 쾌감마저 느꼈지만, 오랫동안 뒷맛이 개운치 않았다.
그것이 소설의 씨앗이 되었다.”
무심코 지나다니는 밭두둑이나 담벼락, 아스팔트 틈새에서 하늘거리는 작은 꽃을 보더라도 그냥 지나치지 않게 된 건, 순전히 이 책 작업을 하면서 생긴 버릇입니다. 감탄이 나올 정도로 세밀하고 정교한 그림은, 오히려 직접 보고 싶은 욕망을 부채질했습니다. 꽃무릇이 피를 토하듯 피어난 것을, 잔설 속에서 복수초가 고양이처럼 눈뜨는 것을 봐야 글이 될 것 같은 욕심 때문에 들로 산으로 참 많이도 쏘다녔습니다.
첫 단편을 발표하고 6년 만에 창작집을 낸다. 시차가 큰 작품들을 모아놓고 보니, 야생밭에서 캐다놓은 풀부리들처럼 들쑥날쑥이다.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것처럼 시들시들하기가지 하다.
다시 불러일으켜 단장이라도 시키려니 콧등이 시큰하다. 발길 더딘 것도 모자라 하나같이 어리고 흔들리고 불안하다. 늦되고 허물 많은 영혼들이다. 그게 바로 내 모습인 것을, 나만 모르고 있었나 보다. 다만, 도피하거나 외면하지 않았다는 걸로 위안을 삼아본다. 그리하여 어느 구석에 나처럼 미혹되고 늦된 영혼 하나 있어 작은 위로라도 된다면......
외롭고 지루한 날들이었지만 이 글을 쓸 때 가장 명료하고 예민하게 세상을 느끼고 깨어 있었던 것 같다.
나는 떠나온 곳도 없이 떠나왔고, 돌아갈 곳도 없이 떠났다는 걸, 그러나 이미 까마득한 그 옛날부터 그러했다는 것을, 오랜 시간이 흘러서야 알았다.
거기, 사람이 있었다. 까마득한 옛날부터 이미 거기 있었던 그들……. 나의 먼 전생이면서 미래인 그들과의 조우가 나의 닻이 되어주었다. 소설이 되고 내 존재의 증명이 되어주었다. 혹시 내가 조금이라도 깊어졌다면 그들 덕분일 것이다. 뒤통수를 치거나 발목을 걸고넘어지던 삶과도 조금은 친해진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