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우리나라가 걸어온 역사를 되돌아보면서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생각을 염두에 두고 크고 작은 역사적 사실이나 큰 발자취를 남긴 역사적 인물을 소재로 삼아 짧은 글(컬럼)을 써왔다. 이 책에 담긴 글(컬럼) 한 편 한 편을 읽으면 지나온 한 시대를 읽을 수 있으며, 그 시대를 살아온 선인(先人)들의 삶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선인들의 과거의 삶을 통해서 우리의 미래를 열어갈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그래서, 이 책의 제호를 <歷史에서 길을 찾다>로 이름하였다.
로마의 철학자 키케로(Cicero, M. T. : BC. 106 ~ 43)가 남긴 명언(名言), “역사는 참으로 시대의 증인이요, 진실의 등불이다”를 옮겨 적으면서, 머리말을 마무리한다.
필자는 매일 이른 아침 중랑천(中浪川) 산책로를 거닐면서 어도(魚道)를 따라 힘차게 강물을 거슬러 올라오는 물고기들의 생기(生氣)를 만난다. 그 뿐만이 아니다. 산책로 양편에는 봄꽃들의 유희(遊戱)가 너무 아름답다. 어디 봄뿐인가. 여름을 지나 가을로 넘어가면서 갖가지 꽃들이 지천(至賤)으로 피어난다.
3월에는 개나리꽃이 우리를 반기는가 했더니 버들강아지 . 진달래꽃 . 벚꽃이 뒤를 잇는다. 볼수록 눈이 시린 민둥제비꽃 . 목이 길어 새털바람에도 고개를 살랑이는 냉이꽃, 4월이 되면 철쭉 . 라일락 . 아카시아꽃 . 노랑제비꽃이, 5월에는 뚝방 가득히 장미꽃이 꽃망울을 터트린다. 6월에는 노란빛깔을 드러내는 벌개미취가 참으로 아름답다.
또, 가을에는 어떠한가. 중랑천 뚝방 곳곳에 큰키 코스모스가 모습을 드러낸다. 바람에 꽃잎을 하늘거리며 길손을 맞는다. 그리고, 찬서리 내릴 무렵엔 노란빛깔을 띤 국화꽃이 너무 아름답다. 그 뿐이 아니다. 계절 따라 갖가지 야생화가 앞 다투어 피어난다.
이들 꽃은 누가 애써 보살펴 주지 않아도, 귀찮게만 하지 않는다면 자연의 이치에 따라 한 살이를 스스로 이어간다. 그저 구름 사이로 내비치는 햇살의 따사로움과 때맞추어 내리는 비를 맞으며 스스로 푸른 잎을 틔우고, 예쁜 꽃을 우리들에게 선물한다. 그러나, 그 꽃들은 자기를 자랑하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 우리에게 무한이 베풀 뿐이다.
이경애 님의 '꽃밭'을 떠올려보자.
“해바라기 / 봉숭아 / 채송화 / 키대로 자리 잡았다 // 금잔화 / 백일홍 / 국화 / 철 따라 꽃 피운다 // 제 모양 / 제 빛깔 / 제 향기로 / 사이좋게 산다 // 한 울타리 안에서”
이원수(李元壽) 님의 '고향의 봄'도 아련히 떠오른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봉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울긋불긋 꽃대궐 차리인 동산
그 속에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꽃 이야기를 하면서 서정주(徐廷柱) 님의 '국화옆에서'를 빼놓을 수 없다.
“한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
간밤에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꽃, 참으로 아름다운 이름이다. 꽃 같은 시절, 직장의 꽃, 꽃 본 나비 담 넘어가랴, 꽃 본 나비 불을 헤아리랴, 꽃 본 나비 물 본 기러기, 꽃이 좋아야 나비가 모인다. 이처럼 꽃에 얽힌 말들이 참으로 많다. 우리는 미인(美人)을 말할 때도 꽃에 비유한다.
김소월(金素月)의 ‘진달래꽃’, 서정주의 ‘국화옆에서’를 읊조리면서 이른 아침 꽃길을 따라 걷는 발걸음은 참으로 가볍다. 그리고, 다정하게 손잡고 걸어가는 연인(戀人)들의 발걸음에 행복이 묻어나는 아침이다.
어디 그 뿐인가. 멀리 오른쪽으로 수락산(水落山)을 바라보면서 발걸음을 옮긴다. 수락산은 북한산(北漢山) . 도봉산(道峰山) . 관악산(冠岳山)과 함께 서울 근교의 4대 명산(名山)으로 이름이 높다. 수락산이란 이름은 거대한 화강암(花崗巖) 암벽에서 물이 떨어지는 모습에서 따온 것으로 전해지는데, 이곳은 소나무 . 아카시아나무 . 신갈나무로 무성하다. 아름다운 암봉(巖峰)들이 나무 숲속에 보일 듯 말듯 아름다운 자태(姿態)를 드러낸다.
멀리 내원암(內院庵)의 풍경소리가 은은하게 들려오듯 참으로 정겹다. 수락산을 지나면 왼쪽 멀리에 도봉산이 739.5m의 우람한 모습으로 우리를 손짓한다. 도봉산은 주봉(主峰)인 자운봉(紫雲峰)과 만장봉(萬丈峰) . 선인봉(仙人峰)이 나란히 줄지어 웅장함을 더해주고 있다.
또, 도봉산은 이웃한 북한산과 함께 북한산국립공원을 이루어 서울시민은 말할 것도 없고, 우리나라 국민 누구나 즐겨 찾는 명산으로 이름이 높다. 집을 나서서 빠른 걸음으로 걷다가 보면 40분을 지나면 지하철(地下鐵) 도봉산역 부근에 잘 정돈된 서울창포원(菖蒲園)에 이른다. 산림생태공원 . 천이관찰원 . 약용식물원 . 늘푸름원 . 억새원 . 숲속쉼터 . 넓은잎목원 . 붓꽃원에 심어놓은 소나무 . 전나무 . 신갈나무 . 은사시나무 . 가문비나무 . 노간주나무 . 구상나무 . 때죽나무 . 느티나무 . 팽나무 . 버드나무 . 산벚나무 . 물푸레나무 . 단풍나무 . 병꽃나무 . 조팝나무 . 대추나무 . 층층나무 . 화살나무가 무성하다. 그리고, 이곳을 천천히 산책하다가 보면 잘 가꾸어놓은 갖가지 꽃들을 만난다. 붓꽃원에 이르면 부채붓꽃 . 타래붓꽃 . 노랑붓꽃 . 각시붓꽃이 우리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6월이면 자줏빛을 띤 창포꽃이 아름다움을 드러낸다. 어디 창포꽃뿐인가. 튤립 . 작약 . 모란 . 어생초 . 꽃나리 . 리아트리스 . 후록스 . 맥문동도 한몫을 한다.
‘책읽는 언덕’에 앉아서 도봉산을 올려다보면 너무 장엄하다. 잠시 사색(思索)에 잠겨있으면 모든 근심 . 걱정을 잊고 자연에 빠져들게 된다. 이보다 더한 아름다움이 또 있으랴.
러시아의 작가 이반 투르게네프(Ivan Sergeevich Turgenev : 1818~1883)는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은 천천히 산책(散策)을 즐기며 길가에 핀 꽃들을 어루만지는 때”라고 했다. 이 얼마나 아름답고 운치(韻致)가 있는가. 꽃노래를 읊조리면서 꽃들과 나누는 대화는 하루를 즐겁게 하기에 충분하다.
문득, 작년 5월 13일 LED 장미정원을 둘러보았던 기억이 떠오른다. 이 장미원은 대한민국 광복(光復) 70주년을 기념하여 마련된 것인데, 동대문디자인풀라자(대표 : 이 근)가 이간수문(二間水門) 전시장 옆에 하얀장미 2만5,550송이를 전시하고 있었다. 2만5,550송이의 의미는 70년에 365일(1년)을 곱한 숫자라고 한다. ‘광복 70주년의 의미’를 전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이날따라 장미가 더욱 아름다워 보였다. 그리고, 은은한 향기가 코끝을 간지러주는 듯 했다.
그런데, 아름다움이 어찌 꽃뿐이겠는가. 조국(祖國)을 위해 일생(一生)을 바친 선인(先人)들의 발자취를 더듬어보자. 이 얼마나 아름다움인가. 이들이 없었다면 우리 대한민국(大韓民國)은 어떠한 모습일까. 일제(日帝) 35년간의 억압 속에서 어떤 이는 전쟁터에서, 어떤 이는 언론(言論)의 현장에서, 또 어떤 이는 한글을 부여안고 고통을 감내하면서 조국을 지켜오지 않았던가.
이 책에 담은 글(컬럼)들은 중랑천 산책로를 거닐면서 꽃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그 속에서 소재를 찾아 글로 담아 낸 것들이다. 이 가운데는 때로는 사람 살아가는 모습을 이야기하고, 때로는 선인(先人)들의 삶의 발자취를 더듬어 이를 글로 담아냈다. 또, 대학에서의 특강내용을 정리한 것들도 있다. 그래서, 책의 제호를 <역시 꽃은 아름답다>로 이름하였다. 그리고, 광복 70주년, ‘2만5,550송이 하얀장미’의 아름다움을 떠올리면서, 머리말에 갈음한다.
2016년 3월 25일
정심서실에서
머리말
필자는 70여 년 동안 살아오면서 “어떻게 살아야 하나?”라는 명제를 떠올리면서, 스스로에게 묻고 답하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또, 이런 주제를 가지고 학생들을 대상으로 특강을 하기도 하고, 함께 토론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사람 사는 이야기’는 말처럼 그렇게 쉬운 주제는 아니다. 더욱이, 수학처럼 어떤 공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사람마다 출생의 배경과 살아가는 환경이 다르고,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에 결론을 내리기는 참으로 어렵다. 그러나, 필자의 살아온 경험을 토대로 하여 ‘이렇게 살았으면 하는’ 나름대로의 결론을 내려 보려고 애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