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 겨울 징검다리를 건너며…
지난 해 겨울 며칠 흰 눈이 내린 후 강변은 그때까지 보았던 많은 것들이 눈 속에 묻히고 그 자리에 있으나 보지
못했던 것들이 또 다른 아름다움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그때쯤 그 동안 쓴 시들을 책으로 엮어 볼까 하며 시집의 커버가 하얀 식탁보 같았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그리고 봄이 왔다. 여름 가을도 지났다. 매일 가는 산책길이 가끔 먼 숲 계곡 바다까지 연장되기도 했다. 그
동안 겨울에 보지 못한 것들이 나의 눈을 뜨게 해주었다.
넓은 돌 평원 사이로 흐르는 개울물, 크고 작은 나무들의 계절의 포즈, 밝고 깨끗한 색깔의 꽃들, 새 벌레 나비 벌
들의 즐거운 움직임, 꽃에서 움튼 열매들, 시간이 흘러가며 달라지는 물빛과 바람 소리, 눈부신 씨앗들, 봄에 움
터 알지 못한 식물들의 잎 줄기가 내가 아는 모습으로 변해 가는 과정, 그리고 가족 친구들과의 뜻밖의 만남과 대
화들, 삶의 새로운 결과들이 모두 영감의 샘이 되었다.그런 축복 가운데 나는 많은 시들을 쓰게 되었다.
2월에 설원에서 만난 한 나무의 열매를 우연히 간 먼길에서 줍게 되었다. 이 시들은 나의 그런 열매들이다 .
이제 찬 바람이 불고 하늘은 눈부시게 푸르다. 깊고 푸른 색의 강물 위에 수많은 오리떼가 찾아와 찬 물 속에
서 뛰어 오르거나 한낮의 온기를 즐기며 미끄러져 간다. 갈대들은 다시 지난 겨울 같은 빛의 숲을 만들고 있다.
아주 작은 꽃들을 피웠던 강가의 키 작은 나무가 부드러운 갈대 꽃들 속에서 골드와 그린으로 아름답게 흔들린
다. 빛이 바래어 황량해진 초원 위에서 물오리들이 빛나는 주황색 다리를 드러내고 날개를 비틀며 잠시 춤을 추
다 날아간다.
나는 오늘 누군가 흐르는 물 위에 놓아둔 징검다리를 건너 볼까 한다. 찰랑거리는 물이 내 발을 적시지 않
을까, 몸이 균형을 잃고 발을 헛디디진 않겠지, 하늘을 나는 새들이 돌 다리 위에 선 나를 보면 아름답다 할까... - 시인의 말