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

헤더배너
상품평점 help

분류국내저자 > 예술

이름:나윤덕

최근작
2024년 12월 <은밀한 속삭임>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

바람을 좋아한다. 살랑살랑 불어오는 봄바람, 더위를 식혀주는 여름 바람, 살을 에는 겨울바람도 나름 매력적이다. 바람은 천 개의 목소리를 지녔다. 속삭이는가 하면, 때로 휘몰아치기도, 때로 휩쓸어버리기도 한다. 누구도 바람을 막을 수 없다. “우린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들이지요, 나의 에스테르 아가씨. 그 때문이에요! 우리는 갈대이고, 숙명은 바람이지요.” 사나운 팔자를 탓하는 여주인에게 늙은 하인은 위로의 말을 건넨다. “왜 태어나는 걸까?” “오, 그런 말 마세요. 하느님의 뜻이기 때문이죠!” 젊은이의 넋두리에 늙은 하인이 잘라 말한다. 탄생부터가 신비스러운 일이니, 숙명은 말할 것도 없다. 바람처럼, 그저 받아들여야 한다. 핀토르 가문을 위해 평생 몸 바쳐 일해온 늙은 하인의 이름은 에픽스이다. 이야기는 에픽스가 기거하는 초가집이 있는 농장의 밤을 묘사하는 장면으로부터 시작된다. 저녁 기도와 더불어 해가 지고 인간들의 시간이 끝나자, 달빛 아래 혼령들, 요괴들, 요정들이 나와 오래된 성과 언덕과 강물에서 노닌다. 그 장면이 어찌나 매혹적이든지, 첫 장을 옮기며 이미 마음을 빼앗겨 버렸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가 피땀 흘려 일군 농장은 혹독한 노동을 요구하는 장소인 동시에 이루 말할 수 없이 아름답고 풍요로운 장소이기도 하다. 나무와 강과 갈대, 바람과 해와 구름, 바위와 산, 새와 나비, 꽃과 열매가 있는 그곳은 어머니의 품처럼 아늑하고 포근한 자연이 지배하는 곳이다. 생명이 있는 존재마다 영혼이 깃들어 있고, 밤이 되면 죽은 영혼들까지 나와 노니는 곳, 이성과 논리와 숫자로 설명할 수 없는 삶이 지배하는 곳이다. 반면에 핀토르 가문의 세 자매가 사는 저택이 있는 마을은 인간의 법칙이 지배하는 장소이다. 몰락한 귀족의 허물어져 가는 저택, 폐허가 되어버린 마을, 묻히지 못한 유골들이 즐비한 무덤, 빛바랜 바실리카 성당이 있는 그곳을 지배하는 건 돈과 지위와 권력이다. 그곳에 거하는 사람들은 돈을 세고, 물건을 사고팔고, 사채업을 하고, 재산을 불린다. 이성과 숫자와 물질이 삶을 지배하는 곳이다. 에픽스는 자신의 피와 눈물을 빨아들인 농장에서 평화로운 여생을 보내고 싶었지만, 핀토르 가문에 불어닥친 소용돌이는 하인이었던 그마저 자유롭게 놓아주지 않았다. 농장에서 나오는 수확으로 세 자매를 먹여 살리는 것도 모자라, 그는 집을 나간 리아 아가씨의 철부지 아들 자친토까지 챙겨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 그 모든 게 자신이 저지른 죄에 대한 형벌이자 속죄의 과정이라 여기며, 그는 담담히 앞으로 나아간다. 아무도 자신의 숙명조차도 탓하지 않는다. 오직 주인 아가씨들이 잘되기만을 바라며, 주어진 삶의 자루를 오롯이 짊어지고 나아간다. 에픽스의 삶이야말로 하찮은 존재가 고귀함에 다다르는 여정이다. 올여름에도 어김없이 태풍이 찾아왔다. 어제까지만 해도 맹위를 떨쳤던 더위가 슬그머니 자취를 감추더니 세찬 바람과 빗소리가 들려온다. <코지마>와 <엘리아스>에 이어 그라치아 델레다의 작품을 세 권이나 번역하는 호사를 누리게 되었다. 두루두루 감사의 인사를 전해야겠다.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는 1913년 8월 20일,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 이번에 번역한 한국어판은 무려 110년이라는 세월을 뛰어넘어 2023년 8월에 세종에서 출간된다. 이 또한 숙명이라는 바람에 실려 온 선물이 아닐까 싶다.

엘리아스

번역을 끝마칠 무렵이 되자, 엘리아스의 모습이 눈앞에 보이는 듯하다. 호리호리한 몸매, 갸름한 얼굴, 하늘빛이 감도는 초록색 눈동자, 짧고 검은 머리카락, 나긋나긋한 말투. 이탈리아에서는 무리에서 튀는 사람을 일컬어 ‘검은 양’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거칠고 투박한 외모의 양치기들 사이에서 엘리아스의 모습은 정말이지 검은 양처럼 보였을 것이다. 섬세하고 감성적인 성격을 지닌 그는 형의 신붓감인 막달레나에게 첫눈에 반해버리고, 형에 대한 도리를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써 보지만, 결국 형수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게 된다. 벗어나려고 하면 할수록 가혹한 사랑의 굴레는 점점 더 그를 옥죄어 오는데... 소설의 배경이 되는 누오로(Nuoro)는 사르데냐 섬 중앙의 오르토베네 산기슭에 있는 작은 도시로 그라치아 델레다가 태어나서 자란 곳이기도 하다. 고향을 배경으로 한 그녀의 대표작들은 결혼 이후에 평생 거주했던 로마에서 탄생했다. 그녀에게 고향은 찬란한 추억이자, 지독한 저주이기도 했다. 당시만 해도 미지의 섬이었던 사르데냐의 원시적인 자연과 독특한 전통을 간직한 사람들을 그녀는 평생 잊지 않았고, 소설을 통해 손에 잡힐 듯 생생하게 재현해 냈다. 사후에 발간된 자전적인 소설 <코지마>에서 밝혔듯, 그녀는 ‘실제로부터 길어 올린 이야기’를 쓰겠노라고 다짐했고, 기억의 실타래를 풀어 이야기로 엮어냈다. 엘리아스가 막달레나를 보고 첫눈에 반하게 되는 성 프란체스코 축제는 해마다 룰라 산에서 열리는 사르데냐의 대표적인 축제다. 포르톨루 가족이 살아가는 모습을 통해 우리는 양치기이자 농부였던 당시 사르데냐 사람들의 모습을 짐작해 볼 수 있다. 그라치아 델레다는 진실주의 작가로 구분되지만, 그녀의 작품 속에서 자연은 사람만큼이나 큰 비중을 차지한다. 사계절의 변화에 따른 하늘과 땅, 바다와 들판, 나무와 꽃, 동물들에 이르기까지, 그녀는 살아 있는 모든 크고 작은 존재들을 향해 경의를 표한다. 작품 속에서 자연은 인간의 동반자이자 때로, 인도자이기도 하다. 숲을 스치는 바람의 목소리, 외눈박이 달의 시선, 나무와 바위에도 작은 귀가 달려 있는가 하면, 시냇물이 자장가를 들려주기도 한다. 양을 비롯한 염소, 말, 망아지, 개와 고양이들도 작품 속에서 쏠쏠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그녀가 기억하는 고향의 풍광은 광활하고, 쓸쓸하고, 형언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답다. 엘리아스 포르톨루는 결국, 사랑에 관한 이야기다. 형의 아내가 될 여자에게 첫눈에 반하고, 형수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고, 실수를 만회하려 안간힘을 쓰지만 결국 운명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마는 엘리아스 포르톨루라는 한 인간의 이야기가 주축을 이루지만, 그 외에도 다채로운 사랑의 모습들이 펼쳐진다. 부모 자식 사이의 사랑, 형제의 사랑, 인생의 선후배 사이의 사랑, 인간과 신, 인간과 자연 사이의 사랑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삶을 이끌어 나가는 건 사랑이고, 사랑이며, 사랑이다. 엘리아스의 이야기를 따라가는 동안, 갑갑하고 속상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우유부단하고, 엉뚱한 짓을 하고, 자꾸만 다른 길로 가는 얼빠진 양 같은 그의 모습을 보며 제발 그러지 말라고 다독거리고 꾸짖고 싶어지곤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저히 그를 미워할 수 없었던 이유는 나 또한 사랑에 빠졌고, 상처를 주고받았고, 충고를 귀담아듣지 않았고, 갈 바를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를 비롯한 우리 또한 스치는 바람에도 구부러지는 나약한 갈대이기 때문이다. 나윤덕. 2023년 5월 3일

코지마

이탈리아에서 십여 년을 사는 동안 사르데냐 섬에 가 본 적이 없다. 비단 나뿐만 아니라 이탈리아 지인들 중에도 사르데냐 섬에 다녀왔다는 사람은 보기 드물었다. 로마에서 466km 정도 떨어진 사르데냐는 그토록 가깝고도 먼 곳이다. 에메랄드빛 바닷가에 호사스러운 별장들이 들어서고 부자들의 휴양지로 이름나기 전까지 사르데냐는 그야말로 미지의 섬이었다. 알록달록한 전통 의상을 입고 알아들을 수 없는 방언을 쓰는 사람들, 양젖을 숙성시킨 페코리노 치즈와 구더기가 튀어 오르는 부패한 카수마르추 치즈를 만드는 목동들, 동굴이 있는 바위산과 숲으로 이루어진 산세는 어찌나 깊고 험한지 도망치려거든 사르데냐에 가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사르데냐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자연은 축복이자 저주였다. 수많은 민족들이 사르데냐를 정복하고자 했고 침략자들이 밀려드는 바닷가를 피해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가 사는 편을 택했다. 척박한 땅을 일구고 산적들과 대항하며 살아가야만 했던 사르데냐 사람들의 성격은 완고하고 거칠어졌으며 자신들만의 언어와 문화를 만들어 냈다. 개중에는 엽기적일 정도로 독특한 것들도 있다. 코지마의 배경이자 작가의 출생지인 누오로 현에는 축제 때 먹는 ‘카라시우’라는 구이 요리가 있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이 요리는 송아지 배에 염소 새끼를 넣고 염소 새끼 배에 새끼 돼지를 넣고 새끼 돼지 배에 산토끼를 넣고 산토끼 배에 자고새를 넣고 자고새 배에 더 작은 새를 넣어 통째로 굽는 마치 러시아 인형 같은 음식이다. 어디서도 보기 드문 사르데냐 섬의 자연과 정서를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코지마>를 이해하는 첫걸음이 되어줄 것이다. <코지마>의 저자 그라치아 델레다의 본명은 “그라치아 마리아 코지마 다미아나 델레다”(Grazia Maria Cosima Damiana Deledda)이다. <코지마>는 그녀의 중간 이름 코지마를 주인공으로 소설의 형식을 빌린 자서전이라 할 수 있다. 여성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작가의 마지막 작품으로 그녀가 세상을 떠난 뒤에 출간되었다. 소설의 이야기는 코지마라는 소녀의 성장담이 주축을 이룬다. 좋은 남편을 만나 결혼하는 것만이 여자의 ‘유일한 운명’이었던 시대에 코지마는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고 결국 작가로서 빛을 보게 된다. 수많은 벽에 부딪히면서도 농부와 목동이었던 조상들의 강인한 영혼을 지녔음을 굳게 믿으며 코지마는 내면의 빛을 따라간다. 코지마가 들려주는 가족과 이웃들의 시시콜콜한 이야기, 두근거리는 첫사랑 이야기, 신비로운 전설들을 듣노라면 어느새 책장이 술술 넘어간다. 우리의 삶과 방식만 다를 뿐 본질적으로는 크게 다르지 않음이 놀라울 따름이다. 백여 년을 뛰어넘는 시공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그녀와 우리의 삶은 그물처럼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다. 또 다른 이야기의 축은 황홀함과 쓸쓸함이 공존하는 사르데냐 섬의 풍광이다. 에메랄드빛 바다와 험준한 바위산들, 초록이 만발한 숲과 척박한 황무지로 이루어진 반어법적인 고향의 모습은 죽는 날까지 그녀를 사로잡았다. 마침내 꿈을 이루고 그토록 가고 싶었던 로마에서 평생 글을 쓰며 살았음에도 그녀의 시선은 늘 그곳으로 향했고 소설 속에는 사르데냐의 자연과 사람들의 모습이 빠짐없이 등장한다. 노년에 접어든 작가는 <코지마>에서 비상한 기억력으로 어린 시절을 보낸 마을과 산과 바다의 풍경을 손에 잡힐 듯 묘사한다. 어린 코지마의 손을 꼭 붙잡고 요정과 거인들이 산다는 전설적인 숲을 노니는 듯한 기분에 빠져들게 된다. 이야기를 끝마칠 때 즈음, 코지마는 외할머니 꿈을 꾼다. 할머니를 떠올릴 때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어지러움을 느낀다. 할머니에게 커피를 대접하지 못했다는 후회가 밀려온다. 세상을 떠난 나의 외할머니 또한 코지마의 외할머니처럼 체구가 작고 손발이 자그마하며 순수함으로 가득한 눈동자를 지닌 분이셨다. 지금도 나의 침대 곁에는 외할아버지께서 젊은 시절 할머니를 위해 손수 만든 앉은뱅이책상이 놓여있다. 서랍을 열고 녹슨 가위를 꺼내 손에 쥐어본다. 포목점을 하며 자식들을 뒷바라지했던 할머니의 손때 묻은 가위를. 가슴이 울렁거린다. 코지마가 느꼈던 어지러움과도 같은 것일까. “너무 예쁘세요, 할머니. 진짜 요정 같아요.” 코지마가 말한다. 그녀와 나의 꿈속에 찾아온 할머니들은 요정처럼 작고 아름답다. “요정들은 수 천 년 전부터 산에 있는 동굴에 모여 살고 있다. 금으로 짠 그물로 매와 바람과 구름 그리고 사람들의 꿈을 잡아들이며.”

가나다별 l l l l l l l l l l l l l l 기타
국내문학상수상자
국내어린이문학상수상자
해외문학상수상자
해외어린이문학상수상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